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가 ‘달거리천’ 빨래하면 달라집니다
[아저씨 살림노래] 핏기저귀 손빨래 열한 해를 돌아보며
종이와 천, 두 가지 기저귀
우리는 손이나 낯이나 발을 닦는 천을 한 번만 쓰고 버리지 않습니다. 부엌에서 개수대를 훔치거나 밥상을 닦는 행주를 한 번만 쓰고 버리지 않아요. 속옷을 한 번만 입고 버린다든지, 보자기를 한 번만 쓰고 버리지 않아요. 그러나 한 번만 쓰고 버리는 살림이 있으니, 이 가운데 하나는 아기 기저귀와 가시내 달거리대입니다.
이 나라뿐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를 통틀어서, 아기 기저귀하고 가시내 달거리대를 한 번만 쓰고 버린 물질문명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아기 기저귀하고 가시내 달거리대를 한 번만 쓰고 버리기에 놀랍거나 새롭거나 멋진 물질문명일 수 있을까요?
저희 집은 두 아이를 천기저귀를 대며 살림을 가꾸었습니다. 아이한테 천기저귀를 대려면 으레 ‘그 많은 빨래를 어떻게?’ 하고 생각할 분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물음이 달갑지 않아요. 아이를 낳아서 돌볼 적에는 어버이가 얼마나 많은 품을 들여야 하느냐 하는 대목이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반기거나 좋아하느냐를 헤아려야지 싶어요. 아이 몸에 알맞거나 좋은 길을 헤아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기는 종이기저귀를 좋아할까요? 오줌을 몇 번이고 누더라도 축축해지지 않는다는 화학종이 기저귀를 아기가 참말로 좋아할까요?
까만 전구가 있습니다. 영어로 블랙 라이트라 하는데, 방을 어둡게 하고서 까만 전구를 켜면 우리가 쓰는 종이나 천에 깃든 형광물질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이를 일찌감치 안 분이라면 종이 한 장을 쓰더라도 아무 종이를 쓰지 않아요. 옷을 입을 적에도 아무 천으로 지은 옷을 함부로 입지 않지요.
저희는 두 아이한테 쓸 천기저귀를 처음 마련하려고 하면서 몹시 어려운 담을 넘어야 했습니다. 2008년에 태어난 큰아이하고 2011년에 태어난 작은아이한테 쓸 천기저귀를 찾아보면서 ‘형광물질이 없는 천기저귀’는 거의 만날 길이 없었거든요. 천기저귀를 지어서 파는 회사에서는 100퍼센트 면이라고 하는 대목을 밝히지만, 정작 면만 썼는지, 면을 잇는 바느질 마감에 형광물질이 있는 실을 썼는지 제대로 밝히는 곳은 없어요. 더욱이 100퍼센트 면이라고 해도 형광물질이 깃든 면이 꽤 많아요. 기저귀뿐 아니라 손천이나 이불이나 담요 모두 이와 마찬가지이고요.
오래된 포대기라든지, 마을 할머니가 손자한테 쓰고 싶어서 옛날에 미리 마련해 놓은 기저귀천은 형광물질이 없더군요. 저희는 이런 포대기나 기저귀천을 매우 고맙게 얻을 수 있어서 두 아이가 똥오줌을 떼기까지 즐겁게 천기저귀를 쓸 수 있었어요.
아기랑 곁님, 또 다른 두 기저귀
기저귀 빨래를 놓고 살짝 적어 본다면, 가시내인 큰아이는 세이레가 되기까지 하루에 쉰두 장에 이르는 기저귀 빨래를 내놓았습니다. 저희는 천기저귀를 모두 마흔 장 마련했으니, 날마다 모든 천기저귀를 한 번 넘게 빨아야 했어요. 머스마인 작은아이는 누나하고 다르게 세이레가 되기까지 서른 장 남짓 내놓았어요. 가시내하고 머스마는 이렇게 다르네 하고 새삼스레 느끼고 배웠는데, 작은아이는 내놓는 기저귀 빨래가 적은 듯해도 한꺼번에 많이 누느라 막상 이불 빨래를 훨씬 자주 해야 했으니, 가시내이든 머스마이든 빨래에 드는 품은 같았습니다.
아이를 돌보며 천기저귀를 쓰자면 가벼이 마실을 하는 길에도 천기저귀를 잔뜩 챙겨야 하고, 배냇저고리에다가 옷가지도 나란히 챙겨야 해요. 그야말로 짐이 한가득이었는데요, 이렇게 살림을 하면서 벅차거나 힘들다는 생각보다 ‘천기저귀하고 중성세제로 빨래한 옷’을 누리는 아이가 좋아하는 방긋웃음에 언제나 즐겁게 짐을 짊어지고 손빨래를 했어요.
그리고 곁님 핏기저귀 빨래를 함께 했지요.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 어머니는 며칠 동안 핏물을 꾸준히 잔뜩 내놓습니다. 아기한테 천기저귀를 대려면 아기한테뿐 아니라 아기 어머니가 쓸 핏기저귀를 함께 갖추어야 해요. 이 대목은 아기를 낳고 돌보면서 처음으로 배웠습니다. 아기가 젖을 떼면 곁님은 바로 달거리를 하니, 이때부터 집안 빨래는 아기 똥오줌 기저귀하고 곁님 핏기저귀를 나누어서 빨래하느라 하루가 참 길었어요. 쉴새없이 빨래하고 널고 말리고 개고, 장마철이나 겨울철에는 제대로 안 마르니 기저귀천을 하나하나 다림질을 하느라 밤을 잊었지요.
