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 - 2018년 행복한아침독서 선정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10
파비앵 그롤로 & 제레미 루아예 지음, 이희정 옮김, 박병권 감수 / 푸른지식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709


매가 그림을 뚫고 나오려 하다
― 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
 파비앵 그롤로·제레미 루아예 글·그림
 이희정 옮김
 푸른지식 펴냄, 2017.7.3. 16000원


  전남 고흥 도화면 시골에서 지난 칠월 십일 무렵부터 제비를 한 마리도 못 봅니다. 읍내에서도 제비를 거의 못 봅니다. 고흥에서 다른 마을을 군내버스로 지나가거나 이웃님 자동차를 얻어타고 지나갈 적에도 제비를 좀처럼 못 봐요. 보름 넘게 제비 한 마리조차 구경하지 못합니다.

  이 얘기를 고흥 사는 이웃님 여럿한테 했더니 다들 한목소리로 “그래, 요즘 제비가 안 보이데.” 하고 말을 받습니다. 늘 익숙하게 곁에 있던 새 한 가지가 자취를 감추어 버리니 어딘가 허전한데 미처 어느 새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왜 자취를 감추었는지는 모르셨나 봐요.

  제비는 팔월이 저물 즈음부터 구월 첫무렵에 태평양을 가로질러서 따뜻한 나라로 날아갑니다. 칠월 한복판부터 제비가 사라져야 할 일이란 없어요. 그러나 그 많던 제비가 하루아침에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그날 밤, 나는 관찰하려고 백 개체 정도를 채집했다. 한편으로 경험을 되새겨 단순하게 계산해서 양버즘나무의 너비를 가늠해 보았다. 다른 한편으로 내부에 표본의 밀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계산하여, 약 11만 마리의 제비가 둥지를 틀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 ‘9월 말에 둥지가 비었다. 2월, 여전히 둥지는 텅 비어 있다. 어떤 희한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제비가 완전히 이 고장을 떠난 것 같다. 그리고 봄이 왔다. 봄바람은 하늘의 바랑객들을 다시 불러들인다. 늙은 양버즘나무는 몇 주 만에 손님들로 다시 북적인다. 얼마나 놀라운 신비인가.’ (28∼29쪽)


  논을 짓는 시골에서는 칠월 한복판은 논마다 농약을 뿌리는 철이곤 합니다. 요즈음은 시골 할매하고 할배는 손수 농약을 잘 못 칩니다. 작은 밭뙈기는 손수 농약을 치지만 논은 엄두를 못 내시지요.

  할매랑 할배가 나이가 들어 논에 농약을 치기 어려운 이즈음, 농협에서는 헬리콥터하고 드론으로 농약을 뿌려 주는 일을 도맡습니다. 시골 할매랑 할배는 농협에 돈을 주고서 농약치기를 맡겨요.

  농협 일꾼은 헬리콥터나 드론을 한꺼번에 여러 대 띄웁니다. 때로는 열 대가 넘는 헬리콥터나 드론이 온 들판을 뒤덮습니다. 아무래도 한꺼번에 떠서 한꺼번에 뿌려야 보람이 있다고 여기는 듯해요.

  흔히 새벽부터 저녁까지 농약을 여러 날 뿌리는데, 이동안 나비나 잠자리는 거의 몽땅 죽습니다. 가을에는 나락을 쫀다지만 가을까지는 언제나 벌레잡이를 하는 참새마저 농약바람이 불면 깡그리 자취를 감추어요. 이때에 제비도 거의 모조리 자취를 감추지요.


“작은 딱새 말이야! 당신 내 작업실 옆에 둥지를 틀었던 그 딱새 기억하지?” “장 자크.” “그 새한테 당신 이름을 붙여 줬잖아. 알지? 그 새가 아직도 와. 적어도 일곱 살은 된 것 같아.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43쪽)


  파비앵 그롤로·제레미 루아예 두 분이 빚은 《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푸른지식,2017)를 읽으면서 시골마을 제비를 떠올립니다. 이 책 첫머리에 제비 이야기가 나와요. 오듀본이 늙은 양버즘나무 속을 파고 들어가서 그곳에 둥지를 튼 제비를 살핀 적이 있다는데, 찬찬히 어림하니 자그마치 11만 마리에 이르는 제비가 있구나 싶었다지요.

  제비 11만 마리가 늙은 양버즘나무 속에 둥지를 튼다? 어쩌면 이 모습을 본 적이 없고서는 못 믿을 만하지 싶어요. 오늘날에는 더더구나 못 믿을 만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1980년대 무렵까지만 해도 어느 시골에서든 제비가 대단히 흔했어요. 서울까지 제비가 찾아왔어요. 1980년대 무렵에 시골에는 전깃줄이 새까맣도록 제비가 앉기 일쑤였습니다. 작은 마을에도 제비 천 마리쯤 우습지 않은 숫자였고, 이 제비는 ‘시골사람이 농약을 치지 않아’도 바지런히 벌레를 잡아 주는 몫을 톡톡히 하고는 가을을 앞두고 서둘러 이 땅을 떠났어요.


