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집배원 최씨 눈빛사진가선 49
조성기 지음 / 눈빛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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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9



우리 곁 고운 이웃을 바라보는 손길

― 우편집배원 최씨

 조성기 사진

 눈빛 펴냄, 2017.7.26. 12000원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우편집배원을 볼 적마다 어떻게 집집을 다 돌 수 있을까 하고 몹시 궁금했어요. 온 집을 돌면서 어떻게 편지를 안 틀리고 돌리는지 궁금했고요. 그냥 모든 집을 다 돌아서는 될 일이 아닐 테지요. 골목골목 샅샅이 알 뿐 아니라, 가장 빠르면서 한 집도 안 빠뜨릴 수 있을 만하게 다녀야 할 테고요.


  어떻게 모든 집을 찾아다닐 수 있느냐 하는 궁금함은 오래지 않아 풀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신문을 돌리는 일을 했어요. 신문을 돌리려면 집배원처럼 마을집을 꼼꼼히 알아야 합니다. 우유를 돌리는 일을 할 적에도, 다른 가게에서 배달을 할 적에도, 모두 마을집을 낱낱이 알아야 하지요.


  마을사람이기에 마을집을 꿰뚫기도 합니다. 한마을에서 사는 이웃이니 서로서로 마을집을 환하게 들여다봅니다. 일도 일이라고 할 만하지만, 마을에서 하는 일이란 늘 이웃을 마주해요. 이웃집 사람이 우리 가게 손님입니다. 우리 스스로 이웃가게에 손님으로 찾아갑니다.


  이런 흐름에서 더 짚어 본다면, 지난날에는 세금고지서는 드물고 참말로 편지가 많았어요. 엽서도 많았고요. 전화조차 드문드문 있던 무렵에는 흔히 편지나 엽서를 띄웠습니다. 하루나 이틀쯤 가벼이 기다리면서 글월을 띄워요. 사나흘이나 이레쯤 넉넉히 기다리면서 글월을 써요. 오래고 깊은 손길을 담아 글월을 적어 띄우고, 오래고 깊은 손길을 담은 글월을 기쁘게 받지요.


  그러니 이런 글월을 가방 가득 담아서 나르는 집배원은 배달이라는 일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주는 일꾼입니다. 집집마다 기쁘거나 슬픈 이야기를 살포시 건네는 이웃님이에요. 때로는 봄철 제비처럼 새롭고 반가운 이야기를 알려주기도 하고요.



1994년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날 우연히 우체국 잡지 기사에서 정년퇴직을 앞둔 지리산 산골마을의 집배원을 알게 되었다. 문득, 나는 집배원의 일상을 촬영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그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무작정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서 그의 근무지인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함양군 마천우체국까지 찾아갔다. 당시 나는 학생 신분으로, 그는 자신을 며칠이고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게 해 달라는 나의 요청을 첫 만남에 거절하였다. 나는 며칠 뒤 우체국의 허락을 얻으면 그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어 발걸음을 우체국으로 돌렸다. 사정을 말하니 우체국장님은 선뜻 집배원용 오토바이까지 협조해 주셨다. 그 후 그에게 촬영을 허락해 달라 재차 간곡하게 말했고, 그는 나의 부탁을 끝내 들어주었다. 그는 집 대문 옆에 작은 방을 내주었고, 함께 집밥까지 먹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는 당시 나의 열정을 가상히 여겼던 것 같다. (3쪽/머리말)



  사진책 《우편집배원 최씨》(눈빛, 2017)를 읽습니다. 사진책에 흐르는 지리산 우편집배원 삶자국을 가만히 읽습니다. 1994년에 열흘에 걸쳐서 우편집배원하고 함께 마을이랑 멧자락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마다 깃든 수수한 이야기를 읽습니다.


  1994년만 하더라도 집배원 오토바이가 널리 퍼졌습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오토바이 아닌 자전거로 편지를 날랐고, 두 다리로 걸어서 골목을 누빈 집배원도 많아요. 마을하고 마을 사이가 띄엄띄엄인 시골에서라면 으레 자전거를 달려야 할 테지요. 골목마다 빼곡히 살림집이 맞닿은 도시에서는 자전거가 오히려 번거로울 수 있으니 걸어서 편지를 날랐을 테고요.


