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푸름이 스스로
한국말을 슬기롭게 바라보며
사랑스레 가꾸는 길을 이야기하려고 쓴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 나왔어요.
주말에 인쇄 제본을 마쳤고
이주에 책방에 들어가요.
어린이와 푸름이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이기에
어른도 즐겁게 함께 읽을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머리말, 차례, 맺음말을 붙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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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여는 말 : 말과 넋과 삶을 사랑하는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우리가 쓰는 모든 말에는 뜻이 있어요. 이 말을 처음 지어서 쓰던 사람들이 품은 뜻이 있어요. 뜻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하나는 말뜻이고, 다른 하나는 느낌이며, 또 다른 하나는 생각이요, 새로운 하나는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나 꿈입니다.
우리는 말을 하면서 ‘말뜻’과 ‘느낌’, ‘생각’을 주고받아요. 말뜻을 주고받는 일이란 너나 내가 한 말을 서로 알아듣는 테두리입니다. 다음으로 ‘느낌’을 주고받을 적에는 어떤 일을 놓고서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테두리인데, 좋으냐 싫으냐 반갑냐 서운하냐 모자라냐 넉넉하냐 하고 느끼는 결을 살피지요. ‘생각’을 주고받을 적에는 스스로 무엇을 하려 하는가로 나아가는 테두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처럼 말뜻 한 가지만 바라보며 그칠 수 있어요. 이때에는 시험공부라든지 학습 능력을 따지지요. 이른바 시사 상식이나 지식이 되어요. 말뜻을 넘어 ‘느낌’을 살피려 한다면, 나를 둘러싼 이웃이나 동무를 바라보는 자리가 돼요. 여기에서 ‘생각’으로 한 걸음을 더 내디디면 ‘스스로 짓는 하루’를 어떻게 바라보아서 손수 움직이느냐 하는 자리가 되어요.
우리는 말 한마디를 들려주거나 내놓으면서 삶을 북돋우거나 살림을 가꾸거나 사랑을 꽃피우거나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말뜻·느낌·생각’을 거쳐서 ‘이야기’가 되는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나 꿈으로 거듭나려는 새로운 숨결이 될 적에, 내가 나를 살려내는 길을 찾을 수 있어요.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은 어린이 여러분이 스스로 ‘말삶’을 지어서 ‘말넋’을 가꾸는 ‘말길’을 여는 자리에서 길동무가 되려고 합니다. 먼저 말뜻(말풀이)을 읽고, 다음으로 말결(말느낌)을 돌아보며, 이 다음으로 말넋(말생각)을 키우다가 바야흐로 말삶(말에 담는 삶·살림·사랑·꿈을 짓는 슬기)을 가꾸는 기쁨으로 곱게 다스리는 기운을 스스로 얻기를 바라요.
한국말사전에 ‘집전화’라는 낱말은 없어요. 그렇지만 새로운 문화나 문명이 생기면서 ‘전화’라는 물건을 놓고 “들고 다니는 전화”하고 “집에 두고 쓰는 전화”를 갈라야겠다고 여겨서, ‘집전화·손전화(휴대전화)’라는 새 낱말이 태어나기도 해요. 이때에는 어른들 스스로 생각을 잘 밝혀서 재미난 말을 지은 셈이에요. ‘집’은 보금자리를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쓰고 가게를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써요. 그러니 ‘회사전화’도 ‘집전화’일 수 있어요. 회사에서 쓰는 전화를 따로 가르고 싶다면 ‘일터전화’나 ‘가게전화’라는 낱말을 새로 지을 만해요. 짧게 줄여 ‘일전화’로 쓴다면 ‘손전화·집전화·일전화’처럼 나눌 수 있겠지요? 또 팩스라고 하는 기계를 놓고는 ‘그림전화’라 할 수 있어요. 팩스라는 기계는 종이에 얹은 모든 그림을 그대로 보내는 구실을 하거든요.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은 어린이 여러분이 스스로 살고 배우고 지내고 놀고 어울리고 꿈꾸는 마을에서 말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살리거나 사랑할 때에 아름답고 즐거운 삶으로 거듭날 만할까 하는 대목을 다루려 합니다. 앞서 선보인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은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이 태어난 자리는 ‘숲’이라는 대목을 밝히면서, 우리가 숲을 가꾸고 사랑할 때에 말을 가꾸고 사랑하는 슬기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어요.
