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말하는 글쓰기



  나는 마흔이라는 나이에 접어들기 앞서까지 늘 부끄럽다고 여기며 살았다. 무엇이 부끄러운가 하면 바로 어제까지 한 모든 일이 부끄럽고, 어제까지 쓴 모든 글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책을 새로 내더라도 ‘아, 이 책은 오늘 나로서는 가장 알뜰히 여민 글을 담은 책이지만, 하루가 지나면 또 이 책에 깃든 글을 부끄러이 여기겠지.’ 하고 생각했다. 꼭 마흔을 넘어서라기보다, 마흔에 이르러 비로소 나를 새롭게 돌아보았다. 그때까지는 ‘어제를 잊어야 오늘 내가 새롭게 태어난다’고 여겼다. 마흔 줄에 삶하고 넋하고 숨을 처음부터 다시 새기다가 ‘어제를 잊어야 할 까닭이 없이,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어제이며, 오늘하고 어제는 고스란히 모레이니, 언제 어디에 있는 나라 하더라도 모두 고이 사랑하면서 돌보자’는 생각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물구나무서기가 되었다. 어릴 적에는 물구나무서기를 참말 못했는데, 마흔이라는 나이에 아주 홀가분하게 되더라. 이때부터 나는 그동안 숨기고 살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를테면, 나는 스물여섯 살에 맡았던 “〈보리 국어사전〉 첫 편집장이자 자료조사부장”이라는 이름을 털어놓는다. 나는 〈보리 국어사전〉이라는 사전이 내가 편집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너무 엉망이 되어 터무니없이 나왔는데, 사람들이 이 엉망에 터무니없는 뜻풀이가 가득한 사전이 마치 훌륭한 책이라도 되는 줄 여기며 사들여서 아이한테 읽히는 모습에 놀랐다. 슬펐다. 아팠다. 괴로웠다. 그야말로 부끄러웠다. 죽을 듯했다. 속내를 아는 나로서는 내가 그런 일을 스물여섯 살에 철없이 맡아서 했다는 대목이 부끄러워 안 털어놓고 살았다. 스물아홉 살에는 이오덕 어른 글하고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다.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 글월, 출간계약서, 일기 들을 모조리 살피고 읽고 견주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출판사나 작가나 평론가나 기자나 제자가 이오덕 어른을 비롯해서 권정생 어른한테서 글삯을 떼어먹고 거짓말을 했는지 알았다. 이오덕 어른 글갈무리(유고 정리)를 마치고 꽤 오랫동안 이 나라 책마을에 진절머리가 나서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했다는 대목을 숨기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말한다. 비록 나중에 엉망이 된 사전이라 하더라도 나로서는 싱그러이 푸르던 스물여섯 나이에 대학교 졸업장 없이도 국어사전 편집장을 했다. 한국글쓰기연구회나 시민사회단체 이음줄 없이 혼자 책 읽고 글 쓰던 살림으로 수수하게 어른 한 분을 마음으로 아꼈기에 큰어른 글을 갈무리하는 일이 나한테 찾아왔다. 이 모두를 털어놓으니 후련하다. 그동안 걸어온 길을 숨김없이 밝히니 홀가분하다. 내 어제를 꾸밈없이 말할 수 있으니, 내 오늘은 어제하고는 사뭇 다르면서 스스로 즐거울 모레를 꿈꾸는 걸음이 될 수 있다. 그냥 쓴다. 바람을 타면서 쓴다. 해님을 노래하고 풀벌레하고 벗삼으면서 쓴다. 숲을 꿈꾸는 아이가 되면서 글을 쓴다. 2017.12.1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글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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