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사전 뜻풀이는 이제 그만
[오락가락 국어사전 1] ‘한풍=찬 바람’, 그러면 ‘찬바람’은?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오락가락하는 뜻풀이가 무척 많습니다. 한자로 된 낱말은 뜻풀이를 붙이면서, 텃말에는 뜻풀이를 안 붙이기 일쑤예요. 우리한테 텃말이 없다면 한자말이든 영어이든 받아들여서 써야겠지요. 그러나 텃말이 버젓이 있으나 텃말은 뒷전으로 밀어내고서 한자말만 북돋우거나 앞세운다면?
‘텃말’이라는 낱말이 낯설 분이 있을 텐데요, ‘텃밭·텃새’ 같은 낱말에서 보기를 얻어 제 나름대로 지어 보았습니다. 어느 한 곳에서 사람들이 살림을 짓고 오래도록 살아오면서 즐겁게 쓴 말을 ‘텃말’이라 할 만하지 싶습니다. 이 땅에 알맞는 오래된 씨앗이라면 ‘텃씨’이고, 이 땅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겨레라면 ‘텃사람’입니다. 오순도순 사이좋은 오랜 마을이라면 ‘텃마을’이요, 즈믄 해가 넘도록 고이 이어온 살림집이라면 ‘텃집’이에요.
이 터전에서 나고 자라며 살아온 낱말을 조금 더 사랑하면서 찬찬히 아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락가락 뜻풀이는 이제 그만!” 하자고 외치려 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낸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를 돌아보면서 “오락가락 말풀이”가 어떻게 있는지 차근차근 짚겠습니다.
수초(水草) : [식물] 물속이나 물가에 자라는 풀 ≒ 물풀
물풀 : [식물] = 수초(水草)
물속이나 물가에서 자라는 풀이라면, 말 그대로 ‘물풀’입니다. 들에서는 ‘들풀’이고, 멧골에서는 ‘멧풀’입니다. 바다에서는 ‘바다풀(바닷풀)’이고요. 사전 뜻풀이는 ‘수초 → 물풀’로 고치고, ‘물풀’에 뜻풀이를 붙여야겠습니다.
조류(鳥類) : 조강의 척추동물을 일상적으로 통틀어 이르는 말 ≒ 새무리
새무리 : = 조류(鳥類)
“조강의 척추동물”은 학문에서 쓰는 글월이기는 할 테지만, 아무래도 사람들 입이나 귀에 와닿기 어렵습니다.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풀이해도 되지 않을까요? 학문에서 ‘강’이라는 한자 이름으로 갈래를 짓는다고 한다면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조강에 드는 등뼈짐승을 통틀어 이르는 말”처럼 뜻풀이를 보탤 수 있습니다. ‘조류 → 새무리’로 뜻풀이를 고쳐야겠습니다.
질투(嫉妬) : 1. 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異性)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 ≒ 강샘·모질·투기 2.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모질(媢嫉) : = 질투투기(妬忌) : = 질투
강샘 : = 질투
시샘 : ‘시새움’의 준말
시새움 : 자기보다 잘되거나 나은 사람을 공연히 미워하고 싫어함. 또는 그런 마음
한자말 ‘질투’는 뜻풀이가 있으나 한국말 ‘강샘’은 뜻풀이가 없습니다. 그래도 ‘시샘·시새움’에는 뜻풀이가 붙어요. 이 대목에서 살짝 한숨을 돌립니다만 ‘질투 → 강샘’처럼 뜻풀이를 고친 뒤, 올림말 ‘강샘’ 자리에서 뜻풀이를 찬찬히 붙여야겠습니다.
기우(杞憂) :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함. 또는 그 걱정. 옛날 중국 기(杞)나라에 살던 한 사람이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 하고 침식을 잊고 걱정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 군걱정
군걱정 : = 기우(杞憂)
쓸데없이 하는 걱정이라면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이를 줄여서 ‘군걱정’이라 하지요. ‘군것질’이나 ‘군말’이라는 말마디에서 엿볼 수 있듯이 ‘군-’을 붙여서 쓸데없는 어떤 것이나 일을 나타냅니다. 한자말 ‘기우’만 뜻풀이를 붙인 사전 얼개를 고쳐야겠습니다.