‘마을’이란 ‘여러 집이 어우러진 터전’입니다.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으로, 어린이 여러분이 저마다 곱게 살림집을 이루면서 사는 동안 이웃하고 동무를 살가이 사귀면서 나눌 말을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느낌을 찬찬히 깨닫고, 우리 생각을 차근차근 갈고닦으며, 우리 삶을 손수 짓는 기쁜 사랑과 꿈을 아름답게 펼치는 길에서 ‘말 한마디’가 어떤 힘이 있는가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요.
딱딱하게 굳은 말이 아닌 보드랍게 열린 말을 생각해 보기를 바라요. 말 한마디에 담는 마음을 살필 수 있기를 바라요. 말 한마디마다 흐르는 숨결을 헤아릴 수 있기를 바라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한다지만 천 냥 빚을 지기도 한다고 해요. 다시 말해서, 말 한마디를 어떻게 살려서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 마음은 더 아름다울 수 있지만, 아름다움하고 동떨어질 수 있어요. 아주 작은 말 한마디를 슬기롭고 즐겁게 쓰면서 맑으면서 밝은 꿈을 사랑스레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이하고 어른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마을에서 말과 넋과 삶을 살리는 기쁜 웃음을 짓는 노래”가 흐를 수 있기를 바라요. 상냥하고 넉넉하게 웃는 기쁜 눈길로 읽어 주셔요. 고맙습니다.
한국말사전 배움터 ‘숲노래’ 이야기지기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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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마을에서 노래하는 말
골목꽃·골목놀이·마실·마을돈·마을신문·어귀
2. 집이 모여 이웃이 손잡는 말
동무집·두레·모둠집·석 간·숲집·쪽마루·하늘바라기집
3. 가게에서 사이좋게 나누는 말
길장사·닷새마당·에누리·우수리·이웃가게·저자·흥정
4. 잔치로 환하게 어우러지는 말
겨울잔치·곰국·국·누리잔치·예순잔치·잔칫밥·큰잔치
5. 모임을 이루어 넉넉한 말
갈무리·노래모임·동아리·두레누리·사랑모임·어깨나라
6. 배움님이 되어 나누는 따뜻한 말
글쓰기·또래·배움동무·배움바라지·배움책
7. 쉬다 보니 기운이 샘솟는 말
겨를·깁다·느린밥·느린배움·말미·버스터·쉬는차
8. 책으로 이야기꽃 피우는 말
삶말·숲책·오늘이야기·책손질·책쓰기·책찻집
9. 누리마다 고이 퍼지는 말
골·별내·사랑누리·온둥이·울·잘·즈믄·한가람·해누리
10. 그림으로 날아오르는 말
권정생 집·그림터·동화나라·부산책누리·살림그림·한글집
11. 이음고리가 되어 살가운 말
누리그물·누리글·누리날개·누리놀이·누리님·셈틀·열린터·풀그림
12. 탈것을 누리며 마실하는 말
널방아·부름차·쇠돈·아기수레·왼돌이·이음목·타는곳·하늘길
13. 이름마다 서린 그윽한 말
만들다·빚다·손질·짓다·일컫다
14. 믿음을 보듬는 말
넋·부뚜막할매·비손·서낭·신·얼·지킴이·한울
15. 사랑으로 살뜰히 쓰다듬는 말
그리다·다짐글·반하다·사랑·좋다·한사랑·홀리다
16. 살림을 알차게 건사하는 말
나라살림·반짇고리·살림꽃·세간·옷밥집·장이·쟁이·즐김이
17. 텃밭에서 꿈꾸는 말
그릇밭·나눔밥·마음밭·봄걷이·터·텃새·한마당
18. 길을 거닐며 떠올리는 말
거님길·길바늘·길벗·길손집·느린걸음·징검돌
19. 어른으로 자라는 옹근 말
다소곳하다·셈·약돌이·애늙은이·오롯하다·옹글다·철·철모름쟁이
