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투스 - 코르착이 들려주는 영화 같은 이야기
야누쉬 코르착 지음, 송순재.손성현 옮김 / 북극곰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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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43


‘교육 받기’보다 ‘사랑 받기’ 바라는 마음
― 카이투스
 야누쉬 코르착 글
 송순재·손성현 옮김
 북극곰 펴냄, 2017.4.19. 14800원


  마법사하고 요정이 나오는 어린이문학이 있습니다. ‘마법사’하고 ‘요정’이라고 하면 흔한 어린이문학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어느 모로는 판타지문학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이문학은 마법사하고 요정이 얽힌 이야기를 판타지문학이 아닌 ‘배우는 살림’으로 다룹니다. 아이가 스스로 삶을 배우는 길을 보여주는 어린이문학이요, 어른은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면서 이끌 적에 슬기로운가 하고 짚는 어린이문학입니다.


카이투스의 소원은 학교에 가서 모든 걸 몽땅 배우는 거였어. 그래서 학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막상 학교에 들어가니까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거야. (8쪽)

“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주문을 외울 거야. 꼭 그럴 거야. 난 마법사가 될 테니까. 선생님은 주문이나 마법이 없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냐. 선생님이 모르는 거지. 위대한 시인들도 마법사 이야기를 하잖아. 왕들도 그런 게 있다고 믿었어.” (11쪽)


  유럽에서 전쟁 기운이 불거지던 무렵 폴란드에서 어린이 사랑을 몸소 펼친 야누쉬 코르착 님은 《카이투스》(북극곰,2017)라는 책을 씁니다. 이 책은 마법사가 된 어린 사내하고 요정이 된 어린 가시내가 부딪히는 여러 이야기를 가만히 다루어요.

  마법사가 된 어린 사내는 처음부터 마법을 마구 쓰려는 생각은 없어요. 그저 학교에서 즐겁게 새로운 삶과 살림을 배우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막상 학교라는 곳에 가 보니 아주 딴판이었대요. 학교는 아이가 바라는 대로 삶과 살림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고 해요. 또래들은 서로 괴롭히거나 놀리는 짓궂은 짓을 일삼고, 으레 장난질을 해댄다고 합니다. 배울 만한 것이 없는데다가 사귈 만한 동무를 찾지 못한 어린 사내는 오직 스스로 길을 찾고 생각을 기울여 마법을 하나하나 익힌대요. 어느 누구도 가르치지 않았으나 스스로 마법사가 되었대요.

  아이는 스스로 마법사가 될 수 있을까요? 이는 책에서만 엿볼 수 있는 모습일까요? 어쩌면 아이가 스스로 마법사가 되는 이야기는 책에서만 엿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더 헤아려 본다면 마법사 아닌 다른 길, 이를테면 ‘아이 스스로 식물 박사’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 스스로 나무 박사가 될 수 있어요. 자동차 박사라든지 컴퓨터 박사가 될 수 있지요. 책 박사라든지 만화 박사가 될 수 있어요. 누가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요리 박사가 될 수 있기도 하지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착한 마음씨란다.” 이건 할머니의 말이야. “착한 사람은 걱정이 없단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도 주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잖니. 착한 이웃을 많이 만나야 어려울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단다.” (26∼27쪽)

의사는 무뚝뚝하게 대답했어. “직접 이 아이를 간호하시겠다는 말씀이죠? 뭐, 좋습니다. 가출한 녀석이니까 회초리 좀 맞아야겠죠.” “아닙니다. 저는 아이들을 때리지 않습니다. 아마 다른 친구들 꼬임에 넘어갔을 겁니다. 얘야, 너 정말 가출했던 거니?” (55쪽)


  배우려는 뜻이 있기에 배워요. 아이나 어른이나 매한가지입니다. 배우려는 뜻이 없을 적에는 아이도 어른도 못 배워요. 배우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제아무리 훌륭하거나 뛰어난 교사가 코앞에 있어도 졸음이 쏟아지기 마련이에요. 배우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은 대단히 뜻있고 아름다운 책을 코앞에 들이밀어도 한 쪽조차 못 읽고 하품을 하기 마련입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먼 길을 마다 하지 않아요.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책으로도 배우고, 몸으로도 배우며, 마음으로도 배워요.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어린이여도 배우고 젊은이여도 배우며, 쉰이나 일흔이나 아흔이라는 늦깎이 나이여도 배워요.

  예순 살이 넘어서 화가로 우뚝 서는 사람이 있고, 예순 살이 넘어선 뒤에 즐겁게 사진가로 서는 사람이 있어요. 비록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지만 시나 소설을 아름답게 써서 따사롭고 너른 이야기를 베푸는 사람이 있지요.


카이투스는 집 생각이 났어. 엄마 아빠 생각도 났어. ‘분신이 함께 있으니까 내가 집을 나온 줄도 모르실 거야. 그러면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116쪽)

서커스 단장은 전보를 쳐서 카이투스를 위해 멋진 집을 마련해 놓았지. 엄청나게 큰 정원이 있는 집이었어.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집이었지. 하지만 거기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정원에서도 놀면 안 되고 친구들을 불러도 안 되고 파티를 열어도 안 되고 집 안에서 뛰어다녀도 안 되고. (159쪽)


  《카이투스》에 나오는 ‘안톤 카이투스’는 마법을 하나하나 익힐 적마다 마법힘이 커지는데, 이렇게 커진 마법힘으로 도시 하나를 수렁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만큼 마법힘이 세지기까지 해요.

