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 지음 / 빨간소금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책읽기 삶읽기 300



술푸념 같은 수다마당

―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 엮음

 빨간소금 펴냄, 2017.1.23. 13000원



“글 쓰신다니께 여쭤봐야 쓰겄네. 왜 장화홍련 안 있유? 갸들 중이 어떤 년이 죽일 년이랴? 우덜이 읽어서 아는 출신덜이 아니구 맬깡 들어서 아는 출신덜이라 줏어들은 가락이 지각각이다 보니께 합이를 못 보겄네?” (10쪽)


“경제 워쩌구 따질 만헌 전답이 죄다 누구 거간디? 당장 우덜만 혀두 조상님이 물려준 전답 다 워쨌댜? 자석새끼덜 갤친다구 팔아잡숴, 사업헌다믄 공장 뒷구녕에 쑤셔 느줘, 남은 전답두 워디 우덜 꺼여? 맬깡 농협이다 잽혀먹었지?” (71쪽)


“사램두 늙어서 속이 텅 비야 시방 맹키루 허깨비 같은 연기가 스쳐두 속이 올믄서 눈물을 수월헉 떨구는 거니께. 그눔의 거 얼렁 떨구구 가야지 원제까장 그 무거운 놈의 걸 달구 댕기믄서 용을 쓸겨, 안 그려?” (249쪽)



  오늘날 시골자락에서 할배가 쓰는 말은 방송이나 농협에서 쓰는 말에 젖어들었습니다. ‘민중자서전’ 같은 책에서 엿볼 수 있는 삶하고 살림이 녹아든 슬기로운 말을 오늘날 시골자락 할배한테서 듣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시골자락 할배한테 ‘껄렁한 말놀이’ 아닌 ‘흙을 만지면서 살림을 가꾼 이야기’를 바란다면 틀림없이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비록 요즈음 어르신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무렵 흙일을 배운 터라 기계하고 농약하고 비닐하고 비료 없이는 땅을 만지지 못하시는 얼개가 되었으나, 이분들이 더 어릴 적에 마음껏 들하고 숲하고 바다를 가로지르며 놀던 이야기하고 그무렵 둘레 어른 곁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삶을 돌아본 이야기를 여쭌다면 자근자근 삶꽃을 나누어 줄 만하리라 생각해요.


  《한 치 앞도 모르면서》(빨간소금, 2017)라는 책을 집을 적에는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집을 짓고, 숲을 보듬으며, 아이들을 사랑하는 손길이나 눈길이 말길에 어떻게 녹아드는가 하는 대목을 느낄 수 있으려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 흐르는 충청도 시골 할배 이야기는 ‘슬기로운 사투리’라기보다는 ‘껄렁한 사투리’입니다. 사회나 정치나 살부빔을 둘러싼 수다라면 저로서는 달갑지 않습니다. 읽는 내내 거북합니다. 재미도 못 느끼겠습니다.


  다만 저는 연속극을 아예 안 봅니다. 집에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고 삽니다. 흔한 한국영화조차 안 봅니다. 연속극도 텔레비전도 그때그때 떠도는 한국영화도 즐겨보는 분이라면 이 책이 제법 재미있을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저는 이 책이 나쁘다거나 얄궂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며 사랑을 노래하는 슬기로운 이야기를 엿볼 수 없기에, 첫 쪽부터 마지막 쪽을 읽어내기까지 매우 고되었습니다. 시골 할배는 어쩌다가 노래를 스스로 잊거나 잃으면서 푸념만 가득한 하루가 되고 말까요. 2017.12.2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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