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이소이 요시미쓰 지음, 홍성민 옮김 / 펄북스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7



마을도서관은 책 하나를 촛불로 키운다

―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이소이 요시미쓰 글/홍성민 옮김

 펄북스, 2015.9.15. 13000원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접어들고서 2010년대로 이르는 동안을 가만히 되새깁니다. 이 스무 해 사이에 한국에서는 마을책방(동네책방)이라고 하는 곳이 대단히 많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제 마을에서 자그마한 책방은 책을 팔아서 먹고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았어요. 참고서 장사조차 안 된다고들 했지요.


  이 흐름은 틀리지 않다고 느껴요. 더욱이 이 흐름은 우리한테 앞으로 새로운 마을책방이 서야 한다는 뜻이라고도 느껴요. 이제는 참말로 큰책방이든 작은책방이든 서울책방이든 마을책방이든 ‘참고서에 안 기대고 오로지 책다운 책으로 마을이웃을 만나는 새로운 책방으로 거듭날 노릇’이라고 할까요. 마을책방이 마을에서 제대로 버티거나 뿌리를 내리려면 참고서를 책꽂이에서 털어낼 노릇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참고서라고 해서 나쁠 일은 없겠지요. 다만 한국 사회에서 참고서란, 거의 모두 대학입시에서 쓰고, 대학입시는 아이들을 줄세우는 계급장을 가르는 구실을 했어요. 배움길에 도움(참고)이 되는 책인 도움책(참고서)이 아닌, 그저 대학입시 시험공부 문제풀이에만 치우친 책이라면, 앞으로는 사람들이 이러한 책에 등을 돌리기 마련이라고 할 만해요. 오늘날 새로운 마을책방은 학습·입시 참고서에서 벗어나 ‘삶에 길동무가 되는 도움책’을 갖추는 길로 거듭나야 하고, ‘작은 사람이 마을에서 손수 살림을 짓는 길에 벗님이 되는 도움책’을 나누는 길로 거듭나야지 싶기도 합니다.



내가 먼저 그에게 나의 꿈을 말했다. “길모퉁이마다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 그곳에서 서로 배움을 나누는 작은 모임을 열고 싶어! 동네도서관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47쪽)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배움을 나눌 기회를 얻고 싶었다. 거기에는 번듯한 장소가 없어도 된다. 책은 각자 갖고 오면 된다. 결국, 문제는 자금이 아니었다. (49쪽)



  2010년대가 깊어 갑니다. 마을책방은 꾸준히 늘어납니다. 서울에서든 지역에서든 마을책방 이름을 걸고 새롭게 문을 여는 젊은 책방지기는 거의 모두 책방에 ‘참고서를 안 둡’니다. 오늘날 마을책방은 대학입시하고 얽힌 수험서는 아예 책방에 안 들여요. 이뿐 아니라 자기계발을 다룬 책도 거의 안 들이다시피 하지요. 학습만화까지도 책방에 안 들이고요.


  오늘날 마을책방은 참고서를 털어내면서 널찍하게 마련한 아기자기한 자리에 독립출판물을 꽤 넉넉하게 두곤 합니다. 오랜 출판유통을 거스를 뿐 아니라 아주 작고 수수하게 짓는 작고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작고 수수한 책을 즐거이 놓아요. 이뿐 아니라 마을 작가 책을 발판으로 마을 이야기를 수수하게 나누는 작은 이야기판을 꾸준하게 마련해요.


  이러한 모습을 돌아보노라면 우리 사회가 아름다운 길로 한 발짝씩 다가서네 싶어서 반갑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더라도 한 걸음씩 씩씩하게 내디딘다면 시나브로 멋진 새터를 지을 만하지 싶어요.



동네도서관은 사람의 힘을 믿고,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활동이다. 자신이 먼저 용기 내어 첫걸음을 떼면 반드시 함께하는 사람이 생긴다. (61쪽)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서 우주를 이야기하고, 인근의 절과 들판에서 책을 읽고, 도서관으로 돌아와 스튜와 와인을 즐기며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88쪽)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펄북스, 2015)를 읽으면서 마을도서관을 새삼스레 되새깁니다. 이 책은 마을책방 아닌 마을도서관을 이야기합니다만, 오늘날 새로운 마을책방을 가만히 돌아보아도 서로 맞물리는 대목이 있다고 느껴요. 온누리를 바꿀 만한 마을도서관하고 마을책방은 늘 함께 있을 테니까요. 마을책방이 서는 마을에 마을도서관이 섭니다. 마을책방 일꾼이 마을지기 노릇을 맡을 수 있는 마을에 마을도서관도 마을지기 노릇을 나란히 맡습니다.


  작고 수수한 마을사람이 손수 지은 이야기를 책으로 여미어 마을책방에 두어요. 마을사람이 지어 마을책방에 놓는 책은 이른바 ‘마을책’이라 할 수 있어요.


  와! 생각해 봐요.


  마을사람이 마을살림을 엮어서 마을책을 짓고는 마을책방에 두어요. 마을이웃이 마을책을 장만하는 돈은 ‘마을돈’이 되어 마을살림을 새로 가꾸는 밑돌이 되기도 합니다. 마을책이 하나둘 늘면 마을사람은 마을에서 지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을도서관을 꾸릴 만해요. 마을마다 마을꽃이 피고 마을노래가 흐릅니다. 이리하여 이 마을은 이 마을대로 거듭나고 저 마을은 저 마을대로 자라나요.



