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옮기는 글쓰기



  나는 요즈음 한국말로 나온 《말괄량이 삐삐》가 영 못마땅하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문학을 옮기는 분들도 참 못마땅하다. 누군가 묻겠지. 왜 못마땅해 하느냐고. 그러면 나는 한 마디를 한다. “한국에 스웨덴말을 가르치는 대학교 학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스웨덴 문학을 스웨덴말이 아닌 독일말에서 한국말로 옮기더군요.” 하고 대꾸한다. 생각해 보라. 한국 문학을 한국말 아닌 ‘일본말로 옮겨 놓은 책’을 바탕으로 영어나 프랑스말이나 독일말로 옮긴다면? 말맛이 제대로 살거나 말결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지난날 한국에서는 러시아 문학이나 프랑스 문학이나 독일 문학뿐 아니라 에스파냐 문학이나 포르투갈 문학을 으레 ‘일본책을 바탕으로 옮겼’다. 때로는 영어로 나온 문학마저 일본책을 바탕으로 옮기기까지 했다. 이때에 얼마나 말맛이나 말결을 살렸다고 할 수 있을까? 일본책을 바탕으로 옮긴 세계문학은 한국에 ‘일본 말씨’나 ‘번역 말씨’를 퍼뜨린 불씨가 아니었을까? 어제 어느 ‘노르웨이 문학’을 읽는데, 노르웨이말이 아닌 영어를 바탕으로 옮긴 책이더라. 노르웨이하고 스웨덴하고 덴마크는 서로 말이 가까우면서 다르다. 그러나 스웨덴말을 익혔다면 노르웨이말도 찬찬히 익히는 길을 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서는 노르웨이말을 가르치는 대학교가 있다는 뜻이요, 이곳에서 제대로 참답게 슬기로이 사랑스러운 번역살림을 꽃피우도록 이끌 수 있어야지 싶다. 책을 펴내는 곳도 영어 번역자 아닌 ‘스웨덴말 번역자’나 ‘노르웨이말 번역자’를 찾아야지. 널리 알려진 《안네의 일기》 같은 책은 ‘네덜란드말로 이룬 문학’이다. 그런데 이 책을 네덜란드말로 옮긴 책이 몇이나 될까? 한둘이나 될까? 으레 독일말에서 옮기는데, 네덜란드말하고 독일말은 다르다. 같은 말이 아니다. ‘제품사용설명서’라 하더라도 그 나라 말을 바탕으로 옮겨야 알맞을 텐데, 문학이라면 더더욱 그 나라 말을 살피고 헤아리고 생각하고 느끼면서 옮겨야 하지 않을까? 2018.1.2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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