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11.24.


고흥읍에 닿아 순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린다. 버스에 올라 가방을 내려놓고 나서 곧장 시집 《반지하 앨리스》를 편다. 바로 오늘 읽으려고 지난주에 장만했다. 다만 지난주에 책값을 치렀지만 책은 어제 닿았다. 오늘 바깥마실을 가는 길에 이 시집을 못 챙기려나 챙기려나 살짝 조마조마했는데, 때마침 어제 느즈막한 낮에 택배 꾸러미가 왔다. 시인 신현림 님은 여덟 해 동안 모은 돈을 어느 날 모두 날리면서 지난 여덟 해를 반지하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아니 어쩌시다가? 한창 젊은 나이가 아닌 제법 나이가 든 뒤에 반지하집에 머물러야 하는 살림살이가 싯말마다 진득하게 흐른다. 무척 고되셨으리라 느낀다. 이러면서도 한 가지를 떠올린다. 도시에서 반지하집 달삯이나 보증금을 댈 돈이라면, 시골에서는 빈집을 사서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시골은 도시하고 달리 일거리가 적다고 여길는지 모르나, 외려 시골에 일거리가 더 많을 수 있다. 논밭일도 많고, 읍내나 면내 가게에는 늘 일손이 모자라다. 요즘 같은 한국 사회에서는 도시살이를 접고서 시골살이를 할 적에 뜻밖에 돈을 차곡차곡 모으는 길을 열 만하고, 한결 나은 삶터, 이를테면 가까이에서 숲이나 바다나 멧골을 누리는 하루를 맞이할 만하다. 그나저나 시인 신현림 님은 젊은 날에 부대끼는 아픔이 아닌, 아이를 건사하면서 반지하방에서 죽도록 일하는 고달픔을 고스란히 시로 그려내면서 이 고달픔이나 아픔을 민낯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슬픈 노래로 담고, 아픈 노래로 들려준다. 마치 제니퍼 허드슨 노래를 듣는 듯했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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