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동네서점
구선아 지음 / 퍼니플랜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304


마을마다 책방이 설 수 있는 나라
― 여행자의 동네서점
 구선아 글·사진
 퍼니플랜 펴냄, 2016.9.9. 9900원


  시골 면에 사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천이나 이천 사람 즈음 살기도 하고, 천 사람이 안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작은 면이라면 여러 면을 하나로 아우를 만하리라 여길 수 있지만, 그나마 작은 면을 뭉뚱그린다면 시골에서 사는 사람으로서는 행정을 보기가 아주 힘들어요.

  시골 읍에서 은행이 문을 닫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사람이 적은 데다가 자꾸 줄어들기만 하니까요. 은행으로서는 시골에 지점을 두기보다 도시에 지점을 두어야 돈이 될 만할 수 있습니다. 은행뿐 아니라 다른 가게도 엇비슷합니다. 시골에서 빵집이나 찻집이나 밥집을 열어서 돈을 벌기란 참으로 힘들다고 할 만합니다.

  시골이 작아지는 흐름은 차츰 깊어집니다. 이러면서 다른 가게도 가게입니다만, 시골에서는 책방을 구경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책을 두루 만날 수 있는 시골 책방이란 이제 자취를 감춘다고까지 할 만해요.

  일흔이나 여든 나이에 접어든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가 책을 장만해서 읽기 어려울 수 있겠지요. 아직 시골에서 사는 어린이나 푸름이는 시골에 남기보다 하루 빨리 도시로 나아가고 싶을 수 있어요. 그나마 시골 읍내에 있는 책방은 참고서나 몇 가지 베스트셀러가 아니고는 들여놓지 못합니다. 시골사람 스스로 책하고 멀어지고, 시골책방 스스로 여러 갈래를 두루 다루지 못하는 길로 갑니다.


그때 활짝 열려 있는 초록 문틈으로 외국인 커플이 들어왔다. 경복궁 영어 브로슈억가 주머니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걸로 보아 틀림없는 관광객이었다. 한국을 찾은 관광객이 이런 동네서점에 들르다니, 눈에 띄는 간판도 친절한 설명도 없는 곳이라 오기 힘든 곳인데 어떻게 알고 왔을까. (16쪽)

〈오프 투 얼론〉을 돌아보며 가장 나를 미소 짓게 한 사랑스런 책 한 권을 사고, 또 오겠노라 주인장에게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28쪽)


  구선아 님이 쓴 《여행자의 동네서점》(퍼니플랜,2016)을 읽으며 마을책방을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서울을 여섯 갈래로 나누어서 열여덟 군데에 이르는 마을책방하고 일곱 군데에 이르는 문화마당을 다룹니다. 서울에는 마을책방이 열여덟 군데뿐 아니라 훨씬 많이 있어요. 사람이 많은 만큼 책방도 많은 서울이에요.

  글쓴이는 석 달 동안 서울 시내 마을책방 열여덟 군데에다가 전남 순천에 있는 마을책방 한 군데를 다녀온 발자국을 책 한 권으로 갈무리합니다. 짧은 동안에 둘러본 마을책방이라 할 텐데, 여행을 ‘책방’을 찾아서 다녔다고 하는 대목을 눈여겨볼 만하지 싶습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로 떠나거나 다른 고장으로 나들이를 갈 적에 ‘관광명소’만 찾아가야 하지 않아요. 사진 찍기 좋은 곳이나 자연이 아름다운 곳만 여행을 해야 하지 않아요. 뒷골목도 앞골목도 나들이를 할 만합니다. 골목길뿐 아니라 시골길을 마실할 만합니다. 숲이나 바닷길을 걸어 볼 만하고, 책방을 둘러싼 마을을 천천히 거닐다가 책방에서 다리쉼을 하면서 마음밥을 먹을 수 있어요. 맛집을 찾아가서 맛밥을 먹듯이, 책집을 찾아가서 책 한 권에 깃든 숨결을 들이마실 수 있습니다.


순천역 앞엔 작은 책방이 있다. 순천역에서 기차 시간이 남았다면 어정쩡하게 플랫폼을 서성이지 말고 순천역 앞 작은 동네서점 〈책방 심다〉에 가 보자. (83쪽)


  버스여행도 기차여행도 걷기여행도 여행입니다. 책방마실도 여행입니다. 여기에 책읽기도 여행입니다. 책 한 권에 담긴 이야기는 글쓴이가 온삶을 바쳐서 빚은 노래와 같아요. 이 노래를 가만히 따라서 읽는 동안 새로운 삶을 만나요. 꽃이나 나무나 하늘이나 집을 바라보면서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듯이, 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마주하면서 아름답구나 하고 느낍니다.

  재미난 이야기를 읽으며 웃습니다. 아린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짓습니다.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벅찹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으며 꿈을 키웁니다. 버스길이나 전철길에서 책을 손에 쥔다면, 아무리 시끌벅적한 곳에서도 고요한 마음이 되어 새로운 생각을 지필 수 있어요. 여행길에서 여행자로서 손에 책 한 권을 쥐어 본다면, 새로운 고장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앞서 새로운 마음으로 한껏 북돋울 수 있기도 해요.


