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난해 글자 조합’이라는 시



  고작 마흔 줄을 살아가는 나이에 ‘오늘날 이삼십대 시인’이 쓰는 시를 ‘젊은 시’라고 말하기는 우습다만, 오늘날 젊은(또는 어린) 시인이 쓰는 ‘모던 난해 글자 조합’을 읽을 때면, 이를 시로 읽어야 할는지 글로 읽어야 할는지 한국말로 읽어야 할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들 이삼십대 시인은 학교를 오래 다니면서 ‘모던 난해 글자 조합’ 입시공부 빼고는 거의 한 일이 없다. 입시교육은 문학을 문학으로 안 가르치고 국어 교과서도 한국말스럽게 안 가르친다. 수학을 생각하는 기쁨으로 가르치는 입시교육이 있는가? 과학을 꿈꾸는 노래로 가르치는 입시교육이 있는가? 이삼십대 시인은 끔찍한 입시교육이 마치 기계질을 하듯 지식조각을 욱여넣은 슬픈 생채기가 도드라지는 나이라고 느낀다. 따지고 보면 나도 끔찍한 입시교육을 받아야 했다. 나를 돌아보더라도 입시교육 찌꺼기를 털어놓기까지 참 오랜 나날이 걸렸다. 입시교육 쳇바퀴에 갇힌 아이들이 쓰는 글은 ‘살아서 숨쉬는 글’이 되기 어렵다. 입시교육 쳇바퀴를 아직 털어내지 않은 시인이 쓰는 시는 ‘모던 난해 글자 조합’이라는 얼개로 앙금하고 고름하고 생채기를 털어내는 고단한 걸음걸이일는지 모른다. 이들 이삼십대 젊은 시인이 흙을 만지고 바람을 마시면서 쉰 줄로 접어들고 일흔 줄로 접어들 수 있기를 빌 뿐이다. 2017.4.2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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