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보는 눈 - 기록하는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 다큐멘터리 인물그림책
바브 로젠스톡 지음, 제라드 뒤부아 그림, 김배경 옮김, 최종규 추천 / 책속물고기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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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읽기 354


이웃을 마음으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다
― 진실을 보는 눈, 기록하는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
 바브 로젠스톡 글
 제라드 뒤부아 그림
 김배경 옮김
 책속물고기 펴냄, 2017.7.5. 12000원


  옥수수를 씨앗으로 심어서 돌보아 본 적이 없다면, 옥수수싹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이러했습니다. 수박이나 수세미를 씨앗으로 심어서 돌보아 본 적이 없다면, 해바라기나 민들레를 씨앗으로 심어서 돌보아 본 적이 없다면, 벼나 밀을 씨앗으로 심어서 돌보아 본 적이 없다면, 수박싹도 수세미싹도 해바라기싹도 민들레싹도 벼싹도 밀싹도 알 길이 없어요.

  씨앗에 실 같은 뿌리가 내리면서 조그마한 싹이 터서 올라옵니다. 어린 싹을 모르면 그냥 밟고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옥수수싹이든 밀싹이든 풀싹이든 뭐가 뭔지 모르니까요. 꽃이 핀 모습을 보고는 참으로 곱다고 말하더라도, 꽃이 피기까지 어떻게 싹이 오르고 줄기가 솟으며 잎이 돋는가를 살피지 못한다면, 그 이쁜 꽃이 새싹이던 무렵 그만 밟아서 죽일 수 있어요.


도로시아는 눈이 남달랐어요.
잿빛이 도는 초록 눈동자로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볼 수 있었거든요. (2쪽)


  풀싹을 보는 눈이란 이웃을 보는 눈입니다. 풀싹을 눈여겨보는 마음이란 이웃을 눈여겨보는 마음입니다. 겉모습을 훑는다고 해서 이웃을 알 수 없어요. 옷차림을 살핀다고 해서 이웃을 알 길이 없지요.

  예부터 이런 일이 있어요. 먹을거리가 없는데 애먼 불을 땐다고 하지요. 굴뚝에 연기가 솟게 한다잖아요. 밥을 하지도 않는데 불을 때어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도록 한다고 해요.

  얼핏 보기로는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니 ‘저 집은 끼니마다 밥을 잘도 먹네’ 하고 여길 수 있어요. 속으로 헤아리는 눈이 있다면 ‘틀림없이 저 집에 먹을거리가 다 떨어졌을 텐데 어떻게 연기가 나오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만 보고서 지나치는 사람이 있고,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로는 믿을 수 없기에 슬그머니 이웃집을 들여다보거나 찾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는 어떤 눈으로 이웃을 보는가요? 우리는 어떤 몸짓으로 이웃한테 다가서는가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가요? 우리는 어떤 사랑으로 이웃을 마주하려는가요?


도로시아는 어릴 때부터 얼굴을 좋아했어요.
뺨이 둥그런 엄마와 턱이 모난 아빠,
입술이 오므라든 할머니,
콧방울이 도톰한 동생까지
가족 얼굴을 가만히 지켜봤지요.
얼굴을 보노라면,
그 사람을 껴안는 느낌이 들었어요. (3쪽)


  바브 로젠스톡 님이 글을 쓰고, 제라드 뒤부아 님이 그림을 빚은 그림책 《진실을 보는 눈, 기록하는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책속물고기,2017)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림책이면서 사진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사진책이면서 그림책입니다. 또한 이 책은 이야기책이면서 삶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겉보기로는 그림책입니다. 줄거리로는 사진책입니다. 사진가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그림으로 담은 흐름을 가만히 살피면, 이웃을 사진으로 담은 마음을 들려주는 이야기가 살뜰합니다. 도로시아 랭이라는 사진가 한 사람 삶을 놓고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사진가로서 어떠한 사랑으로 삶을 마주할 적에 사진을 기쁘게 찍을 수 있느냐 하는 대목을 건드립니다.


병은 나았지만, 도로시아는 오른쪽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었어요.
아이들은 절뚝거리는 도로시아를 놀려댔지요.
도로시아는 꼭꼭 숨고 싶었어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했지요. (6쪽)


  더 살펴본다면 이 그림책은 위인전일 수 있어요. 사진이라는 길에 깊고 너른 발자국을 남긴 훌륭한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남겼는가를 다룬 위인전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위인전이 아닐 수 있어요. 오늘 우리는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이 남긴 사진을 톺아보면서 사진 한 장으로 참말 훌륭한 일을 했구나 하고 높이 살 수 있습니다만,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은 ‘사진 역사’를 이루려는 뜻으로 사진을 찍지 않았어요. ‘사회를 바꾸려는’ 뜻으로 사진을 찍지도 않았어요.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은 이웃을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은 이웃을 사랑하려는 손길로 다가가서 어깨동무를 하는 삶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도로시아 랭이라는 분이 남긴 사진을 우리가 훌륭하게 여기거나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사진에 깃든 마음과 사랑이 따스하면서 넉넉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고, 결혼해서 새 가정도 꾸렸어요.
겉으로는 마음 느긋하게 사는 듯이 보였지요.
그렇지만 커다란 고민이 있었어요.
‘나는 왜 눈과 마음으로 사진을 찍지 않을까?’ (16쪽)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면 누구나 사진을 찍지요. 그런데 아무나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비록 사진기를 손에 쥐었어도 궂거나 밉거나 나쁘거나 모진 마음을 품는다면, 이녁은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멋지거나 값진 기계를 손에 쥐었기에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은 모델이나 피사체가 아닙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은 모두 이웃이에요.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가 ‘사진으로 찍힐 사람’을 이웃으로 바라볼 수 있을 적에, 한 걸음 나아가서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를 둘러싼 이웃을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으로 손을 맞잡을 적에, 비로소 사진다운 사진 하나를 얻는다고 느껴요.

