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삼촌 - 제7회 5.18 문학상 수상작 도토리숲 문고 2
황규섭 지음, 오승민 그림 / 도토리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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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3


아이들한테 어떤 역사를 가르치는 어른인가요
― 열두 살 삼촌
 황규섭 글
 오승민 그림
 도토리숲 펴냄, 2017.5.18. 12000원


  이 땅에 아이들이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돈을 모르고 재산이나 역사를 모른다 하더라도 날마다 즐겁게 놀고 어우러지며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전쟁무기나 군대를 몰라도 해맑게 어깨동무하며 살아왔습니다. 아이들은 놀이공원을 몰라도 연을 알며 살았고, 아이들은 자동차를 몰라도 버들피리를 불며 살았어요.

  이러던 아이들은 어른들 사이에서 앓습니다. 어른들이 신분이나 계급을 갈라서 사람들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아이들도 어른들을 따라합니다. 어른들이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서로 죽이고 죽는 모습을 지켜보다가는, 아이들도 어른들을 좇아요.


삼촌은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입을 닫고 살았다. 웃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고 거의 표정도 없이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상태가 급격히 좋아지기도 했다. 어떤 날은 또박또박 말도 하고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44쪽)

삼촌은 벌떡 일어나 소리를 꽥 지르면서 목발로 자전거를 홱 밀어 버렸다. 자전거는 맥없이 쓰러졌다. 민국은 어리둥절했다. 자전거 때문에 다리를 잃은 삼촌의 마음은 알지만, 그때는 삼촌이 너무 미웠다. (47쪽)


  웃음을 짓는 어른들 사이에서 자라는 아이는 웃음을 지켜보면서 배웁니다. 미움을 짓는 어른들 사이에서 크는 아이는 미움을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짓는 사람으로 살면서 아이들을 보살필 적에 아름다울까요?

  황규섭 님이 글을 쓰고 오승민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문학 《열두 살 삼촌》(도토리숲,2017)을 읽습니다. 이 어린이문학은 열두 살 나이에서 멈춘 듯 보이는 삼촌 이야기를 다룹니다.

  책에 나오는 아이는 열두 살이라고 해요. 삼촌은 아이 아버지보다 몇 살 어려요. 몸은 어른이라 할 테지만 마음은 아이하고 같은 열두 살이라고 해요. 아이는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삼촌 같은 어른이 왜 저랑 같은 열두 살이라는 나이에 갇힌 채 꼼짝을 못하는지 알 길이 없어요.


바로 아빠가 끔찍이 사랑하는 이 도시 광주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가게 유리문 저쪽 거리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어떻게 여기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까?’ 민국은 사진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상상할 수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50쪽)

민국은 상상해 보았다. ‘장갑차의 육중한 바퀴가 잔디를 짓밟고 팡팡 총을 쏘아대며, 총소리와 최루탄 연기가 거리에 퍼진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지만 사실이었다. (51쪽)


  학교에서 교과서로 역사를 가르친다고 해서 이 역사 지식을 살갗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겪거나 치러 보지 않고서야 몸으로 느끼기 어려워서 머리에서 맴도는 지식이 되곤 해요. 손수 씨앗을 심어 보지 않는다면 씨앗 한 톨이 땅속에서 자라서 줄기를 올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흐름을 제대로 알기 어려워요.

  지식하고 삶이 달라요. 지식만 있다고 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지 않아요. 어린이문학 《열두 살 삼촌》은 이 대목을 가만히 짚습니다. 아이들이 어렴풋한 지식만 붙잡고서 자전거 도둑을 찾아내겠다고 달려드는 몸짓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 하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아주 넌지시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겹쳐 놓습니다.


“여기서부터 엄마 가게 있는 곳까지는 아주 성스러운 곳이다. 겁나게 많은 사람들이 여서 피 흘리고 쓰러졌지. 저 동네는 아직도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어. 집집마다 한두 명씩 그날 일로 괴로워하고 있을 정도야.” (87∼90쪽)

“삼촌은 민국이 너처럼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어. 자전거라고 해 봤자 할아버지가 타던 커다란 짐바리 자전거였지.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큰 자전거는 할아버지의 자가용이었어. 할아버지가 싸전을 해서, 쌀가마니를 자전거에 싣고 다니셨지.” (90쪽)


  《열두 살 삼촌》에 나오는 삼촌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다리를 잃었습니다. 그래도 목숨은 잃지 않았으니 조카를 보는 나이로 자랐겠지요. 그러나 목숨은 건사했어도 마음에 남은 생채기는 아물지 않습니다. 내 한 몸은 살아서 남았으되 둘레에서 쓰러지고 넘어지고 고꾸라진 숱한 사람을 보아야 했어요.

  1980년 5월 광주에서 헬리콥터가 떠서 무시무시하게 총알을 쏘아댔다는 이야기가 요즈막에 밝혀지려고 합니다. 그무렵에 헬리콥터뿐 아니라 온갖 전쟁무기가 여느 길거리에 몰려들어 여느 사람들을 마구 총질해대며 죽음으로 내몰았어요. 두들겨패고 밟고 죽이고, 또 두들겨패고 밟고 죽였어요.

  민주와 평화와 자유를 바라지 않는 독재권력이 전쟁무기를 앞세워 사람들을 죽이고 밟았어요. 민주와 평화와 자유하고는 동떨어진 독재권력을 더 단단히 하려는 이들이 사람들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를 끌어들였어요.


삼촌의 인생은 어쩌다가 이렇게 꼬인 것일까? 누가 삼촌을 열두 살 나이에 가둔 것일까? 아빠는 왜 저렇게, 가족 얼굴도 보기 힘들 만큼 바쁘게 사는 것일까? (123쪽)


  아이들은 어른 곁에서 삶을 배우고 사회를 배웁니다. 아이들은 교사인 어른이며 어버이인 어른한테서 사랑을 배우고 역사를 배웁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어떤 삶이나 사회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곁에서 어떤 사랑이나 역사를 보여줄 만할까요?

  전쟁무기가 군대가 없이도 평화로운 나라를 짓는 살림을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신분이나 계급이 없이, 비정규직이 없이, 돈이나 부동산으로 금을 긋는 일이 없이, 참으로 아름답고 넉넉한 어깨동무로 나아가는 평화로는 사회를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어린이문학 《열두 살 삼촌》은 열두 살 마음에 머물고 만 삼촌이 가슴에서 떨치지 못하는 생채기를 다룹니다만, 어느 모로 본다면 우리 어른들 누구나 열두 살 아이다운 맑은 마음이 되기를 바라는 뜻을 적바림했다고도 여길 만하지 싶습니다. 2017.6.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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