숨소리를 쓴다
아마 2000년 언저리이지 싶은데, 이때까지만 해도 웬만한 시인은 시를 쓸 적에 한자를 드러내거나 묶음표에 한자를 넣었다. 그리고 이무렵부터이지 싶은데 젊은 시인은 시를 쓰면서 영어를 넣거나 알파벳을 환히 드러냈다. 이쪽에서는 한자로 문학을 하고, 저쪽에서는 영어로 문학을 한다. 나는 이쪽도 저쪽도 아니요, 이쪽에도 저쪽에도 설 마음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쪽’을 조용히 걸어간다. 나고 자라면서 익힌 말로 글을 쓰고, 아이를 낳고 돌보면서 나누는 말로 글을 쓴다. 한자말을 싫어하거나 영어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시를 쓰든 글을 쓰든 이야기를 하든 굳이 안 써도 될 만한 말을 쓰고 싶지 않다. 아니 나 스스로 내 넋을 사랑하면서 밝힐 수 있는 말을 새롭게 가꾸고 싶다. 2018.1.3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