신-(新) : ‘새로운’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새- : x
사전에 ‘신(新)-’은 앞가지로 나오지만, ‘새-’는 앞가지로 안 나옵니다. 얄궂지요. 한국말 ‘새-’는 마땅히 앞가지로 올라야 합니다. ‘새마을·새마음’은 사전에 안 나와도 사람들이 대단히 흔히 써요. ‘새해·새달·새날·새집·새사람·새말·새길’ 같은 낱말은 바로 ‘새-’가 앞가지이기 때문에 지을 수 있습니다. 이밖에 ‘새책·새꿈·새넋·새돈·새글’처럼 새로운 낱말을 짓는 틀을 마련해야겠지요. 이렇게 해야 한국말이 살아납니다.
한파(寒波) : [지리] 겨울철에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는 현상. 한랭 기단이 위도가 낮은 지방으로 이동하면서 생긴다
추위 : 추운 정도
‘한파’뿐 아니라 ‘추위’에도 뜻풀이는 붙습니다. 그러나 어딘가 엉성합니다. 텃말 ‘추위’는 이렇게 엉성한 뜻풀이여도 될까요? 한자말 ‘한파’만 길게 뜻풀이를 붙일 만할까요? 갑자기 추위가 닥친다면 ‘벼락추위·갑작추위’처럼 새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추위가 닥친다”고만 해도 추위가 갑자기 오는 결을 나타내지요. ‘한파 → 추위’로 손질한 다음에 ‘추위’를 더 꼼꼼히 풀이해 주어야겠습니다.
심안(心眼) : 사물을 살펴 분별하는 능력. 또는 그런 작용 ≒ 마음눈
마음눈 : = 심안(心眼)
마음으로 보는 눈이라고 해서 이를 한자말 ‘심안’으로 적는다고 하는데, 마음으로 보는 눈이라면 마땅히 ‘마음눈’이라 하면 됩니다. ‘심안 → 마음눈’으로 고칠 노릇입니다.
노염(老炎) : = 늦더위
늦더위 : 여름이 다 가도록 가시지 않는 더위 ≒ 노염(老炎)·만염(晩炎)
늦도록 가시지 않는 더위인 ‘늦더위’는 뜻풀이가 ‘노염’한테 안 밀립니다. 히유 하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늦더위’에 붙은 “≒ 노염(老炎)·만염(晩炎)”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사전에 굳이 ‘노염·만염’을 실어야 할까요? ‘노염’이나 ‘만염’이라는 낱말을 꼭 써야 할까요? ‘늦더위’ 한 마디로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군말은 사전에서 덜어야겠습니다.
조언(助言) : 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주어서 도움. 또는 그 말 ≒ 도움말
도움말 : = 조언(助言)
돕는 말이기에 ‘도움말’입니다. 그러나 사전 뜻풀이는 ‘도움말’ 아닌 ‘조언’에 뜻풀이를 붙입니다. ‘조언 → 도움말’로 뜻풀이를 고쳐야 합니다.
양다리(兩-) : 양쪽 다리
양쪽(兩-) : 두 쪽
두다리 : x
두쪽 : x
“양쪽 다리”라는 ‘양다리’는 사전에 나오나, ‘두다리’는 사전에 없습니다. ‘양쪽’이라는 낱말은 사전에 올라도 ‘두쪽’이라는 낱말은 사전에 못 오릅니다. 이 뜻풀이와 올림말 얼개는 몹시 얄궂습니다. 한국사람이 스스로 한국말을 깎아내리거나 업신여기는 모습입니다. 다리가 둘인 모습을 가리킬 뿐 아니라, 어떤 일을 놓고서 이쪽 저쪽에 다리를 걸친다고 하는 모습을 빗대는 말은 ‘두다리’라는 말로 얼마든지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한풍(寒風) : 겨울에 부는 차가운 바람. ‘찬 바람’으로 순화
찬바람 : 냉랭하고 싸늘한 기운이나 느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찬 바람’으로 고쳐쓸 한자말이라는 ‘한풍’입니다. 그런데 사전에 ‘찬바람’이라는 낱말이 따로 올림말로 있어요. 다만 사전에 나온 ‘찬바람’은 차갑거나 싸늘한 기운을 빗대는 말이라고만 합니다. 참 엉성합니다. 차갑게 부는 바람인 ‘찬바람’이라는 낱말이 먼저 있어야, 이 차갑게 부는 바람처럼 차가운 기운이나 느낌을 빗대는 자리에 쓸 낱말이 있을 테지요? ‘한풍 → 찬바람’으로 뜻풀이를 고친 뒤에, ‘찬바람 : 1. 겨울에 부는 차가운 바람 2. 차갑거나 싸늘한 기운이나 느낌을 빗대는 말’과 같이 뜻풀이를 손질해 주어야겠습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