“이건 자연주의자가 아니라 예술가의 시각으로 그린 거죠. 한껏 솟은 이 깃털, 매의 부리에 맺힌 피에 무슨 의미가 있죠?” “생명이죠. 알렉산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게 그거예요.” “나는 보이는 대상에 감정을 품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 이 그림은 완전히 반대잖아요. 새가 그림을 뚫고 나오려는 것 같아요. 너무 낭만적이에요.” “이런, 윌슨! 새는 생물이에요. 죽은 정물이 아니라고요. 그래요. 나는, 우짖으며 아직 따뜻한 오리 사체를 뒤적이는 매를 그렸어요. 오리고기를 삼키느라 부리에 피가 묻었고요.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 (69쪽)


  《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를 읽다 보면, 오듀본이 어느 철에 숲에서 수억 마리에 이르는 나그네비둘기떼가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모습을 본 일이 나옵니다. 수억 마리에 이르는 나그네비둘기떼도 몸소 지켜보지 않고서야 믿지 못할 노릇이리라 생각해요. 더구나 이제는 나그네비둘기는 미국에서 자취를 감추었어요. 그 많던 새가 깨끗이 사라졌어요.

  수억 마리씩 무리를 지어 하늘을 덮던 새가 사라진 곳에 사람들이 도시를 짓고 찻길을 닦습니다. 문명과 물질이 넘치기도 하지만, 군대와 전쟁무기가 넘치기도 합니다. 새벽에 새가 노래로 우리를 깨우고, 낮에 새가 노래로 우리를 달래며, 밤에 새가 노래로 우리를 재우던 터전이 사라져요. 새벽이든 낮이든 밤이든 우리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나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소리에 길든 하루를 보내요. 또는 텔레비전이나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를 듣지요.


“오늘 아침에 나는 기적을 믿게 됐어. 해가 막 떠올랐을 때였지. 당신한테는 너무나 익숙하나 새소리가 들렸어. 숲지빠귀가 우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당신이 내게 자주 얘기했잖아. 모험하는 동안 가장 힘든 순간마다 늘 어디선가 숲지빠귀의 즐거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고. 그 노랫소리가 고사리를 엮어 만든 잠자리에서 당신을 일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그 노랫소리를 들으면 어김없이 우울한 기분은 사라지고 벅찬 기쁨이 찾아온다고. 물론 나는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새의 습성은 잘 몰라. 하지만 이런 계절에 지빠귀는 더 따뜻한 지방에 가 있다는 건 알아. 지빠귀 한 쌍이 이른 봄을 알리려고 미리 돌아온 걸까? 이번만큼은 숲지빠귀의 노래가 당신을 침대에서 일으키지 못하리란 것도 알아. 그래도 한겨울에 찾아온 이 노래 선물에 나는 깊은 감사를 느껴. 마치 당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듯. 이제 편안히 쉬어, 나의 라포레.” (176∼177쪽)


  오듀본은 과학자이면서 사냥꾼이었고 그림쟁이였다고 해요. 그리고 이녁은 집에서 새를 살뜰히 키우는 돌봄이 노릇도 했겠지요. 수억 마리나 수만 마리에 이르는 새를 늘 두 눈으로 지켜보고서 두 손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혼자만 바라보며 사랑할 새가 아니라, 지구에 사는 이웃들 누구나 이 아름다운 새를 바라보면서 이 땅을 어떻게 가꾸는 사람이 되면 좋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한때 서녘이나 남녘 갯벌에 수만이나 수십만에 이르는 철새가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공항이 된 인천 앞바다 영종·용유섬 갯벌에도 대단히 많은 철새가 찾아왔지요. 그렇지만 공항이 된 갯벌에는 철새가 찾아오지 못해요. 아니, 철새는 공항이 서건 말건 늘 찾아오지만 그만 보금자리도 먹이도 없이 날갯힘이 빠진 채 죽어 버리고 말아요.

  오늘날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오늘날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서 새를 마주할까요. 참새가 나락을 쪼는 일이란 고작 가을 한철이요, 그동안 참새가 잡는 애벌레가 대단히 많은데, 참새를 너무 미워하는 살림은 아닌가요. 제비가 무리지어 태평양을 건너오는데, 막상 우리가 제비를 맞이하면서 내주는 선물이란 헬리콥터·드론 농약바람은 아닌가요. 철새가 쉴 갯벌이란 사람이 사는 터전도 곱게 가꾸어 주는데, 우리는 갯벌을 너무 쉽게 메꾸면서 막개발을 일삼지 않나요.

  새를 사랑하고, 숲을 사랑하며, 잠자리를 사랑할 수 있기를 빌어요. 풍뎅이를 사랑하고, 바다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를 빕니다. 2017.7.3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