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우니 한 마디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밥을 지어 먹일 적에 늘 생각합니다. 어버이인 제가 지은 밥을 아이들이 늘 맛나게 먹어 주어야 하지 않고, 고맙게 먹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버이인 제가 지은 밥이니 그릇이나 접시를 싹싹 비워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하고 어버이 사이에는 이야기가 흘러야 합니다. 맛이 어떤가를 고스란히 들려주고, 짜거나 달거나 맵거나 싱겁지 않은지 제대로 알려주어야 합니다. 많은지 적은지 말해야 하고, 배부르거나 배고픈가를 밝혀야지요. 밥상맡에 앉은 곁님이나 아이들이 톡톡 읊는 말 한 마디가 밥짓는 살림지기인 저한테 늘 이바지해요. 잘 지은 맛밥인지, 좀 엉성한 밥인지 스스로 깨닫도록 이끌어요. 맛밥을 지었다면 다음에도 맛밥을 짓도록, 또는 한결 낫거나 새롭거나 다른 맛밥을 헤아려 봅니다. 엉성밥을 지었다면 다음에는 엉성밥 아닌 맛밥이 되도록 생각을 기울이고 이모저모 살펴봅니다. 이러한 얼거리 그대로 ‘책이나 글’을 놓고도 이야기를 해요. 제가 하는 일이 사전짓기이다 보니, 제 글을 비롯해서 이웃님 글을 늘 살피거나 읽습니다. 이때에 이웃님이 쓴 책이나 글에서 엉성한 대목을 만나면 그때그때 적바림해서 제 나름대로 손질해 봅니다. 한결 낫거나 새롭거나 다르게 쓸 수 있는 글길을 살핍니다. 고마운 책을 만날 수 있어 즐겁게 장만해서 읽는 책이기에 ‘고마운 책을 지은 이웃님’한테 아뭇소리 안 하고서 책이나 글을 읽을 수 없습니다. 고마운 책이기에 한 마디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생각해요. 제가 쓴 책이나 글을 놓고도 누구나 얼마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웃님 누구나 쓴 책이나 글을 놓고도 누구나 어떤 이야기이든 널리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마음을 활짝 열고 함께 배우면서 삶길을 다스리거나 갈고닦을 적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설 수 있지 싶습니다. 2018.1.2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