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1.1.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장석남 글, 창비, 2017.12.8.



귀화(歸化), 비문(碑文), 살(肉)의 눈부심, 만개(滿開), 절(寺) 벽, 창변(窓邊), 내세(來世)의 이야기, 소(沼), 고도(古都), 채식(菜食), 사색(思索), 생(生), 여법(如法)한 나라, 내생(來生), 산(山)집 …… 같은 글월을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시를 쓸 적에 이렇게 한자를 신나게 써야 할까? 이런 글월은 한자 아니라면 밝히거나 나타낼 길이 없을까? 문학이란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는 글쓰기일까? 나이가 제법 있는 이는 한자를 신나게 시에 넣고, 나이가 제법 적은 이는 영어를 신나게 시에 넣는다. 시란 누가 쓰고 누가 읽을까? 시는 어느 삶자리에 머물까? 시를 써서 나누려는 이는 어떤 이웃을 헤아리는 마음일까? 시를 묶어서 책 하나로 나누려는 뜻은 어디에 있을까? 인천에서 나고 자란 뒤 문예창작학과 교수라든지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하는 분이 선보인 시집을 고흥 시골버스로 읍내를 다녀오는 길에 읽다가 얹힐 뻔하다. 삶을 써야 시라고 이야기하는 글쓴이한테 ‘삶을 담는 말’이란 무엇일까? 어떤 삶을 담는 말일까? 어떤 삶을 담는 말로 어떤 삶을 노래하려는 이야기일까? 고흥 읍내에 닿아 시집은 가방에 집어넣고 큰아이 손을 잡고 저잣마실을 본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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