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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 - 흔적에 길을 묻다 ㅣ 오늘의 다큐 5
박노철 지음 / 눈빛 / 2016년 6월
평점 :
사진책 읽기 364
이 사진은 눈 덮인 냇물이 아닙니다
― 폐광, 흔적에 길을 묻다
박노철 사진, 눈빛, 2017.6.29. 25000원
해마다 며칠쯤 시골이 북적입니다. 새해 첫머리, 설날, 한가위에 자동차가 꽤 북적입니다. 이맘때에는 고샅마다 자동차가 줄짓고, 여느 때에는 고샅이든 한길이든 안 보이던 사람들이 보이며,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요.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기에 여느 날 시골은 매우 조용합니다. 도시하고 매우 먼 시골은 더욱 조용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도시하고 먼 시골은 여러 가지가 많이 나곤 해요. 먼저 먹을거리가 많이 나지요. 들이며 숲이며 냇물이며 깨끗하니 곡식이나 열매가 잘 자랍니다. 깨끗한 바다를 낀 시골이라면 갯것이나 바닷것이 잔뜩 나오고요.
그리고 도시하고 먼 강원도 시골에는 화석연료라 하는 광석이 많습니다. 도시라는 자리에서 강원도를 보자면, 옛날에는 ‘탄광이 많은 고장’이었을 테고, 오늘날에는 ‘주말이나 휴가철에 놀러가는 고장’일 테지요. 머잖아 ‘겨울올림픽을 여는 고장’이라는 이름을 얻을 테고요.
광산은 사라져 가지만 그곳에 아직도 흐르고 있는 희고 붉은 폐광수는 분주했던 옛 탄광촌의 영화를 말해 주는 것 같다. 산맥 골골 깊은 곳, 옛 광산에서 흘러나오는 붉고 흰 폐광수는 그 옛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광부들의 애환이 깃든 피눈물일 수 있다. (167쪽)
사진책 《폐광, 흔적에 길을 묻다》(눈빛, 2017)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말 그대로 폐광을 다룹니다. 강원도 깊은 멧골에 있다가 문을 닫은 탄광을 다룹니다. 기나긴 날 광석을 캐다가 이제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훤히 드러나는 등골 시린 모습을 다룹니다. 한때 탄광이던 곳이 폐광으로 바뀌면서 오늘 어떤 ‘자국’으로 있는가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헤아려 보면, 폐광이 되고 나서야 환히 드러나는 등골 시린 모습은 아니지 싶습니다. 한창 탄을 캐던 무렵에도 이 같은 모습이었으리라 생각해요. 어쩌면 한창 탄을 캐던 무렵에는 더욱 등골 시린 모습이었을 수 있습니다.
폐광 아닌 탄광이던 무렵에는 광산에서 흘러내리는 ‘광물 섞인 물’이 들이나 숲이나 내를 흠뻑 물들이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우리들입니다. 지난날에는 숲을 망가뜨리고 마을을 더럽히는 ‘폐광수’를 거의 헤아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지난날에는 공장 굴뚝 매연하고 쓰레기물을 ‘개발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사진책 《폐광》은 한여름에도 마치 눈이 내린 듯한 냇물을 보여줍니다. 둘레에 풀이나 나무는 짙푸른데, 냇물만 새하얀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면서 영 뜬금없다 싶은 모습을 나란히 보여줍니다. 둘레 숲은 한겨울에 눈이 소복하게 덮여 새하얀데, 폐광수가 흐르는 물줄기는 싯누렇거나 시퍼렇습니다.
때로는 싯누런 물줄기하고 시퍼런 물줄기가, 또는 싯누런 물줄기하고 새하얀 물줄기가 만납니다.
한참 《폐광》을 넘기다가 어릴 적에 본 냇물 모습이 문득 떠오릅니다. 제가 어릴 적 살던 마을에 식품공장하고 연탄공장이 있었어요. 두 곳에서 흘러나오는 쓰레기물은 뭐랄까 매우 아리송한 빛깔이면서 때로는 무지개 같은 빛깔이었습니다. 이러면서 냄새가 코를 찔렀지요. 어른들은 “거기 그만 쳐다봐라. 코 뚫릴라.” 하면서 도리질을 쳤으나, 두 공장에서 나오는 쓰레기물이 어우러지는 아리송한 빛깔에 사로잡혀서 한참 쳐다보곤 했습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황변현상과 백화현상의 산과 계곡을 우리가 보듬어야 한다. 그나마 환경 복원사업으로 일부 회복되어 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외면받는 폐광의 잔재들은 차고 넘친다. 나는 좀더 가까이에서 그 불편한 진실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168쪽)
이 땅에서 석유는 나지 않는다고 하기에 석유밭 언저리가 얼마나 새까만지를 두 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석탄이 많이 났기 때문에 석탄밭 언저리가 얼마나 새까만지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을 닫은 석탄밭 둘레가 그동안 어떤 자국이었는가를 똑똑히 지켜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모습을,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을, 우리가 살아가는 길을, 차근차근 짚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땅밑에서 광물을 캐내느라 탄광 둘레 숲이나 마을은 그동안 얼마나 망가졌는지 짚어야지 싶어요. 광물을 더 캐내지 않아도 폐광이 된 뒤로 한참 지난 오늘날까지 얼마나 모진 쓰레기물이 흐르는가를 또렷이 짚어야지 싶어요.
여기에 몇 가지를 더 짚어야지 싶습니다. 숱한 공장이나 골프장이나 큰 발전소 곁은 어떤 자국이나 모습일까요? 아늑한 물질문명을 누리느라 시골은, 숲은, 마을은, 폐광 둘레는 앞으로 얼마나 더 아파야 할까요? 앞으로는 전기나 문명이나 자원을 누리는 길을 처음부터 새로 짚으면서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진책 《폐광》이 ‘폐광’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강원도 멧골을 말없이 보여주었다면, 아마 적잖은 분들은 이 사진이 어떤 모습이나 자국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으리라 봅니다. 왜 새하얀 물줄기인지, 왜 시퍼렇거나 싯누런 물줄기인지 도무지 모르겠지요. 다만 시커먼 물줄기를 보고서야 뭔가 있구나 하고 느낄 테고요.
사진으로 똑똑히 바라보면서도 우리가 스스로 삶길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폐광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한강이며 낙동강이며 금강이며 두루 스며들어 우리 목을 죄리라 봅니다. 모두 우리 스스로 끌어들인 모습입니다. 모두 우리 스스로 지은 자국입니다. 2018.1.3.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사진읽기/사진비평)
*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얻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