  아무나 못 찍는 사진이지 싶습니다. 아무나 못 쓰는 글이지 싶습니다. 아무나 못 그리는 그림이지 싶습니다. 아무나 못 부르는 노래요 아무나 못 추는 춤이지 싶어요. 왜냐하면 먼저 마음으로 바라볼 노릇이거든요. 마음으로 바라본 뒤에는 사랑으로 품을 노릇이고요.

  마음도 없고 사랑도 없이 사진기만 쥔다면 빈 껍데기만 쏟아낼 뿐이에요. 마음과 사랑으로 사진을 안 찍고 포토샵만 만진들 멋지거나 놀라운 모습이 나올 수 없어요. 마음도 없고 사랑도 없는 채 쓰는 글은 우리 가슴을 적시거나 울리지 못해요. 마음도 없고 사랑도 없는 채 가락이나 박자나 음정이나 …… 이런 잔솜씨만 잘 맞춘다고 해서 듣기 좋은 노래가 되지 않아요. 잔솜씨만 그럴듯해 보인다고 해서 춤이라고 하지 않아요.


도로시아는 사진기를 들고 세상을 두루 살폈어요.
아버지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들판에서 쉬지 않고 일했어요.
어머니들은 천막에서 목마르고 아픈 아이들을 돌봤지요.
어떤 가족은 먼지 폭풍으로 모든 재산을 잃고 낡은 자동차에서 살았어요.
도로시아는 절뚝거리며 배고프고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사진에 낱낱이 담아냈어요.
세상이 등 돌린 사람들을 마음으로 되새기고 싶었지요. (21쪽)


  그림책 《진실을 보는 눈》은 책이름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참을 보는 눈이기에 참을 그립니다. 참을 마주하는 눈이기에 참을 옮깁니다. 참을 바라보는 눈이기에 이웃이 겪거나 치르거나 마주하는 모든 슬픔과 응어리와 아픔과 고단함을 내 몸으로도 받아들입니다.

  참된 눈에서 참된 사진이 태어나요. 참다운 손끝에서 참다운 사진이 태어나요. 참된 몸짓에서 참된 사진 한 장이 태어나요. 참다운 사랑으로 찍는 손길이기에 참다운 사진 한 장을 찍어서 우리한테 보여줄 수 있어요.

  사회가 등을 돌리고 정부가 등을 돌린 사람들한테 마음으로 다가선 도로시아 랭 님입니다. 이웃으로서 다가갔지요. 동무로서 마주보았지요. 이웃으로서 손을 잡았어요. 동무로서 어깨를 겯었어요.

  꾸미지 않습니다. 이웃을 사진으로 찍는데 꾸며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덧바르지 않습니다. 동무를 사진으로 찍는데 덧발라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웃이 살아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이웃이 살림하는 하루를 사진으로 옮깁니다. 이웃이 느끼는 슬픔을 사진으로 싣습니다. 이웃이 고단해 하면서 한풀 꺾인 모습을 가만히 사진으로 드러냅니다.


도로시아는 꾸준히 사진에 진실을 담아냈어요.
모든 사람은 소중하다는 진실, 서로가 서로를 살펴야 한다는 진실을요.
그렇게 도로시아는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24쪽)


  나무는 모든 것을 사람한테 내어줍니다. 열매도 땔감도 줍니다. 몸뚱이를 통째로 주어 집을 짓도록 해 줍니다. 책상이나 걸상이 되어 줍니다. 연필이나 책이 되어 줍니다. 나무가 숲으로 우거질 적에는 싱그러운 바람을 사람한테 주지요. 마당에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면 그늘을 베풀 뿐 아니라, 드센 비바람을 막아 주기까지 해요. 이러면서 온갖 새가 찾아드는 보금자리 구실을 해요. 나무 한 그루를 마당에 두는 사람은 맑은 새소리를 아침저녁으로 들을 수 있어요. 더욱이 나무는 작은 애벌레도 품에 안아서 나비가 깨어나는 자리도 되어요. 나무 한 그루가 있으니 멋진 나비 춤사위까지 만나요.

  《진실을 보는 눈》이라는 그림책은 도로시아 랭이라는 사진가 한 사람이 바로 나무와 같은 품을 보여주었으리라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따사로운 마음이 되어 나무 같은 숨결로 사진을 찍은 사람이 바로 도로시아 랭이라고 할 만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사진기를 손에 쥐든 다 좋습니다.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사진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진기가 손에 없어도 좋습니다. 사진기로만 사진을 찍지 않아요. 우리는 늘 마음으로 먼저 사진을 찍어요. 마음으로 찍은 사진을 마음에 새기지요. 마음으로 담은 사진을 마음으로 나누고요.

  어느 모로 본다면 도로시아 랭 님은 다큐작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오롯이 사진가입니다. 살가운 이웃입니다. 반가운 벗입니다. 나무 같은 사람입니다. 하늘 같은 사랑이에요. 2017.6.2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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