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7. 쉬운 말은 쉽게 써야 아름다워요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가지를 해서 두 가지로 좋다고 할 적에 씁니다. 두 가지로 좋은 일을 가리키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고도 해요. 하나만 좋지 않고 하나를 더 얻기에 ‘덤’이라는 말도 써요. 두 가지로 좋을 적에는 ‘더’ 좋은 셈이니 “더 좋다”고 쉽게 말할 만합니다.

  ‘만고불변(萬古不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안 바뀐다고 할 적에 씁닏다. 오랫동안 안 바뀌니 “오랫동안 안 바뀐다”고 할 만하며, ‘한결같다’고 할 만하지요. “늘 그대로”라든지 “언제나 그대로”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시청청(四時靑靑)’이라는 글을 쓰는 분이 있어요. 말뜻은 “네 철 푸르다”예요. 이 말뜻처럼 누구한테나 쉽게 “네 철 푸름”처럼 쓸 수 있고, ‘늘푸른나무’라는 이름에서 보기를 얻어 ‘늘푸르다’처럼 새롭게 한국말을 지을 만해요.

  어느 말을 골라서 쓰느냐는 어느 생각을 마음에 품느냐라 할 만합니다. 어떤 말을 가려서 쓰느냐는 우리를 둘러싼 이웃하고 어떤 생각을 어떤 마음으로 나누려 하느냐라 할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 비닐로 엮어서 남새를 키우면 ‘비닐집’입니다. 이를 놓고 굳이 영어를 끼워넣어 ‘비닐하우스’라고도 합니다. ‘비닐’을 빼고 ‘하우스’라고 하면 시골에서는 비닐로 남새를 키우는 곳을 가리킨다고 여기기도 해요. 그런데 ‘하우스(house)’는 영어로 그냥 ‘집’일 뿐이에요. 영어라고 해서 ‘농사를 밝히는 전문말’이 될 까닭이 없을 텐데, 그저 ‘집’을 뜻하는 영어를 퍽 아무렇지 않게 쓰는 얼거리입니다. 글잣수로 보아도 ‘비닐집’ 석 자요 ‘하우스’ 석 자예요.

 필요하다(必要-) :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다
 요구되다(要求-) : 받아야 될 것이 필요에 의하여 달라고 청해지다

  초등학교 교과서나 동화책에도 곧잘 나오는 한자말 ‘필요’가 있어요. 이 낱말을 꼭 써야 할는지, 제법 쓸 만한지, 굳이 안 써도 될 만한지 생각해 보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한국말사전을 뒤적여 말뜻을 살피는 분은 있을까요?

  우리 한국말사전은 ‘필요’를 ‘요구’라는 한자말을 써서 풀이하고, ‘요구’는 ‘필요’라는 한자말을 써서 풀이해요. 자, 이런 돌림풀이를 보면서 두 한자말을 얼마나 잘 헤아리거나 가늠할 만할는지요.

  “그 책이 필요해” 하고 말해야 할는지, 아니면 “그 책이 있어야 해” 하고 말하면 될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하나 더 살피면, ‘필요 = 반드시 있어야 함’을 가리키기에 “꼭 필요해”나 “반드시 필요해”라 하면 겹말이에요.

 일별(一瞥) : 한 번 흘낏 봄
 흘깃 : 가볍게 한 번 흘겨보는 모양
 흘낏 : 가볍게 한 번 흘겨보는 모양. ‘흘깃’보다 센 느낌을 준다
 흘겨보다 : 흘기는 눈으로 보다

  어느 분이 ‘일별’이라는 한자말을 쓰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한국말사전부터 뒤적였습니다. ‘일별’은 “흘낏 봄”을 뜻한다 하고 ‘흘낏’은 ‘흘겨보다’를 나타낸다고 해요. 그러니까 ‘일별하다 = 흘겨보다’인 셈이에요. ‘일별’이라는 말을 쓰는 분은 한국말을 어느 만큼 헤아렸을까요? 우리는 서로 어떤 말을 주고받을 적에 생각을 환하게 나누면서 마음을 즐거이 밝힐 만할는지요.

 가다 : 1.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장소를 이동하다
 이동하다(移動-) : 1. 움직여 옮기다. 또는 움직여 자리를 바꾸다
 옮기다 :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여 자리를 바꾸게 하다

  ‘가다’는 아주 쉬운 말이에요. 아마 ‘가다’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아주 쉬운 낱말이면서 뜻이나 쓰임새가 매우 넓고 깊은 낱말인 ‘가다’예요. 이런 한국말 ‘가다’를 살피면 ‘이동하다’로 풀이해요. ‘이동하다’는 “움직여 옮기다”로 풀이하는데, ‘옮기다’는 “움직여 자리를 바꾸게 하다”로 풀이하기에 겹말풀이입니다.

