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던 농업학교의 돼지 -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한 미야자와 겐지
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우연 그림, 차주연 옮김 / 달팽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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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6



돼지가 ‘잡아먹히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 플랜던 농업학교의 돼지

 미야자와 겐지 글

 이우연 그림

 차주연 옮김

 달팽이출판 펴냄, 2016.12.5. 11000원



  저는 요즈음 호밀밭을 아침저녁으로 돌아보면서 이 호밀을 언제쯤 낫으로 석석 베어서 즐겁게 가루를 빻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지난가을에 우리 집 뒤꼍에 호밀씨를 뿌렸고, 이 호밀씨는 겨울을 씩씩하게 나고선 봄에 무럭무럭 올라와서 여름을 앞두고 어른 키를 훌쩍 넘도록 자랍니다.


  땅을 안 갈고 씨뿌리기만으로 땅심을 북돋우고 호밀이 잘 자랄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지켜봅니다. 이 호밀을 즐거이 거두면 호밀은 호밀대로 가루가 되어 줄 테고, 줄기는 줄기대로 밀짚으로 삼을 수 있어요.


  지난날 누구나 땅을 지어서 살림을 가꿀 적에는 씨앗을 뿌리고 나서 열매를 얻을 뿐 아니라 짚을 함께 얻었어요. 우리가 흔히 아는 이엉이라든지 짚신이나 새끼는 모두 짚입니다. 하나는 밥이 되고 다른 하나는 살림이 된달까요. 오래된 이엉이나 짚신이나 새끼는 땅에 놓아 주면 비바람과 햇볕에 삭을 뿐 아니라 풀벌레가 갉으면서 새롭게 흙으로 돌아가요.



“곰아, 나는 네가 미워서 죽인 것이 아니란다. 나도 먹고살려면 너를 쏴야 해. 죄가 되지 않는 다른 일을 하면 좋겠지만 밭은 없고 나무는 높으신 양반들이 차지하고 마을로 나가 봐도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으니 …… 할 수 없이 사냥을 하고 있단다. 너도 곰으로 태어난 게 업보라면 나도 사냥꾼인 것이 업보다. 곰아, 다음 생에는 곰으로 태어나지 마라.” (14∼15쪽)



  우리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흔히 ‘쓰레기 없던 살림’이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그렇지요. 지난날 누구나 땅을 지을 적에는 ‘쓰레기’라는 낱말조차 없었다고 느껴요. 버릴 것이란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밥으로 삼거나 옷으로 깁거나 집으로 짓지요. 모두 살림살이예요. 오늘날 우리는 땅을 짓기보다는 돈을 벌어서 살림을 꾸리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벼나 보리나 밀 같은 곡식을 비롯해서 배추나 무나 상추나 당근 같은 남새를 굳이 심어서 돌보아 거두지 않더라도 가게에 가서 손쉽게 돈으로 장만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살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돈으로 살림을 꾸릴 적에는 늘 쓰레기가 생겨요. 무엇보다 ‘밥찌꺼기·밥쓰레기(음식물 쓰레기)’가 엄청나게 나오지요.


  게다가 도시에서는 쌀뜨물조차 흙한테 돌려주지 못해요. 개수대를 거쳐 하수구로 버리고 맙니다. 시든 배춧잎이라든지 감자껍질을 땅한테 돌려주지 못해요. ‘음식물 쓰레기를 담는 비닐봉지’에 담아서 버려야 합니다. 돈으로 살림을 꾸리는 오늘날에는 우리가 손수 땅을 짓지 않으면서 쓰레기가 자꾸자꾸 불어요. 앞으로 이 쓰레기는 어찌해야 할까요.



“해님, 해님, 부디 저를 당신 곁으로 데려가 주세요. 타죽어도 괜찮아요. 저처럼 못생긴 새라도 탈 때는 작은 빛을 내겠지요? 부디 저를 데려가 주세요.” 가도 가도 해님은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점점 작아지며 멀어져가던 해님이 말했습니다. “쏙독새로구나. 그래, 무척 괴롭겠구나. 다음에는 밤하늘의 별에게 부탁해 보렴. 넌 낮에 활동하는 새는 아니잖니.” (42∼43쪽)



  미야자와 겐지 님이 쓴 《플랜던 농업학교의 돼지》(달팽이출판,2016)를 읽습니다. 일본에서 꽤 옛날에 나온 작품입니다. 미야자와 겐지 님은 언제나 땅을 사랑하고 바람을 아끼며 해와 별을 그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작은 풀벌레하고 벌나비를 사랑하고 숲짐승을 아끼며 이웃하고 오순도순 짓는 살림을 그리는 이야기를 펼쳤지요.


  《플랜던 농업학교의 돼지》는 사람 눈길로만 이야기를 펼치지 않습니다. 곰 눈길로도, 돼지 눈길로도, 멧새 눈길로도, 이 지구라는 별에 깃든 수많은 목숨들 눈길로도 이야기를 펼칩니다. 우리들 사람을 둘러싸고서 수많은 목숨이 있다는 뜻을 조용조용 밝혀 줍니다.



