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이라면 훔치지 않는다

― 쑥 몰래 캐고 논둑에 쓰레기 버리는 관광객



  도서관학교 마당하고 운동장에 슬그머니 들어와서 쑥을 잔뜩 캐는 관광객을 봅니다. 빨간 관광버스가 마을회관 앞 정자에 서더니 꽤 많은 이들이 내려서 이리저리 돌아보거니 하면서 커다란 파란 비닐봉지에 쑥을 잔뜩 뜯습니다. 이를 뒤늦게 알아챘어요.


  “여기에 함부로 들어와서 뭐 하세요?” “쑥 좀 뜯으려고요.” “다른 사람 땅에 몰래 들어와서 뜯어도 되나요?” “폐교인 것 같아서 쑥을 뜯으려고요.” “다른 사람 땅에 몰래 들어와도 되느냐고 물어봤지요?” “사람이 있는 줄을 몰랐지.” “폐교이면 그냥 들어와서 훔쳐가도 되나요? 저희는 이 폐교를 임대료를 내고서 써요. 다른 사람 것을 몰래 가져가는 일은 도둑질이에요.”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아저씨 아주머니라 할 이들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뜯은 쑥을 내려놓지도 않습니다. 잔뜩 구시렁거리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길가로 나갑니다. 이렇게 한쪽에서 관광객을 쫓아내는데, 운동장 한쪽 끝에서 또 쑥을 뜯는 분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또 묻습니다.


  “여기에서 뭐 하세요?” “쑥 뜯었어요.” “그 쑥을 왜 뜯으세요?” “먹으려고 뜯지요.” “여기 땅임자한테 물어보시고 쑥을 뜯으시나요?” “폐교라서 들어왔어요.” “폐교이든 아니든, 또 폐교라고 하면 그냥 들어와서 뜯어도 되나요?” “아니요.” “아닌 줄 아신다면 생각해 보세요. 빈집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 밭에 들어가서 무나 배추를 뽑으면 될까요?” “아니요.” “쑥하고 무나 배추하고 다르지 않아요. 다 같아요. 빈집이라고 해서 들어가서 무엇이든 몰래 가져가는 일은 도둑질이에요. 뜯으신 쑥을 내려놓아 주세요.” “미안해요. 이런 일을 도둑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앞서 대여섯 사람은 잔뜩 뜯은 쑥을 내려놓지 않고 다 가져갔어요. 외려 쑥을 더 못 뜯게 한다고 구시렁거렸지요. 이분만큼은 이녁이 잘못한 일이라고 털어놓아 줍니다. 그래서 한 마디를 덧붙여 이야기합니다.


  “쑥을 뜯고 싶으시면 먼저 땅임자를 찾아보고 물어보셔야 해요. 그렇게 물은 뒤에 쑥을 뜯으면 되지요. 쑥을 뜯거나 안 뜯는 일은 대수롭지 않아요. 다른 사람 땅에 들어와서 그곳에 있는 것을 몰래 가져가는 일, 도둑질을 하면 안 되어요. 여기가 어떤 곳인지 모르시니까 그냥 버려진 땅인 듯 보실 수 있지만, 이 땅은 다 어떤 일을 하려고 이렇게 두는 곳이에요. 부디 넉넉히 살펴주시기를 바라요.”


  ‘빈집’이니 ‘폐교’이니 하면서 쑥이며 나무이며 나물이며 몰래 훔쳐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 도서관학교에 옮겨심은 초피나무 여섯 그루는 어느새 몽땅 사라졌습니다. 한두 그루씩 누가 몰래 훔쳐갔어요. 마을 할매나 할배가 훔쳐갔을 수 있고, 오늘처럼 낯선 관광객이 슬쩍 훔쳐갔을 수 있습니다. 세 그루는 초피나무를 옮겨심은 지 며칠 만에 도둑맞았고, 세 그루는 옮겨심은 지 달포쯤 지난 오늘 감쪽같이 도둑맞았습니다. 어쩌면 이 관광버스 관광객이 제가 미처 못 본 사이에 슬쩍 훔쳤을 수 있습니다. 어제 저녁까지 우리 초피나무를 버젓이 보았거든요.


  빈집이나 폐교라 하더라도 ‘우리 이웃집’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 ‘이웃집’ 마당에 함부로 들어와서 무엇을 훔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함부로 들어가서 훔치는 곳은 ‘이웃집’이 아니겠지요. ‘낯선 사람 집’이니까, ‘모르는 사람 땅’이니까 슬그머니 들어와서 훔칩니다. 너나들이를 하는 사이라든지 어머니 밭이라든지 아버지 땅이라면, 또 아이들 땅이나 밭이라면 우리는 함부로 이 땅에 들어가서 훔치는 짓을 안 하리라 생각해요. 이웃집 밭이나 땅일 적에는 이웃이 아무리 먼 데에 있더라도 ‘연락이 닿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묻겠지요.


  옆에 있는 낯선 사람을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이 훔침질을 부추깁니다. 이런 훔침질을 하려는 마음이 이명박·박근혜 같은 대통령을 뽑았다고 말한다면 너무 주제넘는 이야기일까요? 낯설거나 낯모르는 사람들 땅이나 밭을 고이 아낄 줄 아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평등이나 평화가 아직 한국에 제대로 뿌리를 못 내린다고 말한다면 너무 앞서가는 셈일까요?


  오늘 우리 도서관학교에서 쑥을 훔친 이들은 논둑 여기저기에 쓰레기를 몰래 버리고 떠났습니다. 한 군데에 쓰레기를 모아 놓기라도 했으면 주워서 치우기 나았을 테지요. 또는 비닐봉지 하나에라도 쓰레기를 모아 담았으면 그나마 나았겠지요. 그러나 이들은 이 논둑 저 논둑 그 풀숲에 아무렇게나 빈 깡통하고 나무젓가락하고 비닐봉지하고 담배곽을 버렸습니다. 이녁이 먹을 밥을 흙을 일구어 거두는 시골 땅에, 논에 밭에 온갖 쓰레기를 내팽개치듯이 버리고 떠났습니다.


  다시 한 번 묻고 싶어요. 이웃집 밭이나 마당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시나요? 이웃집 대문 앞에 쓰레기를 슬그머니 버리시나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사는 집 앞에, 또는 아이들이 사는 집 앞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시나요? 2017.5.7.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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