20. 책상맡에서 생각에 잠기는 말
걸음쇠·네글벗·모둠상·앉은뱅이책상·연필주머니·책상물림·책시렁
21. 놀이터에서 뛰어오르는 말
공놀이터·깍두기·깨끔발·소꿉·손바닥놀이터·추임새
22. 건널목에서 기다리는 말
두찻길·빗물닦이·빠른길·어린이길·오솔길·지름길·차둠터
23. 힘이 나는 놀라운 말
바람힘·별빛·손놀림·손힘·전기힘·햇볕힘
24. 곳마다 꽃으로 거듭나는 말
곳곳·새로짓기·숲정이·자투리땅·질그릇·처네·하늘숨
붙임말 1 : 책에 나온 낱말 뜻 헤아려 보기
붙임말 2 : 인터넷에서 쓰는 말 손질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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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마무르는 말: 이야기꽃을 피우며 꿈꾸자
일을 끝맺을 적에 ‘마무리하다’라고 해요. 이와 비슷하지만 살며시 결이 다른 ‘마무르다’라는 낱말이 있어요. ‘마무르다’도 어떤 일이 잘 끝나도록 다스리는 몸짓을 가리켜요.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으로 스물네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마무르는 말을 붙여 볼게요.
지난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에서는 “수수께끼 놀이 하자” 하는 말로 책을 마물렀어요. 이 책에서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꿈꾸자” 하는 말로 마무릅니다. “수수께끼 놀이”란 우리한테 궁금한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묻고 우리 스스로 풀어 보자는 뜻이에요. “이야기꽃 피우는 꿈”은 스스로 궁금한 이야기를 풀었으면, 이렇게 풀어낸 실마리를 마음껏 펼쳐서 날개돋이를 해 보자는 뜻입니다.
말길을 활짝 트면서 생각을 활짝 트면 좋겠어요. 가슴을 펴고 씩씩하게 날아오르는 마음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모두 우리한테 돌아오는 줄 잘 되새기면 좋겠어요. 예부터 어른들이 들려주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처럼,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 먼저 고운 말을 즐겁게 지어서 쓸 수 있기를 빌어요. 둘레에서 아무리 우리한테 밉거나 싫은 말을 하더라도, 우리는 싱긋 웃음을 띠면서 고운 말을 건넬 수 있기를 바라요.
생각해 봐요. 둘레에서 우리를 괴롭히려고 밉거나 싫거나 궂은 말을 퍼붓더라도 우리가 그런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귀로 흘리면서 고운 말을 상냥한 눈빛으로 건네면, 우리 둘레에서는 아마 깜짝 놀랄 테지요. 남이 나한테 주는 사랑스러운 말이 아닌, 내가 바로 나한테 주는 사랑스러운 말이랍니다. 이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선물한 사랑스러운 말을 둘레에 아낌없이 나누어 줄 수 있어요.
생각하는 말이 사랑하는 말이 되어요. 사랑하는 말이 생각하는 말이 되지요. 꿈꾸는 말이 꽃처럼 피어나는 말이 되고, 꽃처럼 피어나는 말이 꿈으로 다시 샘솟는 말이 되어요. 말꽃잔치 벌어진 이 한마당에 온누리 아이들이 함박웃음을 짓는 기쁨누리를 가꾸려는 손길로 글월을 띄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