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4.10.
인천에 닿아 ‘배다리 사랑방’에서 하루를 묵는다. 이틀 동안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집살림을 건사하다가 인천에 바깥일을 보러 온 터라, 몸이 매우 고단했구나 싶다. 엊저녁에는 그림책 《오빠랑 제니랑》을 겨우 들여다보았다. 드넓은 마당을 마치 숲처럼 가꾸는 집에서 두 아이가 서로 동무로 지내면서 온갖 놀이를 함께 누리는 살뜰한 이야기가 흐른다. 바깥에서 보기에 ‘외딴 시골집 아이들’은 다른 동무가 없을까 걱정하지만, 이 걱정은 그야말로 덧없는 걱정이다. 외딴 시골집 아이들은 서로 아끼면서 마음을 읽는 동무가 될 뿐 아니라, 마당이며 숲이며 들에서 스스로 숱한 놀이를 새로 지을 줄 안다. 따사로운 사랑에다가 날갯짓하는 꿈이 있는 어린 날을 누릴 수 있다면 이 기쁨은 어느 무엇에도 댈 수 없다고 본다. 저녁 아홉 시가 채 못 되어 까무룩 곯아떨어졌다. 새벽 네 시에 번쩍 눈을 뜬다. 엊저녁에 살짝 눈을 붙인 뒤 열 시나 열한 시쯤 피시방에라도 다녀올까 싶었는데, 그만 새벽 네 시까지 곯아떨어졌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마음을 다잡고 하루를 그린 뒤에 《우리말 소반다듬이》를 읽어 본다. 한국 소설에서 나타나는 얄궂은 말씨를 하나하나 짚으면서 바로잡아 주는 이야기를 담는다. 나는 한국 소설에서 재미를 잃은 지 오래라 한국 소설을 안 읽은 지 스무 해가 넘는다. 박완서도 김훈도 조정래도 은희경도 안 읽는다. 내가 한국 소설을 안 읽는 까닭을 돌아본다. 이야기맛이 떨어진다고 느끼기도 할 테지만, 무엇보다 글맛이 없다고 느낀다. 소설은 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막상 소설을 쓰는 분들은 글(한국말)을 그분들 나름대로 깊거나 넓게 살펴서 쓴다고는 할 터인데 내 마음으로 와닿지 못한다. 《우리말 소반다듬이》를 쓰신 분은 소설을 퍽 좋아하시기에 ‘아무리 글이 엉터리라 하더라’도 찬찬히 읽고서 이렇게 ‘엉터리 글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에 이런 책까지 쓰셨구나 싶다. 다만 이 책을 쓴 권오운 님은 이녁 글에서 ‘-의’만 1/10로 줄여도 이 책이 훨씬 맛깔스러웠으리라 본다.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