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9.23.


거의 500쪽에 이르는 문학비평 《비어 있는 중심》을 책상맡에 두고서 생각한다. 나는 왜 이 무시무시한 문학비평을 읽으려 하는가? 이 두툼한 책을 읽어서 무엇을 얻는가? 문학비평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 가운데 내 가슴에 남은 책을 돌아보면 고등학교 2학년에 읽은 《민중시대의 문학》(염무웅)이 처음이고, 대학교를 그만두기 앞서 엉터리 강의를 견딜 수 없어서 교수가 보는 앞에서 강의실 문짝을 꽝 닫고서 골마루에서 가을바람을 쐬며 읽은 《시정신과 유희정신》(이오덕)이 둘째이다. 큰아이를 낳고서 날마다 기저귀 빨래로 춤추는 동안 틈틈이 읽은 《시와 혁명》(김남주)을 셋째로 꼽을 수 있다. 이만 한 책이 되어야 문학평론이라는 이름이 걸맞으리라 생각한다. 《비어 있는 중심》은 글쓴이가 김정란 님이기에 집어든다. 밥상을 차려 아이들끼리 먹으라 하고서는 평상에 모로 누워서 읽는다. 이튿날 마루 모기그물문을 바느질로 기우고 나서 다시 평상에 앉아서 읽는다. 가을은 낮볕이 매우 뜨겁다. 나락이 여물도록 내리쬐는 이 가을볕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큰아이는 여느 때에 인형 옷을 짓던 바늘놀림으로 일손을 거든다. 작은아이는 그냥 재미 삼아서 성글게 바늘놀이를 한다. 두 아이 손짓이 재미나다. 나는 모기그물문을 저녁에 마주 기우기로 하고서 밥을 지어서 차린다. 이러고 나서 다시 마당에 앉아 《비어 있는 중심》을 마저 읽는다. 두툼한 책인데 생각 밖으로 이틀 만에 끝까지 읽는다. 책에 붙은 이름처럼 두 고갱이, ‘빔 + 복판’을 고요히 돌아본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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