‘이 세상은 정말이지 너무도 괴롭구나. 정말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이야.’ 돼지는 산책 중에 채찍을 맞으며 절실히 생각했다. “이제 슬슬 쉬어 볼까요?” 조수는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 똑똑한 대학생 여러분, 이런 산책이 재미있겠는가? 건강을 생각해서 하는 운동도 뭣도 아닌데 말이다 … 사환이 커다란 솔로 돼지의 몸을 깨끗이 씻겨 주었다. 돼지는 솔을 흘끗 보더니 꽥꽥 소리를 질렀다. 돼지털로 만든 솔이었기 때문이다. 돼지가 아우성치는 동안 몸은 새하얘졌다. “이제 돌아갈까요?” 조수가 다시 한 번 찰싹 채찍으로 때렸다. (68. 78쪽)



  돼지는 사람한테 먹히려고 자란다고 합니다. 소도 이와 같아요. 닭도 이와 같지요. 틀림없는 목숨인데 그저 먹히려고 자랍니다.


  먹는 일은 나쁘지 않아요. 우리가 벼나 감자를 심을 적에도 먹으려고 심습니다. 즐겁게 먹고 배불리 먹으면서 새롭게 일하고 살림하며 꿈을 이루려고 하는 하루입니다.


  무엇을 먹느냐는 무엇을 몸으로 받아들여서 무엇을 이 몸으로 하려고 하느냐 하는 이야기로 이어지지 싶어요. 아름답게 돌보아서 거둔 먹을거리로 밥을 짓느냐, 아니면 어떻게 돌보는가를 하나도 모르는 채 그냥 돈만 치러서 사다가 먹느냐는 사뭇 다를 만해요.


  그런데 미야자와 겐지 님은 우리한테 새삼스레 묻습니다. ‘잡아먹히는 삶이 되려고 자라는 돼지가 사람한테 안 잡아먹히고 싶다고 말을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우리에서 자라는 돼지가 ‘사람말’을 배워서 사람들이 나누는 말을 알아들을 뿐 아니라, 돼지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잡아먹히지 않을 권리’를 밝힌다면 이때에 우리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요.



“인간의 마음이 점점 인간에 가까운 존재에서 먼 존재로 향해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괴로운 일은 감각이 있는 존재에게도 역시 괴로운 일이고, 인간에게 슬픈 일은 강약의 차이는 있더라도 역시 모든 동물에게 슬픈 일입니다.” (126쪽)



  한겨레도 다른 겨레도 산 목숨을 잡아서 밥으로 삼을 적에는 언제나 비손을 했습니다.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밥이 되어 주는 산 목숨 모두한테 고맙게 고개를 숙였어요. 절을 했지요.


  사람은 고기도 먹고 풀도 먹으며 열매도 먹습니다. 사람은 고기한테도 풀한테도 열매한테도 늘 고맙다고 말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사람말을 못하는 짐승이라기보다, 사람말을 했다가는 너무도 괴롭거나 슬픈 짐승이리라 느낍니다. 사람말을 못하는 풀이라기보다 굳이 사람말을 안 하는 풀이지 싶습니다.


  여느 짐승들을 보면, ‘먹지 않을 적’에는 잡아죽이지 않습니다. 잡아서 먹어 목숨을 이어야 할 때에만 비로소 다른 짐승을 잡아죽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지난날에는 꼭 밥으로 삼아야 할 적에만 사냥을 하거나 땅을 지었어요. 오늘날에는 꼭 밥으로 삼지 않아도 될 자리에서도 사냥을 한다든지 땅을 망가뜨려요. 너무 돈만 생각하느라 숱한 짐승을 괴롭히고 드넓은 들이나 숲을 파헤칩니다.



“물고기가 죽는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물고기를 먹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물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물고기가 기뻐할지 어떨지도 알 수 없습니다. 어차피 죽음을 당할 운명이니 우리가 죽여 주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인간이 물고기를 잡지 않으면 바다가 물고기로 넘칠 거라는 계산도 하지만, 그런 어림셈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141쪽)



  《플랜던 농업학교의 돼지》는 소리 높여 다그치거나 나무라지 않습니다. 아주 넌지시 묻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앞길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갈고닦을 뜻인가 하고 묻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밥을 먹으려 하느냐고 물어요. 우리 스스로 어떤 삶을 가꾸려 하느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평화로운 땅짓기를 할 수 있을까요? 네,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하면 되어요. 우리는 평화로운 살림짓기를 할 수 있을까요? 네,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제부터 전쟁무기와 군부대를 차츰 줄이면서 서로 아름답게 어깨동무할 수 있어요.


  관광지로 꾸며야 관광할 만한 곳이 되지 않아요. 우리는 4대강 막삽질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끔찍하거나 아픈 짓이었는가를 곁에서 지켜보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토록 엄청난 돈을 들여서 그토록 엄청난 땅이며 물줄기를 파헤친 뒤끝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토록 엄청난 돈은 평화와 평등을 이루는 아름다운 살림을 가꾸는 데에 써야 하지 않았을까요? ‘막삽질 일자리 만들기’는 이제 그치고, ‘아름다운 흙살림 일자리 나누기’를 할 때가 아닐까요?


  숲은 숲 그대로 아름답기에 숲으로 찾아가서 마음을 쉬고 몸을 쉴 만해요. 냇물은 냇물 그대로 사랑스럽기에 냇물로 찾아가서 마음을 달래고 몸을 달랠 만해요. 마을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며 삶과 꿈을 살리는 길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즐겁게 땅을 짓고 삶을 지으며 사랑을 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온누리 아이들이 품을 수 있기를 바라요. 2017.5.2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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