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무침 한 접시
[삶을 읽는 눈] 제철을 먹으려는 살림
겨울이 저물고 봄이 찾아올 무렵 우리 식구는 우리 보금자리에서 돋는 풀이나 겨울눈을 찬찬히 살핍니다. 바야흐로 새봄에 어떤 기쁨을 누리면서 살림을 지을 만한가 하고 헤아립니다. 매화나무에 꽃이 피고 지면 머잖아 매화알이 익을 테니, 매화알을 재워 둘 큰 유리병을 챙기고 햇볕에 말립니다. 매화알은 꽃이 먼저 피고 지는 만큼 먼저 익으니 먼저 훑어서 건사합니다. 이다음으로 모과꽃이 피고 지기에 모과알을 건사해서 모과잼을 졸이려고 부산하지요.
봄을 알리는 숱한 들꽃은 우리한테 나물도 되고, 봄내음을 베푸는 향긋한 숨결도 됩니다. 흰민들레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삼월 한복판에 찔레나무에 새잎이 돋습니다. 새잎이 돋으면서 새 줄기가 뻗으려고 싹이 오르지요. 찔레싹은 사월 한복판에 살짝 훑습니다. 한 번 훑고서 다시 한 번 훑을 수 있습니다.
여느 봄나물은 꽃이 피어도 꽃이 달린 채 무쳐서 먹지만, 찔레싹은 조금이라도 때를 놓치면 곧 단단해지면서 줄기로 거듭나요. 보드라운 때에 얼른 훑어야 합니다. 더욱이 찔레싹은 사람만 좋아하지 않아요. 진딧물이나 풀벌레도 좋아합니다. 우리가 하루나 이틀쯤 찔레싹 훑기를 미루면 진딧물하고 풀벌레가 찔레싹에 잔뜩 달라붙어요. 찔레싹은 이런 진딧물하고 풀벌레한테 이기려고 더 바삐 단단하게 굳겠지요.
찔레싹을 훑어서 나물로 무칩니다. 전라도 고흥에서는 ‘찔구’라고 하는 찔레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찔레나무 곁에 서서 찔레싹을 훑습니다. 아이한테 찔레싹을 어떻게 훑는지 보여줍니다. 잔가시나 큰가시가 있으니 잘 살펴야 한다고 이릅니다. 한 손으로는 길다란 가지를 잡고서 다른 한 손으로 찔레싹을 뽁뽁 뽑듯이 살짝 눕혔다가 잡아당기면 이쁘게 훑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막상 말로 들어도 몸으로 옮기자면 잘 안 될 수 있어요. 해 보고 또 해 보아야 손에 익힐 만합니다. 가시가 정 두려우면 가위를 써서 자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게 맨손으로 찔레싹을 훑습니다. 이러다가 마음을 살짝 딴 데 팔면 그만 가시에 주욱 긁혀서 피가 나요.
어느 모로 본다면 찔레싹 훑기를 비롯한 나물하는 일은 스스로 고요한 마음이 되어 살림을 짓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로는 제철에 누리는 봄나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깊이 보자면 제철을 살피고 누리자는 살림살이입니다. 넓게 바라본다면 제철에 맞는 제일을 하면서 제대로 바람을 마시고 볕을 쬐면서 흙을 밟자는 뜻입니다.
찔레싹을 훑을 적에도, 훑은 찔레싹을 흐르는 물에 헹굴 적에도, 한동안 그늘에서 물을 말릴 적에도, 큰 냄비에 물을 끓여서 찔레싹을 1분 30초나 2분 즈음 데칠 적에도, 잘 데친 찔레싹을 집게로 건질 적에도, 바야흐로 고추장이랑 된장으로 따로 무칠 적에도, ‘우리 신나는 봄살림’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된장으로 한 소쿠리를 무치고, 고추장으로 한 소쿠리를 더 무칩니다. 두 가지 찔레무침을 아이 입에 넣어 줍니다. 된장찔레무침도 고추장찔레무침도 맛나다고 합니다. 두 가지 찔레무침을 접시에 덜어서 마을회간으로 들고 갑니다. 우리가 짓는 봄살림을 이웃 할매하고 가붓이 나눕니다. 마을논에서 흐드러지는 유채꽃내음을 담아 봄찔레맛을 품습니다. 2017.4.2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짓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