  아주 쉽고 흔한 낱말일 텐데, 아주 쉽게 겹말풀이랑 돌림풀이로 다루고 말아요. 아마 한국사람은 이런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안 찾아볼 테지만, 한국말을 처음 익히는 어린이라든지 외국사람은 이처럼 쉬운 낱말부터 찾아볼 테니 어리벙벙하리라 느낍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 있어요.

  한번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자, 이리로 오셔요”하고 “자, 이리로 이동하셔요” 가운데 어느 말을 쓸 적에 쉬우면서 잘 알아들을 만할까요? 어린이하고 외국사람한테는 어느 말을 써야 알맞을까요?

  더 생각해 본다면, 어린이하고 외국사람한테 알맞게 쓸 쉬운 말을 어른 사이에서도 써야 아름답지 않을까요? 어른만 보더라도 전문가나 기술자 사이에서도 서로 쉽고 또렷하면서 즐겁게 말을 골라서 쓸 적에 아름답지 않을까요?

 사실(事實) : 1.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
 실제(實際) : 사실의 경우나 형편
 참 : 1. 사실이나 이치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것
 어긋나다 : 기대에 맞지 아니하거나 일정한 기준에서 벗어나다

  “사실 그렇지 뭐”나 “사실이 뭐야?”처럼 ‘사실’을 꽤 흔히 씁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사실’을 살피면 ‘실제’라는 한자말로 가야 합니다. 다시 ‘실제’를 살피면 ‘사실’이라는 한자말로 갑니다. 이 또한 돌림풀이예요. 자, 그러면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사실’은 뭐고 ‘실제’는 뭘까요?

  두 한자말 사이에서는 실마리를 찾을 수 없으니 한국말을 생각해 봅니다. ‘참’이라는 낱말을 떠올리려 합니다. ‘참’을 찾아보니 “사실에 어긋남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고 풀이해요.

  뜻으로 살피니 ‘사실·실제’라는 한국말은 ‘참’하고 맞물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참 그렇지 뭐 ← 사실 그렇지 뭐”나 “참이 뭐야(참말 뭐야·뭐가 맞아·뭐가 참이야)? ← 사실이 뭐야?”처럼 쓰면 되는구나 하고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 참’이요 ‘실제 = 참’인 인 줄 알아챌 수 있어요.

 선수(先手) : 1. 남이 하기 전에 앞질러 하는 행동 2. 먼저 손찌검을 함
 먼저 : 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 앞선 때

  남이 하기 앞서, 그러니까 ‘먼저’ 할 적에 “선수를 치다” 같은 말을 씁니다. “먼저 선수를 치다”라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선수를 치다 = 먼저 손을 쓰다”예요. “먼저 선수 쳤을 때”라고 하면 겹말입니다. 입에 익고 손에 익고 귀에 익다 보니 겹말이더라도 그냥 쓰는 분이 있어요. 오랫동안 어느 말투에 익숙한 나머지 새롭게 생각을 가다듬어 새로운 말을 짓지 못하는 분이 있고요.

  “먼저 선수를 치다”가 겹말이로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데에서 그치지 말고 더 생각해 봐요. ‘선수’는 ‘앞손’이나 ‘먼젓손‘처럼 새말을 지어서 손질할 수 있어요. 앞손이 있으면 ‘뒷손’을 나란히 써 볼 수 있을 테고요. 그러면 ‘옆손’도 있을 테지요. ‘이웃돈·동무손’을 떠올릴 수 있어요. ‘도움손·사랑손·나눔손’ 같은 말도 구슬처럼 꿰어 볼 만해요. 여기에 또 어떤 손을 그리면 즐거울까요?

  어려운 말을 쓰려고 하면 외워야 합니다. 외워서 쓰는 어려운 말은 딱딱합니다. 딱딱한 말은 새로운 생각을 못 품습니다. 새로운 생각을 못 품으면서 마치 전문 지식인 듯 자리를 지키려 해요. 쉬운 말은 외우지 않습니다. 쉽게 쓰며 삶에 녹아들어요. 삶에 녹아드니 저절로 가지를 쳐서 새말을 짓는 생각으로 뻗어요. 새말을 즐겁게 짓다 보면 말·넋·삶이 모두 곱게 피어납니다. 쉬운 말을 쉽게 쓸 적에 아름다운 까닭이지요. 쉬운 말은 모든 새로운 생각을 지피는 바탕이에요. 2017.2.1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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