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눈높이



  어려운 글하고 쉬운 글이 있다. 낱말은 안 어려운데 이야기가 어렵다는 글이 있고, 낱말은 쉬운데 이야기가 안 쉽다는 글이 있다. 글에 쓴 낱말만 놓고 본다면 열 살 어린이도 모두 알 만하도록 글을 쓸 수 있다. 글에 쓴 낱말만 놓고 본다면 대학원까지 마친 사람마저 못 알아볼 만하도록 글을 쓸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옳다고 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이야기를 헤아릴 만하다. 우리는 글을 쓸 적에 껍데기를 읽지 않고 알맹이를 읽는다. 아무리 뛰어난 멋을 부리더라도 알맹이가 없으면, 이러한 글은 읽는 맛이 없다. 밥을 보면 쉽게 어림할 만하지. 아무리 보기 좋더라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밥은 못 먹는다. 아무리 훌륭한 멋이나 솜씨를 부린 글이라 하더라도 알맹이가 허술하면 ‘글로 읽을’ 수 없기 마련이다. 때로는 글멋이나 글솜씨를 부리고 싶을 수 있다. 이때에는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잘 꾸민 플라스틱 조각’을 먹을 수 있겠느냐고. 눈으로 보기에도 예쁘거나 멋스러우면서 맛난 밥이라면 가장 좋으리라. 그러나 눈으로 보기에 아직 안 예쁘거나 안 멋스럽더라도 알맹이로서 맛나면 대단히 좋다. 착한 사람은 그저 착할 뿐이다. 참된 사람은 그저 참될 뿐이다. 글을 쓰는 눈높이는 글쓴이 나름대로 맞추면 될 노릇일 터인데, 나는 늘 열 살 어린이가 알아볼 수 있는 낱말로 글을 엮으려 한다. 가장 쉽고 흔하며 너른 낱말로 글을 엮어서, 마음을 기울여 함께 배우고 서로 가르치려는 즐거운 살림을 이야기 하나로 나누고 싶다. 2017.6.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