  아이는 스스로 마법을 익혀서 마법사가 되었으나, 막상 마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하는 마음을 배우지는 못했어요. 카이투스네 아버지는 카이투스를 따사롭고 부드러이 마주할 줄 알지만,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카이투스하고 말을 섞을 기운이 없어요. 어머니도 매우 착하고 상냥하지만 카이투스가 스스로 배우고 싶은 삶길을 밝히는 데까지는 돕지 못해요. 할머니는 카이투스한테 늘 슬기롭고 따스한 마음을 베풀지만, 카이투스는 아직 할머니 말씀을 가슴에 새길 만큼 철이 들지는 못했어요.

  카이투스는 그저 마법힘을 빌려서 돈을 잔뜩 얻고, 마법힘에 기대어 이름을 높이 드날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돈이며 이름을 한껏 얻고 나서 ‘이 모두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똑똑히 깨닫습니다. 학교가 싫어서 달아나고, 집이 귀찮아서 달아난 아이는 자꾸자꾸 달아날 수밖에 없는 고비에 이르고, 이렇게 달아나고 달아나다가 어느 날 ‘요정’이 된 아이 조슈아를 만나지요.


“조슈아, 넌 언제부터 요정이었엉?” 카이투스가 물었지. “나도 잘 모르겠어. 난 오래전부터 요정이 되고 싶었거든. 숲속에서 블루베리를 따거나 작은 꽃을 엮어 모자를 만들다 보면 언젠가 요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이들에게 잘 해 주고 싶었어.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을 잘 지켜 주고 싶었어. 가난한 사람들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어. 그런데 요정이 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정말 몰랐어.” (215쪽)

“안톤, 진정해. 살다 보면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잖아. 그때마다 화내고 흥분하면 정말 도움이 안 돼. 이제 중요한 건 집으로 가는 길을 찾는 거야.” 조슈아는 카이투스를 달랬지. “엄마한테 돌아간다고? 엄마는 널 알아보지도 못하실 거야!” “하지만 내가 엄마를 알아보겠지. 그리고 가까이 가겠지. 난 노력할 거야. 엄마를 돌봐 드리고 위로해 드릴 거야!” (221쪽)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마주하면서 가르칠 적에 즐거울까요? 어버이로서 바깥일이 너무 바쁘다면서 오직 학교에만 아이를 맡겨도 될까요? 교사인 어른은 교과서 수업만 잘 알려주고 아이들한테 마음 됨됨이에는 눈길을 보내지 못해도 될까요?

  마법사 아이는 마법을 쓸 줄은 알아도 마법을 건사할 줄 몰랐습니다. 요정 아이는 마법사 아이처럼 대단한 힘은 없지만 따사로운 사랑이 있습니다. 따사로운 사랑을 찬찬히 베풀면서, 마음이 아프거나 힘겨운 마법사 아이를 달래요. 마법사 아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이웃 사랑’을 일깨워 주고, 이웃에 앞서 ‘마법사 아이가 스스로 나를 사랑하는 길’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때부터 작게 물결이 일어요. 마법사 아이 마음속에 물결이 일지요. 학교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대목을 요정 아이한테서 배우면서 고개를 숙이는 마음을 받아들여요. 이웃을 따사로이 품는 요정 아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마법사 아이 스스로 그동안 어떤 짓을 어떻게 했는가를 되새기고 뉘우칩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앞서 남긴 ‘착한 마음이 되는 삶’을 돌아봅니다.


“선생님, 아이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잘 해 주세요. 우리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또 그것이 때때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른들은 잘 몰라요. 사람이 항상 마음먹은 대로 살아가는 건 아니잖아요. 목표점까지 가는데 모두가 반듯한 길로 가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들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과 소원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항상 어른들 마음에 드는 아이가 될 수는 없엉요. 선생님, 보고 싶어요. 저를 믿어 주세요. 좋은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요. 제자 안톤 올림.” (242쪽)


  《카이투스》는 두 아이가 ‘학교 밖’에서 온갖 수렁과 고비와 벼랑길에 맞닥뜨리면서 어떻게 슬기를 모으고 사랑을 길어올려서 하나하나 풀어내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판타지문학이라고 할 만하면서 가르침·배움을 들려주는 책입니다. 꿈 같은 이야기라 할 만하면서 삶·살림을 이루는 바탕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조금 더 어른스럽게 아이를 따스히 마주하자는 뜻을 들려줍니다. 우리 어버이들이 조금 더 상냥하면서 넓게 아이를 가르치고 함께 살림을 짓자는 뜻을 밝혀요.

  아이들 누구나 ‘교육 받기’에 앞서 ‘사랑 받기’를 누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어른들 누구나 ‘지식 가르치기’에 앞서 ‘삶과 사랑 나누기’를 함께 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아이들이 저마다 씩씩하게 꿈길을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른들도 저마다 아름답고 즐겁게 사랑길을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6.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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