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타카코 씨 1
신큐 치에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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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22



이불에 스며드는 볕처럼 포근한 소리를 듣는다
― 행복한 타카코 씨 1
 신큐 치에 글·그림
 조아라 옮김
 AK comics 펴냄, 2017.8.25. 8000원


타카코 씨는 남들보가 살짝 귀가 밝다. 하지만 그건 특수한 능력 같은 게 아니라 사소한 것이 남들보다 조금 더 잘 들리는 정도라서 전혀 자랑할 건 아니다. (3쪽)

‘친구의 숨소리가, ‘그곳에 누군가 있다’는 안도감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집중력을 높여 주었다.’ (27∼28쪽)

‘슬슬 이불을 걷을까. 부드러워진 이불의 냄새가 전해지는 듯한 소리.’ (68∼69쪽)

‘같은 말이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온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역시 난 이대로도 괜찮구나.’ (110쪽)


  낫으로 풀을 벨 적에는 풀포기가 낫날에 닿아 끊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풀포기마다 낫날에 끊어지는 소리는 다 다릅니다. 낫으로 풀을 베다 보면 풀벌레가 깜짝 놀라서 톡톡 뛰어오르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풀벌레한테는 우거진 숲이었을 텐데, 사람이 이 풀을 베면서 허둥지둥 달아나느라 부산합니다. 갓 깨어나 아주 조그마한 방아깨비나 메뚜기나 사마귀를 보면서 미안하다고 속삭입니다.

  요새는 풀베기를 낫으로 하는 분이 매우 드물고, 거의 모두 기름을 태워서 움직이는 기계를 써요. 풀을 베는 기계는 퍽 수월하게 풀을 벤다고도 하지만, 몹시 시끄럽습니다. 먼 곳까지 시끄러운 소리가 퍼질 뿐 아니라, 옆에서는 아무 말을 나눌 수 없습니다. 기계로 윙윙 풀을 벨 적에는 풀벌레가 깜짝 놀라서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기도 어려울 테고, 풀벌레를 만나지도 못할 테니, 풀벌레하고 속삭일 일도 없으리라 느낍니다.

  시골에서는 아침저녁으로 흔히 듣는 소리가 있어요. 바로 경운기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경운기가 지나가면 참으로 먼 데에서도 소리로 알아챌 수 있어요. 대단히 큰 소리를 내며 탈탈탈 달리지요. 경운기 소리도 몹시 크기에, 할배가 몰고 할매가 짐칸에 앉더라도 두 분은 이야기를 못 나눕니다. 외치는 소리를 알아듣기도 어렵거든요.

  경운기가 고샅길을 지나갈라치면 다른 소리는 모두 사라지는 듯합니다. 이러다가 경운기가 멀어지면 다시 다른 소리가 하나둘 깨어나요. 가을을 앞둔 시골 들이나 풀섶에서 퍼지는 풀벌레 노래잔치 소리입니다. 그야말로 수많은 풀벌레가 갖가지 노랫소리로 잔치를 벌여요.

  저는 시골에서 살며 시골소리를 듣습니다. 여름에는 여름에 걸맞는 시골소리를 듣고, 겨울에는 겨울에 걸맞는 시골소리를 들어요. 그리고 새마다 다 다르게 들려주는 노랫가락이로구나 하고 느끼지요. 더욱이 나무도 나무 나름대로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가 다르네 하고 느껴요.

  신큐 치에 님이 빚은 만화책 《행복한 타카코 씨》(AK comics,2017) 첫째 권을 읽으면서 즐거운 마음을 북돋우는 소리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 만화책을 선보이는 분은 《와카코와 술》이라는 만화도 꾸준히 그려요. 《와카코와 술》은 하루 일을 마치고 혼자서 조용히 술 한 잔을 즐기는 아가씨 이야기입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둘레 시끌벅적한 모든 소리를 잊고 오직 ‘내 마음속 이야기’만 떠올리는 혼술살림을 다루는데요, 《행복한 타카코 씨》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거나 쉬는 사이에 수많은 소리가 ‘내 마음속으로 들락날락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쩌면 ‘혼소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혼자 듣는 소리입니다. 혼자 누리는 소리입니다. 혼자 즐기는 소리입니다. 혼자 받아들이는 소리입니다.

  도시에서 만난 반가운 벗님하고 함께 밤새워서 일을 하다가 벗님이 먼저 곯아떨어지는데, 벗님이 새근새근 잠들면서 내는 나즈막한 숨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포근해진다고 해요. 이웃집 아주머니가 아이를 나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낮 동안 볕을 머금은 이불이 베푸는 따끈따끈한 소리’를 함께 맞아들이시며 너그러워지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고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둘레에는 언제나 소리가 있어요. 시골에서는 시골 나름대로 살갑거나 구수하거나 따사로운 소리가 있어요. 서울에서는 서울 나름대로 넉넉하거나 재미나거나 포근한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어떤 소리가 반가이 스며들 만할까요? 우리는 이웃이나 동무한테 어떤 소리를 반가이 들려줄 만할까요?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소리에 어떤 사랑을 담아서 고이 나누어 줄 만할까요? 2017.9.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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