저희 집 큰아이는 열 살입니다. 머잖아 큰아이는 가시내로서 달거리를 맞이합니다. 큰아이는 종알종알 말을 잘 하고 스스로 옷을 꿰어 입을 무렵, 집에서 기저귀랑 옷이랑 이불이랑 빨래를 해서 널고 말리고 개는 아버지 곁에서 함께 기저귀도 개고 옷도 개면서 살림놀이를 했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니 핏기저귀를 삶아서 빨래하고는 마당에 널 적에 일손을 거들지요. 이러면서 저절로 사람살이와 사랑살이를 배워요. 아기를 낳는 몸이란 무엇이고, 아기를 품는 몸이란 무엇이며, 이 몸이 다달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배웁니다.
아이한테 가르치고 물려줄 살림
저희는 천기저귀를 쓰기도 하지만, 빨래를 할 적에 화학세제를 안 씁니다. 화학비누도 안 쓰고 화학치약도 안 써요. 어른에 앞서 아이들이 먼저 화학세제 냄새를 잘 느낍니다. 몸이 좋아하는 냄새를 살피는 아이로 자라고, 스스로 몸을 아끼는 살림을 받아들이는 하루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가시내인 큰아이는 ‘큰아이 몫 달거리천’을 두겠지요. 큰아이는 제 달거리천을 앞으로 손수 빨래하는 길을 배우리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어머니 핏기저귀와 함께 빨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배울 테고, 나중에는 스스로 삶아서 헹구어 내다 너는 몸짓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옷살림은 큰아이만 맡을 몫이 아니라고 느껴요. 작은아이도 한집안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작은아이도 어느 만큼 철이 들어 손놀림이 야무지게 거듭나면, 어머니나 누나 핏기저귀를 삶는 일을 때때로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이는 배우면서 자라기도 하지만, 살림을 거들거나 손수 맡아 보면서 자라기도 합니다. 아이는 누구나 처음에는 어버이가 씻겨 주는데요, 나중에는 아이가 스스로 씻어요. 몸을 스스로 씻듯이 옷도 스스로 빨래하고 널고 말리고 개며 건사하는, 이러다가 구멍난 데는 스스로 기우고, 뜨개질을 익혀서 제 옷을 스스로 짓는 길을 나아갈 적에 튼튼하며 아름다운 어른으로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살림짓기는 가시내(어머니) 혼자 맡아서 이끌거나 가르칠 수 없어요. 반드시 머스마(아버지)가 함께 맡아서 함께 이끌고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아기를 낳아 돌보는 가시내(어머니)는 오래 쉬고 느긋하게 몸을 돌보아야 하니 머스마(아버지) 자리에 선 이라면 오래도록 집안일이며 집살림을 도맡을 줄 알아야지 싶어요. 아들이 태어나건 딸이 태어나건 아이들은 한집안에서 머스마 자리에 있는 아버지가 이러한 살림과 일을 도맡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언가 깊고 넓게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누구나 밥을 먹고 누구나 옷을 입어요. 누구나 잠을 자고 누구나 하루를 짓습니다. 가시내도 머스마도 손수 밥을 지어서 차릴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가시내도 머스마도 손수 옷을 건사하는 살림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달거리천은 달거리천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느껴요. 말썽이 많은 ‘화학종이 생리대’가 도마에 오르기도 하는데, 우리는 왜 언제부터 이런 화학종이 생리대를 한 번만 쓰고 버리는 삶을 보내는지 이제부터 다시금 되짚어야지 싶습니다. 이러한 삶은 가시내뿐 아니라 머스마가 함께 되짚을 뿐 아니라, 함께 살림을 짓고 서로 사랑하는 길로 생각을 북돋아야지 싶어요.
사내가 핏기저귀를 빨래하는 나라를 바란다
더 좋은 화학종이 생리대를 더 값싸게 사서 쓸 수 있으면 좋을까요? 더 좋다고 하는 화학종이 생리대이든 값싼 화학종이 생리대이든, 이런 화학종이 생리대를 한 번만 쓰고 버릴 적에는 어디로 갈까요? 아기한테 쓰는 종이기저귀도 한 번 쓰고 나서 버리면 어디에 묻힐까요?
천으로 지은 수건이나 행주나 옷은 두고두고 입습니다. 천으로 지은 기저귀도 두고두고 쓰지요. 아기가 쓰던 기저귀는 나중에 달거리천 구실을 합니다. 아기가 쓰던 기저귀는 잘 삶고 빨아서 행주로 삼을 수 있고, 무나 배추를 감싸서 냉장고에 두는 좋은 보자기 구실을 하기도 해요. 이렇게 잘 쓰다가 해질 대로 해진 기저귀천은 흙으로 돌아가지요.
화학약품을 섞은 생리대를 만드는 회사가 한 번만 쓰고 버리는 이런 화학제품을 이제 멈추고서, 앞으로는 땅에서 푸르게 자란 풀에서 얻은 실로 정갈하면서 좋은 달거리천을 지을 수 있기를 빕니다. 이런 길로 달라질 수 있으면, 시골에서 흙살림을 하는 분들도 더욱 좋을 테고, 우리 터전은 훨씬 나아질 수 있습니다.
제가 열한 해째 곁님 핏기저귀를 삶고 헹구면서 살아온 바탕에는 이런 뜻이 있어요. 비록 저 한 사람 몸짓이라 하더라도, 작은 한 사람 몸짓으로 살림을 조금씩 가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집 두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손으로 가꾸거나 지어서 흙을 보듬는 살림을 물려받을 수 있을 테고요.
시골에서도 서울에서도 기저귀 빨래가 따사로운 볕을 받고 싱그러운 바람을 쐬면서 눈부시게 춤추는 모습을 그려 봅니다. 집집마다 빨랫줄을 걸고서 즐겁고 아름답게 옷살림을 다스리는 새로운 모습을 그려 봅니다. 2017.9.2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