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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절반은 나 - 곽해룡 동시집 ㅣ 쑥쑥문고 71
곽해룡 지음 / 우리교육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시를 사랑하는 시 88
바다로 돌아가겠노라는 할머니 곁에서
― 이 세상 절반은 나
곽해룡 글
황수민 그림
우리교육 펴냄, 2011.3.25. 8000원
일곱 살 아이는 설거지를 얼마나 할 수 있을까요. 일곱 살 아이만큼 하겠지요. 열 살 아이는 씨앗을 얼마나 심을 수 있을까요. 열 살 아이만큼 심겠지요. 열세 살 아이는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요. 열세 살 아이만큼 걷겠지요.
아이 곁에 어른이 있습니다. 아이가 힘들다고 할 적에 어른이 손을 내밀어 거들거나 돕습니다. 아이가 졸립다고 할 적에 어른이 품을 내주어 고이 안습니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할 적에 어른이 사랑을 쏟아 밥을 짓습니다.
채석강에 와서 알았다.
물고기도 하루 두 번
책을 읽는다는 것을
바닷물은
물고기들에게 책 읽히려고
하루 두 번
밀려왔다 밀려 간다 (물고기 도서관)
곽해룡 님이 빚은 동시집 《이 세상 절반은 나》(우리교육,2011)를 읽습니다. 아이들 곁에 서면서 아이들 마음을 읽은 뒤에 아이들하고 나눌 이야기를 동시집으로 갈무리했구나 하고 느끼면서 동시를 읽습니다.
물고기는 냇물에서 물결이라고 하는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물에서 살기에 물결을 읽어요. 물결을 살피고 물결을 헤아리며 물결을 느끼지요.
어른 곁에 있는 아이는 무엇을 읽을까요? 책이나 교과서만 읽을까요, 아니면 아이를 둘러싼 어른이 짓는 살림을 읽을까요, 아니면 어른이 이룬 사회를 읽을까요? 아이들은 학교도 읽고 사회도 읽으며 문학도 읽고 정치도 읽지는 않을까요? 어른처럼 읽지는 않더라도, 아니 어른처럼 읽지는 않으나, 아이 나름대로 우리 삶자리를 읽을 테지요.
할머니는
잘 여문 콩만 자루에 담고
찌부러진 콩들은
바가지에 따로 모았다
닭 모이나 될 콩들도
땅에 묻어 주면 싹이 틀까 싶어
나는
밭가에 묻어 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낮달)
할머니 곁에 선 아이는 찌부러진 콩을 슬그머니 훑어서 밭가에 묻어 준다고 합니다. 찌부러진 콩도 이 땅에 뿌리를 내려서 싹을 틔우고 씩씩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펼칩니다. 잘 여문 콩뿐 아니라 덜 여문 콩도 틀림없이 싹을 틔우리라는 마음을 품어요.
아무렴 그렇지요. 콩이며 사람이며 똑같은걸요. 잘 여물거나 잘생겨야만 하지 않아요. 덜 여물든 못생기든 대수롭지 않아요. 마음에 고요히 사랑을 품어 따사로운 눈길로 서로 마주할 수 있으면 되어요. 따스한 손길로 서로 아끼면서 즐거이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아름다워요.
이 세상은
나와
내가 아닌 것으로 이루어졌다 (이 세상 절반은 나)
나와 ‘내가 아닌 것’으로 이루어졌다고 여길 수 있는 온누리입니다. 이 말은 온누리가 ‘너와 나’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로 살며시 옮아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있고 네가 있으니 우리가 되어요. 우리는 너하고 나를 아우르는 이름이에요. 너랑 내가 있어 온누리가 있다면, 우리가 함께 있어 온누리가 있다는 뜻이에요.
너는 너대로 아름답고 나는 나대로 아름다워요. 너는 너대로 상냥하고 나는 나대로 상냥하지요. 너는 너대로 반갑고 나는 나대로 기쁨이에요.
할머니 소원은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도 아니고
볕 잘 드는 곳에 묻히는 것도 아니고
물고기 밥이 되는 거라 하셨습니다
평생 개펄을 파먹고 사셨다는 할머니는
돌아가시면 한 줌 가루가 되어
낙지 고둥 꼬막에게도
밥이 되는 거라 하셨습니다 (할머니 소원)
아이는 다시 할머니 곁에 섭니다. 할머니가 슬기로이 들려주는 말밥을 받아먹습니다. 꽃처럼 차린 꽃밥상도 받아먹는 아이요, 꽃처럼 들려주는 꽃말도 받아먹는 아이예요.
바다로 개펄로 이 땅으로 하늘로 바람으로 구름으로 빗물로 돌아가려는 할머니 곁에 서는 아이들은 따사롭고 넉넉한 마음을 물려받을 만해요. 아이들은 차츰차츰 가슴을 북돋우면서 너른 꿈을 키울 만해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동안
내 몸 속에서는
조금씩
가시가 자라났다 (가시물고기)
자동차에 새똥이 떨어졌다고
성이 난 주민들이
화단 가지를
몽땅 잘라 버렸다 (자벌레)
너르게 자라는 마음 한켠이 때때로 아픕니다. 나뭇가지가 잘리듯 아이들 마음에 생채기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아픔을 미움으로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이 아픔을 고이 다스려서 가시가 아닌, 가시울타리나 가시 돋친 말이 아닌, 진주를 품는 조개처럼 곱게 피어나는 사랑으로 다스리고 싶습니다.
성을 내기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느긋하게 깃들 나무 한 그루를 얻기 힘든 새가 어떤 마음인가를 헤아려 보려고 합니다. 지난날에는 사람도 새도 한마을을 이루며 살았을 텐데, 이제 사람은 사람끼리만 도시를 키우면서 새는 보금자리를 자꾸 빼앗겨요.
자동차에 떨어진 새똥쯤이야 얼마든지 닦아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보금자리를 빼앗긴 새는 어쩌지요. 새똥이 퐁 떨어져서 흙을 북돋우기 어려울 만큼 찻길이 드넓고 아스팔트가 빼곡한 도시예요. 찻길을 줄이고 숲을 늘릴 수 있을까요. 도시를 줄이고 숲을 키울 수 있을까요. 사람도 숨통을 트고 새도 숨길을 틀 수 있을까요.
애기똥풀
꺾지 마라
누런 물찌똥 싼다고
신기하다고
자꾸 꺾는 오빠야
그건
똥이 아니라
피일지도 모른다 (애기똥풀)
동시집 《이 세상 절반은 나》는 아이 곁에 서면서 아이가 배우고 싶은 마음을 헤아리는 이야기가 조곤조곤 흐릅니다. 학교에는 없는 이야기가 동시집에 흐릅니다. 교과서에 안 담기는 이야기가 동시 한 줄에 흐릅니다.
문득 돌아봅니다. 교과서나 시험문제에는 할머니 이야기가 없어요. 바다로 돌아가겠노라 하는 할머니 이야기를 교과서나 시험문제에서는 안 다루어요. 잘린 나뭇가지가 어떤 마음인가를 묻는 교과서나 시험문제는 아직 없어요. 온누리는 너랑 내가 함께 있어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도 교과서나 시험문제에서는 다루지 못해요.
애기똥풀 한 포기를 들여다봅니다. 찔레꽃 한 송이를 들여다봅니다. 느티나무 한 그루를 들여다봅니다. 여름을 앞두고 하나둘 깨어나 울어대는 개구리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아이 곁에 서는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들려줄 이야기밥을 어떻게 지을 적에 서로서로 아름다우면서 환하게 웃을 만한가 하고 생각을 기울입니다. 2017.5.7.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동시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