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한테 ‘땅 물려주기’ 하려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6] 재산 아닌 살림자리를
.. 곁님·10살 아이·7살 아이하고 함께 살림을 짓고 시골에서 살며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일을 하는 사내(아저씨)입니다. 시골 폐교를 빌려서 도서관학교로 가꾸면서, 우리 집 두 아이는 제도권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에서 즐겁게 가르치고 함께 배웁니다. 어버이로서 두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살림입니다. 밥·옷·집을 손수 지으며 누리고 나누자는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익히려는 사랑을 길어올리려 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아이키우기(육아)·살림(평등)·사랑(평화)’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여성혐오’도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길도 아닌, 새로운 사람길을 밝혀 보고 싶어요 ..
어릴 적 저희 집안은 퍽 가난했어요. 저희 집안뿐 아니라 이웃 집안도 하나같이 가난했어요. 함께 뛰노는 동무네 집도 나란히 가난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저희나 이웃이나 동무가 ‘가난하다’고는 여기지 않았어요. 그때에는 ‘가난’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밥상에 반찬이 한두 가지만 있더라도 ‘반찬 가짓수가 적어’서 서운하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고기 반찬’을 어쩌다 한 번 먹어도 그러려니 하고 여길 뿐 아니라, 이런 날은 잔칫날이겠거니 하고 여겼습니다.
도시에서 살림을 꾸린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두 분 소유 집’을 이루기까지 꽤 오래 걸렸습니다. 늘 다른 사람 집을 빌려서 달삯을 치르는 살림이었어요. 이런 살림을 오래도록 보고 자라는 동안 ‘우리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뭔가를 물려받는다’는 생각은 아예 해 보지 않았어요. 앞으로 제금을 날 적에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장만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어요.
스무 살부터 어버이 집에서 나와 따로 살았어요. 모든 일과 살림을 스스로 해내면서 한 살 두 살을 먹었습니다. 집안일이나 집살림이란 무엇인가는 스무 살부터 비로소 몸으로 깨달았고, 두 손에 ‘살림 굳은살’이 생기면서 삶을 바라보는 마음이 거듭났다고 느껴요. 다만 서른 언저리까지는 ‘즐겁게 살림하자’는 생각은 했되 ‘아이하고 어우러지는 살림’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서른 한복판을 지나면서 ‘우리 집 아이’를 맞아들이고서야 비로소 ‘어른이 아이하고 짓는 살림’을 처음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아이하고 처음 가꾸던 살림집도 우리 어버이 살림집처럼 ‘달삯을 치르는 곳’이었지요. ‘우리 집’이기는 하되 ‘우리가 가꾸어 물려줄 수 있는 집’이 아니었어요. 도시에서 살 적에는 웬만해서는 달삯살림을 벗어나기 어려워요. 더욱이 도시에서 ‘우리 소유 집’을 얻는다고 해도, 도시는 재개발이 너무 잦아서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우리 삶과 이야기가 깃든 보금자리’를 물려줄 수 없는 얼거리로구나 하고 느끼곤 했습니다.
저나 곁님은 우리 아이들한테 ‘재산’을 물려줄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우리 아이들이 ‘재산’이 아니라 ‘살림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얼핏 보자면 ‘집’은 부동산이라고 하는 재산입니다. 깊이 살피자면 ‘집’은 두 어버이가 사랑으로 살림을 하면서 삶을 노래하는 보금자리입니다.
아이들이 물려받을 만한 터전이라면 바로 ‘보금자리’이지 싶어요. 또는 ‘살림자리’이지요. 또는 ‘사랑자리’요, 또는 ‘삶자리’이고, ‘이야기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도시를 떠나서 시골에 깃들 적에 장만한 살림집은 2011년에 ‘바가지를 써서’ 1000만 원 돈을 치렀습니다. 97평에 1000만 원을 치렀지요. 측량을 처음으로 하고, 등기도 처음으로 하느라 치른 세금까지 더해서 1000만 원을 치렀어요. 이 집에 깃들고서 한두 해쯤 뒤에 이웃 할아버님이 넌지시 말씀해 주시더군요. 저희 집쯤이라면 300만 원이 알맞은 값(매매가)이었다고요.
이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어요. “그렇군요. 그래도 괜찮아요. 저희는 두고두고 살아가면서 기쁨으로 지을 살림집을 얻었으니까요.”
나중에 우리 집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저희한테 ‘집을 물려받는다’고 하더라도 이 시골마을 작은 집은 ‘돈’이 될 만할 수 없으리라 느낍니다. 아마 그러하겠지요? 저희 스스로도 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고요. 그러면 저희는 왜 이 집을 보금자리·살림자리·사랑자리·삶자리로 가꾸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가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희는 ‘보금자리·사랑자리’ 같은 이름 그대로 이 터전(집)이 스스로 삶을 짓는 슬기롭고 즐거운 한마당이 되기를 바라요. 어버이 두 사람이 온 슬기와 땀방울을 들여서 알뜰살뜰 가꾸어 아이들이 새롭게 꿈을 지피는 바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집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열매와 그늘과 바람과 노래를 베풀어 줄 수 있는 보금자리를 바랍니다. ‘우리 집 흙’이 숲흙처럼 까무잡잡하고 구수한 내음으로 싱그러워서, 무엇을 심어 키우든 알차고 넉넉하게 얻을 수 있는 살림자리를 바랍니다. 평화롭고 사랑스레 살림을 짓는 동안, 이 평화로움과 사랑스러움을 아이들이 스스로 누리고 이웃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랑자리를 바라요. 아이들이 손수 가꾸고 짓고 짜고 엮고 건사하면서 ‘작은 하나부터 자급자족하는’ 삶을 새로 배우는 삶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벌나비랑 멧새랑 개구리가 살가이 어우러질 수 있는 숲자리가 되기를 바라요.
저희가 아이들한테 물려주려고 하는 땅은 그냥 땅이 아닌 ‘숲 보금자리’나 ‘보금자리 숲’입니다. 숲이 될 보금자리, 또는 보금자리가 될 숲을 아이들이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차근차근 가꾸지요. 저희는 ‘숲 보금자리’나 ‘보금자리 숲’을 ‘숲집’이나 ‘집숲’이라는 이름으로 줄여서 말해요. 어버이요 어른인 두 사람으로서 ‘숲집·집숲’을 먼저 가꿉니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이 ‘숲집·집숲’을 더욱 사랑스레 가꾸고 돌보면서 먼먼 뒷날까지 새로운 아이들이 꾸준히 물려받기를 꿈꾸지요. 200년이고 500년이고 1000년이고, 싱그러운 ‘마을숲집’으로 퍼지기를 바라요.
도시에서 사는 이웃님도 재산 아닌 집을 가꾸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파트나 빌라라는 곳은 어쩔 수 없이 자꾸 재개발을 해야 하잖아요? 도시에 사는 이웃님 스스로 꿈을 키워서 아파트나 빌라 아닌 ‘마당 있는 집’을 어여쁜 보금자리로 맞아들여서 이러한 보금자리를 아이들이 물려받아 더 싱그러이 일굴 만한 ‘숲집’으로 돌보신다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우리는 ‘임시 거주지’나 ‘적은 돈으로 얻을 거주지’가 아닌, ‘적어도 200년은 건사하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보금자리’를 누려야지 싶어요. 2017.5.2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