  저는 자전거랑 우표랑 골목을 퍽 좋아하기에 어릴 적에 ‘집배원으로 일하는 삶’이 여러모로 재미있고 뜻있으리라 여기곤 했습니다. 숱한 사람들 이야기를 다 다른 글씨로 적은 봉투에 온갖 우표가 붙어서 여러 고장을 넘나들어요. 집배원은 이 숱한 편지를 손수 갈무리하여 알맞게 집집마다 돌립니다. 글월을 띄우는 사람이 실어 보내는 마음을 헤아리면서 고이 간수합니다. 글월을 기다리면서 받을 사람이 설렐 마음을 생각하면서 알뜰히 건사하고요.


  사진책 《우편집배원 최씨》는 꼭 열흘 동안 우편집배원하고 함께 움직이며 찍은 사진을 모았으니, 더 깊거나 너른 이야기를 담기는 어려운 사진책으로 얼핏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편집배원 살림하고 발자국을 찬찬히 지켜보면서 함께 움직이는 마음이라면 열흘 아닌 하루만 함께 움직이더라도 지리산에서 여러 마을을 휘돌면서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사진으로 애틋하게 보여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1994년부터 2017년까지 어느덧 스물 몇 해라는 나날이 켜켜이 쌓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1994년 같으나 한 해 두 해 흐를수록 더 먼 지난날이 됩니다. 앞으로 2020년이나 2024년쯤 되면 그무렵에는 지리산 멧골마을 집배원은 어떤 차림으로 어떤 마을하고 어떤 집을 돌면서 일을 하려나요. 요즈음에는 지난 1994년하고 다른 어떤 발걸음이나 몸짓으로 어떤 이웃을 마주하는 집배원이 있을까요.


  스물 몇 해 사이에 그리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 있을 테고, 이동안 눈부시게 달라진 모습이 있을 테지요. 1994년에 허리 굽은 할머니인 분은 오늘날 어떻게 지내실까요. 그즈음 어머니 등에 업힌 아기는 오늘날 어떤 어른으로 자랐을까요. 그무렵 기저귀를 빨던 아주머니는 오늘날 어떤 보금자리를 가꿀까요.


  우편집배원은 편지로 사람하고 사람 사이를 잇습니다. 우편집배원을 사진으로 담은 한 사람은 사진으로 사람하고 사람 사이를 잇습니다. 아스라한 지난날하고 오늘날을 잇고, 그리 멀지 않은 듯하지만 어느새 꽤 멀리 떨어진 지난날하고도 오늘날을 가만히 잇습니다. 먼 길을 글월 하나가 잇고, 먼 나날을 사진 하나가 이어요.


  이 가을에 사진 한 장 찍어서 뒤쪽에 우표를 붙이고 몇 줄 이야기를 적어서 먼 곳에 사는 이웃이나 동무한테 부쳐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우체국에서 엽서 한 장 장만해서 뒤쪽에 사진을 붙여서 부쳐 보아도 재미있을 테고요.


  때로는 우리 스스로 집배원이 되어 글월을 건넬 수 있습니다. 손수 쓴 글월을 가방에 넣어 시외버스를 달리지요. 전남 고흥에서 서울로 글월 하나를 손수 실어 날라 볼 수 있습니다. 부산에서 광주로 글월 하나를 몸소 실어 날라 볼 수 있어요. 더 빨리 나르지 않아도 글월 하나는 우리한테 즐거운 이야기가 됩니다. 더 많은 사진을 찍지 않아도 사진 하나는 오래도록 우리 곁에 반가운 이야기로 머뭅니다.


  우리 곁 고운 이웃을 바라보는 손길로 사람이랑 사람 사이를 이은 우편집배원이 있습니다. 이 우편집배원을 고운 눈길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 어제랑 오늘을 이은 사진가 한 사람이 있습니다. 2017.10.15.해.ㅅㄴㄹㄴ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사진읽기/사진넋)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아서 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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