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시인에게 - 김명환 시집 마이노리티 시선 4
김명환 지음 / 갈무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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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4


‘ㄱ절’을 하며 기름밥 먹는 이웃
― 젊은 날의 시인에게
 김명환 글
 갈무리, 2017.10.27. 7000원


나는 보았습니다
파란 청바지에 빨간 머리띠
코레일 직접고용을 외치던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친구들을 보았습니다
그 아이들을 해고하던 문자메시지와
그 아이들을 끌어내기 위해 몰려가던
경찰들을 보았습니다
코레일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문을 받고 울고 있는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친구들을 보았습니다 (어느 KTX 여승무원의 이야기)


  저는 어릴 적에 ‘배꼽 인사’라는 말을 몰랐습니다. 아마 집이나 마을마다 쓰는 말이 달랐을 테지요. 제가 어릴 적에 우리 마을 동무들하고 놀던 때 쓰던 말하고,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학교에서 만난 다른 마을 동무들이 쓰던 말이 달랐습니다. 조금 더 커서 다른 고장 또래를 만나니 또 서로 쓰는 말이 다르더군요. 도드라지는 사투리가 아니더라도 서로 쓰는 말이 다른 줄 나이가 들면서 새삼스레 느끼고 배웠어요.

  그러면 저는 ‘배꼽 인사’라는 말을 모르면서 어떤 말을 알았느냐 하면 ‘ㄱ으로 절하기’를 알았습니다. 우리 집 어머니도, 할아버지도, 이웃 할머니나 아주머니나 할아버지도, “얘가 참 ㄱ으로 절을 잘 하네.” 하고 얘기했습니다. 학교에서도 ‘ㄱ으로 절하기’라고 들었어요.


조국아, 대한민국 군대야
너희가 용병이냐
일당 20만 원 받고 파업노동자 목숨줄 끊기 위해 투입된
내 어린 후배들아 아들보다 젊은 후배 군인들아
가다오 나가다오 (가다오 나가다오)


  시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갈무리, 2017)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절하기’가 떠오릅니다. 절 가운데에서도 선 채로 허리를 꺾는 ㄱ으로 절하기, 이른바 배꼽절이 떠오릅니다.
  좀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고속철도 여승무원이라든지, 큰가게 일꾼이라든지, 크지 않더라도 온갖 가게나 밥집이나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손님을 맞이하면서 참말로 아이도 어른도 허리를 꺾어서 절을 하곤 합니다.

  어릴 적을 떠올리면, 둘레에서 어른들이 손님이 왔다며 허리를 꺾어 절을 하는 곳은 드물었습니다. 마을 푸줏간이든 약국이든 빵집이든 구멍가게이든 거의 고개만 까딱하거나 입으로만 인사를 할 뿐이었어요. 어른하고 어른 사이에서 허리를 꺾는 ㄱ절을 하는 때라면, 학교에 장학사나 누군가 높다는 사람이 올 적입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백화점이나 커다란 가게에서였지요. 인천에서 서울로 어버이 손을 잡고 가끔 작은집에 마실을 갈 적에 작은아버지가 어떤 으리으리한 곳으로 이끌어 주면 그곳에 있는 어른 일꾼은 어린이한테도 ㄱ절을 했습니다. 저는 늘 깜짝 놀라서 그분들한테 ㄱ맞절을 했습니다.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고 할까요. 그냥 가볍게 손짓을 해도 좋을 텐데 왜 저렇게 어른 일꾼이 어린이한테도 ㄱ절을 해야 하는지 아리송하곤 했습니다.


저녁노을 타면
세상이 시 아닌가요 (압해도에 가면)

나이 오십에
자전거를 배웠다
초등학교 졸업하도록
자전거 못 타는
자식놈이 답답해서 (자전거)


  어느덧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이 땅에 정규직 말고 비정규직이 있으며, 노동조합이 허울뿐인 데가 많을 뿐 아니라, 헌법에도 나오는 노동삼권을 제대로 못 누리는 사람이 많은 줄 하나둘 알아차립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나 아저씨는 우리 이웃일 수 있고, 때로는 어머니나 아버지일 수 있는데, 일터에서는 몸이 매인 채 고분고분하기만 해야 하는 줄 깨닫기도 합니다.

  서로 이웃이라면 조금 더 부드러이 느긋하게 일해도 좋을 텐데 싶습니다. 서로 한집 사람이라면 한결 푸근하면서 넉넉하게 일해도 좋을 텐데 싶습니다. ‘손님’이란 말도 ‘고객’이란 말도 똑같이 높임말이지만, ‘고객 + 님’이라는 겹말을 쓰도록 시키는 회사나 사회 얼거리입니다. 높이려는 뜻은 나쁘지 않으나 겉치레가 덧치레나 겹치레가 되면서 듣는 사람으로서도 매우 거북한 자리가 생기곤 합니다.


월부로 양복을 맞춰 입고 정종을 사들고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서울 가서 성공했다고
졸졸 쫓아다니는 마을 꼬마녀석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는 창수는
늦게 취해 돌아온 날이면 불쌍한 자기 몸뚱아리가
정말 지긋지긋한 기름밥이 뱃속에 가득 차서
파란 쇳조각이 꾸역꾸역 기어나오는 기계처럼
털털거리는 기계처럼 생각된다고 쓸쓸하게 웃었지만 (우리들의 꿈)


  조금 더 따뜻한 사회로 달라진다면 겉치레나 덧치레나 겹치레는 잦아들 수 있을까요. 조금 더 느긋한 사회로 거듭난다면 어린이한테까지 ㄱ절을 해야 하는 일터는 사라질 수 있을까요.

  조금 더 가볍게 일하면서, 조금 더 살갑게 서로 이웃인 줄 느끼면서 마음을 쓰는 사회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라는 사슬을 끊고서, 일하는 사람 누구나 제몫을 받고 제살림을 꾸릴 수 있는 길을 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자꾸 신분이나 계급을 가르려 한다면,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일삯을 나누려 한다면, 이리하여 모든 사람이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푸대접이나 따돌림을 안 받는다고 여기고 만다면, 매우 갑갑하거나 답답할밖에 없습니다.

  고등학교나 중학교만 마쳤어도 똑같은 일꾼으로 지낼 수 있어야지 싶어요. 초등학교만 마치거나 초등학교조차 안 마쳤어도 똑같은 사람으로서 제 권리하고 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지 싶어요. 서울에 살든 시골에 살든 모두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대목을 헤아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나무는
자신이 서 있는 땅을
버리지 않으며
한겨울 속에서도
잎새를 떨구고
죽음의 빛깔로 말없이
생명을 키우며
어둠 속에서도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


  기름밥 먹는 일꾼이 기름밥보다 사랑밥을 먹고 웃음밥을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작은 시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라고 느낍니다. 참말로 우리 모두 사랑밥 먹는 이웃이 되기를 빌어요. 웃음밥에 노래밥을 함께 먹고,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어깨춤을 지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빌어요. 이 겨울에 찬바람을 먹으면서도 속으로 새로운 움을 키우는 나무 같은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서로 나무가 되고 함께 숲이 되어 이 땅을 푸르게 가꾸는 알뜰한 한 사람이 되기를 빕니다. 2017.12.1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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