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빨래터에서 읽은 책 2017.11.3.
한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더니 마을 어귀 빨래터에 물이끼가 잔뜩 꼈다. 어제 비로소 알아챈다. 오늘 낮에 치우려 했으나 낮을 지나친다. 마당에 넌 빨래를 걷어 마루로 옮기고서 큰아이하고 빨래터에 간다. 큰아이더러 물이 차니 담에 앉아 책을 읽으라 하지만, 큰아이는 굳이 소매를 걷고서 일손을 거든다. “아버지는 발 안 시려?” “응, 안 시려.” 빨래터에 잠자리가 둥둥 떠다닌다. “여기 잠자리가 빠져서 죽었어. 왜지?” “잠자리가 여기에 알을 낳으려고 했나 보네. 알을 낳고 죽었나 봐.” “어디? 알 안 보이는데?” 큰아이가 죽은 잠자리 두 마리를 손으로 건져서 풀숲으로 옮겨 준다. 나도 죽은 잠자리를 한 마리 건진다. 아무리 포근한 남녘이라 해도 11월이면 잠자리도 숲이나 흙으로 돌아가야지. 이듬해에 새로운 알이 깨어나서 물속에서 힘차게 노닐어야지. 요즈막에 마을 할매랑 할배한테서 들은 ‘샘터님(또는 샘터지기)’을 그려 본다. 우리가 마을 빨래터랑 샘터를 정갈하게 치워 놓으면 모두 잠든 밤에 살며시 이곳에 나타나서 신나게 물놀이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어쩌면 작은 시골마을 빨래터에 밤마다 하늘에서 선녀님도 샘터님도 이런저런 숱한 님도 내려와서 노닐는지 모른다. 왜 일본 만화영화에도 이런 얘기가 있잖은가. 센하고 치히로가 나오는. 선녀님이든 샘터님이든 모두 우리 마을 정갈하며 싱그러운 물을 누리시기를 빌어 본다. 이렇게 일을 마치고서 나는 아프리카 오카방고를 다룬 《지구의 마지막 낙원》을 읽는다. 이 책은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날면서 이웃 숲짐승한테 말을 거는 얼거리로 이야기를 편다. 이 책에 실은 사진도 좋고, 그림도 좋다. 글은? 글도 시원스레 읽는다. 평화로운 아프리카뿐 아니라 지구라는 별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눈길이 좋다.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