‘김소월의 진달래꽃 + 아메리카노 = 10,000’ 책 한 권과 아메리카노 한 잔을 세트로 엮은 메뉴라니. 그것도 책 한 권 가격에 커피까지. 나는 고민 없이 세트를 주문했다. (114쪽)


  《여행자의 동네서점》을 읽으며 ‘피노키오’라는 마을책방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림책을 알뜰히 다루는 마을책방이라고 해요. 이 책에서는 서울 연남동에 있다고 나오는데 곧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덧말이 붙어요. 이 책을 다 읽고서 살피니 ‘피노키오’라는 ‘그림책 마을책방’은 경북 경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북 경주에서는 2017년 5월 13일까지만 가게를 열고서 한동안 쉰다는데, 올 6월부터는 대구로 다시 책방을 옮긴다고 해요.

  한 곳에 고이 뿌리를 내리면서 마을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베풀 수 있으면 더 좋다고 할 텐데, 마을책방 한 곳도 여행자처럼 여행을 하는구나 싶습니다. 새로 터를 잡을 고장에서는 느긋하게 책방살림을 이을 수 있으면 좋겠네 하고 생각합니다.

  책방도 마을도 책손도, 여기에 글쓴이와 출판사 일꾼도, 서로 따사롭고 넉넉한 마음이 되어서 어우러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즐겁게 짓는 삶과 살림을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에 얹어서 고운 책 한 권으로 엮고서, 이렇게 엮은 고운 책을 마을사람이 사뿐사뿐 마실하며 반가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을 한켠에 마을책방이 서기에 마을이 빛날 만해요. 아주 작은 책방이라 하더라도 마을책방 한 곳은 작은 책 한 권에 서린 이야기를 마을에 흩뿌리는 징검다리 구실을 해요. 마을 어르신한테도, 마을 젊은이한테도, 마을 푸름이와 어린이한테도 따스한 햇볕 같은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나누어 줍니다.


“소장하고 있던 책을 팔면 아깝지 않으세요?”라는 나의 지극히 물욕적인 물음에 “팔아서 사고 싶었던 다른 책을 사요. 책을 사는 재미가 쏠쏠하거든요.”라며 대답하는 주인장이다. “처음 책방을 열 때, 아내가 당신이 읽는 책은 재미없어서 아무도 안 살 거라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어떻게 다들 아는지, 좋은 책은 다 골라가더라고요.” (153쪽)


  참고서는 시험 문제를 다루는 교재입니다. 시험 문제를 다루는 교재는 더 큰 도시에 나아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참고서가 아닌 여느 책은 삶을 풀어내는 슬기를 다루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삶을 풀어내는 슬기를 다루는 이야기꾸러미는 다른 고장을 기웃거리려 하지 않아요.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마을을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이 가꾸는 손길을 노래합니다.

  마을책방 한 곳은 마을사람 누구나 스스로 마을지기가 되는 길을 넌지시 책으로 알려주는 구실을 해요. 마을책방 한 곳은 마을사람 모두 스스로 마을님으로 거듭나는 길을 조용히 책으로 밝히는 몫을 맡아요.


요즘 일꾼은, 사는 동네에 작은 어린이도서관도 꾸리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그곳에 가 아이들과 지낸다. 좋은 책을 많이 읽히는 게 목적이 아니라 동네 어디, 일상 어디에나 있는 책을 함께 나누고 싶을 뿐이다. (205쪽)


  마을도서관 곁에 마을책방이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을책방하고 마을도서관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마을사람한테 책숨을 불어넣기를 바랍니다. 곰곰이 헤아려 본다면, 지자체마다 마을도서관하고 마을책방을 살찌우는 길을 마련할 만해요. 마을에서 나고 자란 씩씩하고 어여쁜 아이들이 앞으로도 마을에서 알뜰하며 멋진 일꾼으로 살아가도록 이끄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아요.

  마을마다 책방이 설 수 있는 나라일 때에 지역자치를 저절로 이루면서 튼튼한 살림이 되리라 생각해요. 하나하나 꿈을 꾸어 봅니다. 마을책방, 마을도서관, 마을텃밭, 마을장터, 마을잔치, 마을숲을. 여기에 마을아이, 마을노래, 마을꿈, 마을사랑 같은 말을 되뇌어 봅니다.

  관광상품을 개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관광지로 꾸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관광객을 끌어모아야 마을이 살아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마을을 마을사람 스스로 곱게 돌보도록 하면서, 전국 어디나 마을마다 모두 다르면서 멋스러운 마을책방이 있다면, 마을사람이 이곳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골골샅샅 다 다르면서 재미난 책마을이 되어 홀가분하게 마실을 다닐 이웃이 늘어나리라 생각해요.

  어쩌면 ‘관광’이라는 허울에 가리거나 눌리면서 ‘마실’이라고 하는 상냥하고 싱그러운 ‘마을’ 이야기가 잊혔다고 할 수 있어요. 이제 마을을 되찾고, 마을책방을 새로 찾아야지 싶습니다. 아름다운 오월 봄에 새로운 대통령이 서는 이 나라이니, 아름다운 마을책방이 고장마다 하나둘 새로 태어나면 좋겠어요. 즐거이 마을살림·책살림·이야기살림을 꾸릴 수 있는 이웃을 기다립니다. 2017.5.9.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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