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꼬리가 보이는 그림책 15
이한솔 그림, 이채 글.기획 / 리잼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56



사내여도 긴머리에 치마를 두를 자유

―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이채 글
 이한솔 그림
 리젬 펴냄, 2015.6.5. 12000원



  제 옷장에는 치마가 없습니다. 제가 사내이기 때문에 치마가 없지 않습니다. 사내여도 얼마든지 치마를 두를 수 있을 텐데, 저는 아직 선뜻 치마를 두르지 못할 뿐입니다. 더 씩씩하지 못하다고 할까요. 치마는 가랑이가 없는 아랫도리입니다. 가시내만 입는 옷이 아닌, 가랑이가 없을 뿐인 아랫도리예요. 가랑이가 있어 다리를 넣어서 입는 아랫도리는 바지예요.


  제 책상맡에는 머리끈하고 머리핀이 여럿 있습니다. 저는 머리카락을 기르지 않지만 굳이 깎지 않습니다. 너덧 해에 한 번쯤 가위로 긴머리를 좀 칠 적이 있으나, 거울을 안 보며 살고, 긴머리는 머리끈으로 묶어 줍니다. 이러고서 머리핀으로 긴머리를 조여 놓지요.



꽁치의 넓은 치마폭은
최고의 골키퍼!

꽁치의 부드러운 치마폭은
공기놀이에 제격! (5쪽)



  사내인 제가 머리카락을 ‘길렀다’기보다 ‘깎거나 자르지 않고 그대로 둔’ 지 얼추 스물네 해쯤 됩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부터 머리를 안 깎았어요. 1990년대 첫무렵 일인데, 그무렵 사내가 머리카락을 짧게 치지 않는 모습을 둘레에서 모두 손가락질했습니다. 게다가 긴머리 사내는 일터에서 면접조차 받아 주지 않더군요.


  머리를 기르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다만 한 가지 궁금했어요. 왜 사내는 ‘머리카락을 그대로 두면 안 되는가?’ 하고 묻고 싶었어요. 머리카락을 그냥 두고 싶으면 그냥 둘 자유가 있고, 기르고 싶다면 기를 자유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요새는 지난날처럼 제 긴머리를 보며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드뭅니다만 아직 다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사내 = 짧은머리, 가시내 = 긴머리’여야 한다고 여기는 분이 꽤 있어요.


  왜 그럴까요? 왜 사내는 짧은머리여야 할까요? 왜 가시내는 짧은머리이면 안 될까요? 그리고 왜 가시내는 치마를 둘러야 한다는 생각에서 못 벗어날까요? 공공시설에서 뒷간에 붙이는 그림을 보면 가시내한테는 치마를 두르고, 사내한테는 바지를 입혀요. 이런 그림은 참말로 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상징이나 형식이니까 이런 틀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해야 할까요?



꽁치는 체육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여자 탈의실로 향합니다. 선생님이 꽁치를 붙잡습니다. “꽁치, 너는 남자 탈의실로 가야지.” (7쪽)



  그림책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리젬,2015)는 우리 사회 얼개를 콕 짚습니다. 글을 쓴 이채 님하고 그림을 그린 이한솔 님은 이 그림책으로 ‘남녀 성구별’이나 ‘남녀 성정체성’이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어른한테뿐 아니라 아이한테도 묻지요. 사내란, 가시내란, 치마란, 바지란, 우리 살림살이란, 우리 몸짓이란, 우리 생각이란 무엇인가 하고 물어요.



엄마는 꽁치를 껴안고 엉엉 웁니다. 꽁치의 어깨가 불에 덴 듯 뜨거워집니다. 엄마가 꽁치에게 말합니다. “내일부터 치마는 입지 않기로 약속해 줄래?” 꽁치는 아무 말도 못 합니다. (14∼15쪽)



  그림책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에는 어른이 몇 사람 나오는데 하나같이 ‘꽁치’라는 아이한테 ‘제발 치마를 벗어!’ 하고 말합니다. 어머니도 교사도 한결같습니다. ‘사내가 웬 치마!’ 하고 따집니다. 아이가 치마를 좋아하면 치마를 즐길 수 있도록 느긋하거나 너그러운 마음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좀처럼 마음을 못 열어요. 아이를 틀에 가두려고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피우려고 하는 싹을 꺾어요.



“꽁치야, 오늘 왜 학교에 안 왔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옷장에 치마가 모두 사라졌어. 그래서 학교에도, 사과소녀 선발대회에도 나갈 수 없게 됐어.” “우리가 치마를 찾아 줄게! 창문 밖으로 넘어와!” (22∼23쪽)



  ‘성전환수술’을 하고 ‘주민등록 바꾸기’를 해야 남녀일까요. 수술을 하지 않고 주민등록을 바꾸지 않고서 스스로 바라는 성정체성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요. 무엇보다도 ‘사내는 이래야 돼’나 ‘가시내는 저래야 돼’ 같은 틀을 깰 수는 없을까요. 사내가 얼마든지 치마를 두르고, 가시내도 얼마든지 머리를 박박 미는 삶을 느긋하게 누릴 수 없을까요.


  사내도 얼마든지 즐겁게 부엌일을 하거나 아기 기저귀를 빨래하는 살림을 짓는 길을 꿈꿉니다. 가시내와 사내가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으로 살림을 아름답게 짓는 길을 꿈꿉니다. 성별이 아닌 사람을 보고, 성별 가르기가 아닌 서로 품어 주기로 나아가는 길을 꿈꿉니다.


  즐겁게 어우러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그림책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에 나오는 꽁치라는 아이가 날개를 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둘레에서 서로 바라보는 고운 눈길이 활짝 트이면 좋겠어요.


  사내인가 가시내인가는 따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즐겁게 노래할 수 있는 마을과 사회와 집과 나라가 되면 좋겠어요. 착하면서 고운 마음과 눈빛으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함께 열면 좋겠어요. 2017.9.4.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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