(병원) 투석센터는 기존 건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커다란 책장을 놓을 공간이 부족했다. 고심 끝에 복도를 따라 속이 깊지 않은 책장을 만들기로 했다. 책은 앞표지가 보이도록 진열했다. 덕분에 복도에 책을 전시하는 형태가 되었다. 거기에 그림 솜씨 좋은 수위가 실력을 발휘해 책을 기증한 의사와 직원의 얼굴 그림을 그려 책 옆에 붙여 주었다. (95쪽)


도쿠시마 현에도 개인 집을 동네도서관으로 꾸민 사람이 있다. 지역에 따로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지 않아도 동네도서관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113쪽)



  대단한 도서관을 대단한 건물로 지은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입니다. 마을사람 몇몇이 뜻을 모아서 마을사람을 비롯한 숱한 다른 이웃한테 이야기씨앗을 심을 수 있는 즐거움을 다루는 책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책 하나로 나라를 바꾸는 길을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촛불 한 자루로 나라를 바꾸는 길을 우리가 스스로 열었듯, 이제는 책 하나로 얼마든지 마을뿐 아니라 나라를 바꿀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스스로 찾아서 열 수 있다고 할 만해요.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을 흔히들 하는데요,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읽을 만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을 바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읽을 만한 아름다운 책을 아직 못 만나서, 또 읽을 만한 사랑스러운 책을 아직 겪지 못해서, 적잖은 사람들은 책을 못 사귄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럴 만도 하지요. 초·중·고등학교에서 입시에 짓눌리는 어린이나 푸름이는 책다운 책을 가까이할 겨를을 내기 힘듭니다. 게다가 입시 공부에 너무 괴로운 탓에 책다운 책을 선뜻 집고 싶지 않아요. 스무 살 풋풋한 나이까지 책을 가까이하지 못하는 삶을 보낸다면 앞으로도 책을 가까이하기는 어려울 만합니다. 꼭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삶을 밝히는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책이 한두 권이나 열 권 즈음 있을 수 있는데, 아주 많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한 권이나 사랑스러운 두 권을 못 만나기 일쑤라는 뜻이에요.



현대의 생활환경은 대중을 철저히 ‘이용자’로 만들고 있다. 행정이나 기업에서 모든 시설과 서비스를 준비하고 우리는 그 시설과 서비스를 그저 이용할 뿐이다. 이것은 언뜻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반대로 참여의식을 떨어뜨려 매사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129쪽)


동네도서관에는 당연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참가하는데, ‘책’보다 우선하는 것이 ‘사람’이다. (188쪽)



  마을도서관은 더 많은 손님이 드나들도록 해야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마을사람을 하나하나 고이 헤아리면서 느긋하게 책을 마주하고 넉넉하게 마음을 가꾸도록 북돋우는 쉼터나 우물가 같은 자리입니다.


  더 큰 건물이 아니어도 될 마을도서관입니다. 더 많은 책이 없어도 될 마을도서관입니다. 마을사람이 가벼운 차림새로 찾아가서 가볍게 한두 시간을 책으로 쉬며 마을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됩니다. 때로는 다른 고을 손님이 찾아와서 하루를 묵으며 ‘이 마을에 깃든 아름다운 숨결’을 느끼도록 할 만한 마을도서관이에요.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 마을도서관이 될 수 있어요. 우리 집에 있는 책 몇 권을 마당에 책꽂이를 짜서 평상 곁에 두면서 작은 도서관이 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담을 허물어 열린 주차장으로 삼기도 하는데요, 담을 허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담을 허문 자리에 책꽂이 한 칸을 짜 놓을 수 있어요. 작은 마을가게 한쪽에 책꽂이 한 칸을 두는 마을도서관을 삼을 수 있습니다. 마을가게에 들러 담배 한 갑을 사는 길에도 살짝 시집 한 권 집어서 시 몇 꼭지를 읽을 수 있지요.


  마을 건널목에도 걸상하고 책꽂이를 두어 ‘건널목 도서관’을 꾸릴 수 있습니다. 마을사람이 늘 드나드는 버스 타는 자리에도 걸상하고 책꽂이를 두고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가볍게 책 몇 줄을 읽는 ‘버스 기다리는 도서관’을 꾸릴 수 있습니다. 도시에는 길거리에 나무를 심어 가꾸는데요, 서른 해나 쉰 해쯤 잘 자란 나무라면 그늘이 매우 좋아요. 이 나무 그늘 밑에 걸상 하나랑 책 몇 권이 어우러진 ‘나무 밑 도서관’을 골목마다 꾸며 볼 수 있습니다.


  나라나 지자체에서 마을가꾸기에 돈을 안 쓴다고 탓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작고 이쁘게 마을도서관을 하나둘 마련해서 알뜰살뜰 누릴 수 있으면 돼요. 손에 쥐는 책 하나가 촛불이 될 수 있습니다. 손에 쥐는 책 하나로 이 나라를 새로 일으키고 아름답게 바꾸어 내는 촛불물결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2017.10.1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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