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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오드리 설킬드 지음, 허진 옮김 / 마티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
- 글쓴이 : 오드리 설킬드
- 옮긴이 : 허진
- 펴낸곳 : 마티(2006.5.25.)
- 책값 : 20000원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 전범재판이 연달아 열렸으나 레니는 유대인 학살에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기어이 그녀의 작품 활동을 막았다. 레니는 결코 영화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반세기 동안 수많은 다큐멘터리가 레니의 다큐멘터리를 부분적으로 인용했지만 그녀의 영화가 공개적으로 상영되거나 텔레비전을 통해 무삭제로 방송된 적은 없었다. 영화사의 그 어느 부분에서도, 심지어 여성의 업적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리펜슈탈은 아예 언급되지 않거나 부정적으로 언급될 뿐이었다. 리펜슈탈은 거의 전 세계적인 공모에 의해 역사의 각주로 쫓겨났다. 프로파간다와 예술을 구분할 방법이나 구분하려는 의지는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그것은 공평한 일이었을까? .. 〈35쪽〉
저는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사람을 사진작가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이라는 책을 전주에 놀러가서 〈홍지서림〉을 구경하다가 반갑게 보고서 집을 때까지만 해도, 이이가 나치당을 선전하는 영화를 찍은 줄은 까맣게 몰랐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으로 남기되 한낱 기록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되도록 긴 영화로 찍은 줄도 몰랐습니다. 레니 리펜슈탈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손기정 님 마라톤 모습도 구경할 수 없었겠지요.
이 책,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이 나온 뒤 몇몇 신문에 길고 짧게 기사가 실렸고, 인터넷에서 살펴보니 이이를 놓고 여러모로 말이 많습니다. ‘나치의 핀업 걸’ 소리가 가장 많이 보이고, ‘악마한테 영혼을 판 천재’라는 말도 보입니다. 글쎄, 이런 말이 한편으로는 맞을는지 모르겠지만 102해라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사람을 어느 한 마디로 잘라서 말할 수 있을까요?
춤꾼(발레)으로, 영화배우로, 영화감독으로, 그러다가 사진작가로, 물속헤엄까지도 두루 거치면서 자기 안에 끓어오르는 뜨거움을 펼치며 살았던 레니 리펜슈탈이라고 하는 사람, 이 사람을 짤막한 한 마디로 내치는 일이란 아주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쳐서 무엇이 남을까요.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박정희 독재 때에 외교관에 장관에 국회의원까지 두루 지낸 윤주영이라는 사람은 1979년에 정계에서 떠난 뒤 사진작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분이 지난날 걸어온 발자취를 생각한다면, ‘사진작가 윤주영’이 아닌 ‘독재권력 해바라기 윤주영’이라 해야 걸맞을 텐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레니 리펜슈탈과 윤주영을 똑같이 볼 수 없고, 두 사람이 걷는 길도 다르며, 두 사람이 찍은 사진감도 다릅니다. 그렇지만 레니가 받는 것은 푸대접과 찬웃음일 뿐, 이이가 이루어내는 온갖 일과 발자취는 ‘없어야 할 것인데 지저분하게 남은 것’처럼 여기거나 아예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비판할 대목은 틀림없이 비판해야 옳고, 찬찬히 돌아볼 대목은 찬찬히 돌아보아야 옳습니다. 칭찬할 일이라면 칭찬하고 꾸짖을 일이라면 꾸짖어야지요. 이도 저도 아닌 두루뭉술한 때려잡기라든지, 수박겉핥기처럼 대충 넘겨짚기를 하면서 레니 리펜슈탈을 입방아 찧는 이들은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을 꼼꼼히 읽은 뒤에 자기가 한 말과 쓴 글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입방아꾼이야 책도 안 읽고 뇌까리는 사람들이고, 2006년 대한민국에서 《레니 리펜슈탈-금지된 열정》이 나온 까닭, 이런 책을 살피면 좋을 대목이 있다면, ‘우리 가슴속에 잠자고 있을 뜨거움’을 느끼고 ‘이 뜨거움을 어떻게 불태우면’서 ‘누구한테나 딱 한 번 주어진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는지를 살피는 데에 적잖이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4339.8.24.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