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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틀 박사 이야기 ㅣ 둘리틀 박사의 모험 1
휴 로프팅 지음, 장석봉 옮김 / 궁리 / 2017년 3월
평점 :
어린이책 읽는 삶 166
마음을 열면 상어하고도 얘기를 나눈다
― 둘리틀 박사 이야기
휴 로프팅 글·그림
장석봉 옮김
궁리 펴냄, 2017.3.10. 1만 원
삼월이 저물고 사월이 되면,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에서는 무엇을 느낄 만할까요? 달력 한 장을 바꾼다고 생각할까요? 사월이 저물고 오월이 되거나, 오월이 저물고 유월이 될 적에 대구나 인천처럼 커다란 도시에서는 무엇을 헤아릴 만할까요? 이때에도 그저 달력 한 장을 새로 넘긴다고 여길까요?
달이 바뀌어도 달력 종이만 넘길 적에는 숫자 말고 다른 것을 알기 어렵습니다. 달이 바뀔 적에 달력 종이를 굳이 안 넘기더라도 다른 곳을 가만히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를테면 달과 함께 날씨가 차츰 바뀌면서 새로 피고 지는 꽃을 눈여겨볼 수 있습니다. 새싹이나 겨울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겨우내 시든 풀줄기가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지며 새로운 흙이 되는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겨우내 뜸했던 새소리가 봄이 깊어지면서 새벽부터 두루 퍼지는구나 하고 알아챌 수 있고요.
“이렇게 오빠 멋대로 하다간, 최고의 고객들 중 누구도 오빠를 의사로 보지 않을 거예요.” “난 그 ‘최고의 고객’보다 동물이 더 좋은걸.” 박사가 말했다. (12쪽)
박사는 동물들도 자기들만의 말이 있어 서로 이야기를 한다는 걸 이렇게 해서 알게 되었다. 그날 저녁 내내 밖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앵무새) 폴리네시아는 부엌 탁자에 앉아 박사가 수첩에 받아 적을 수 있도록 새들의 말을 가르쳐 주었다. (17쪽)
휴 로프팅 님이 쓴 어린이문학 《둘리틀 박사 이야기》(궁리,2017)를 읽습니다. 휴 로프팅 님은 1886년에 태어나 1947년에 숨을 거두었고, 1920년대에 ‘둘리틀 박사’ 이야기를 썼어요. 모두 열두 권에 이르는 이야기를 썼다고 하며, 바야흐로 이 이야기를 모두 궁리출판사에서 새롭게 한국말로 옮긴다고 해요.
기나긴 이야기가 흐르는 ‘둘리틀 박사’ 삶인 셈인데요, 둘리틀 박사하고 얽혀 기나긴 이야기가 흐를 수 있는 바탕은 ‘말’입니다. 어떤 말인가 하면 사람 사이에서만 주고받는 말이 아닌 바로 ‘사람을 둘러싼 뭇짐승하고 나누는 말’이에요.
밖으로 나가도록 박사가 문을 열어 주자 쟁기질하는 말이 말했다. “박사님, 문제는 아무나 자기가 동물을 진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동물들이 불평을 못 한다는 이유만으로요. 사실 좋은 동물 의사가 되는 건 좋은 사람 의사가 되는 것보다 몇백 배 더 힘든 일인데 말이에요.” (18쪽)
“사람들이 날 아프게 해. 사람들은 자기들만 대단한 줄 알아. 세상이 시작된 지 천 년도 넘었겠지? 그런데도 사람들이 알아듣는 동물 말이라는 건 고작 개가 꼬리를 흔들면 ‘기분이 좋다’는 것뿐이야. 웃기지 않아?” (22쪽)
둘리틀 박사는 뭇짐승을 모두 아낍니다. 더 좋아하거나 덜 좋아하는 짐승이 없어요. 마을에서는 고슴도치도 싫어하고 악어도 싫어해요. 그렇지만 둘리틀 박사는 고슴도치도 악어도 모두 한결같이 아낍니다. 무서워하는 짐승이 없고, 꺼리는 짐승조차 없어요. 모든 짐승을 너른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하지요.
둘리틀 박사는 앵무새한테서 말을 배운다지요. 아마 둘리틀 박사는 맨 먼저 앵무새한테 마음을 열기에 앵무새가 들려주는 ‘앵무새 사이에 주고받는 말’을 배울 수 있었을 테고, 앵무새가 이끄는 대로 마음을 더 활짝 열기에 ‘앵무새를 비롯한 뭇짐승 말’까지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리라 느껴요.
“형님, 인간이란 정말 이상한 동물이로군요! 대체 누가 그런 땅에서 살고 싶어 할까요? 맙소사, 정말 형편없는 족속이로군요!” (73쪽)
“인간이란 정말이지 생각이라곤 하나도 없는 철부지 같은 족속이군. 멍청하긴! 그런 걸 좋아하다니. 제기랄, 그건 감옥이잖아.” (75쪽)
《둘리틀 박사 이야기》라는 어린이문학이 자그마치 백 해라는 나날이 가깝도록 사랑받는 힘이라면 이처럼 ‘마음을 열어 우리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자’고 하는 따스한 줄거리가 흐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돈을 번다든지 이름을 얻으려고 ‘뭇짐승 말을 배우는’ 둘리틀 박사가 아니에요. 둘리틀 박사는 오직 ‘사랑하는 뭇짐승을 더 깊이 아끼는 마음이 되려’는 뜻으로 온갖 말을 익혀요.
개한테 ‘개말’을 쓰지요. 잔나비한테 ‘잔나비말’을 써요. 제비한테 ‘제비말’을 쓰고, 소한테 ‘소말’을 써요.
마음을 닫지 않고 열기에 새로운 말을 배웁니다. 새로운 말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맞아들입니다. 생각을 가두지 않고 활짝 열기에 즐거이 새로운 길(모험)로 나섭니다. 두렵거나 무섭다는 생각이 아닌, 즐겁고 새롭게 배운다고 하는 몸짓이에요.
제비 한 마리나 두 마리는 힘이 그리 세지 않다. 하지만 제비도 엄청난 수가 모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배에 동여맨 끈이 천 가닥이 넘었고, 그 끈 하나마다 2천 마리의 제비들이 달라붙어 배를 끌었다. (104쪽)
박사가 말했다. “그래, 그만둬야 해. 넌 이미 배를 충분히 오래 탔어. 멋진 배들과 좋은 사람들을 수도 없이 물에 빠뜨렸고. 남은 인생은 착한 농부로 살아야 해. 상어가 기다리고 있어. 시간을 너무 뺐지 말라구. 마음을 정해.” (116∼117쪽)
바다에서 해적한테 된통 시달린 둘리틀 박사입니다만, 둘리틀 박사는 ‘상어가 둘리틀 박사를 도와서 해적을 잡아먹어도 되겠느냐’ 하고 물을 적에 상어를 말려요. 이러면서 해적한테 말하지요. ‘그대를 상어가 잡아먹지 못하게 막아 줄 테니, 이제는 해적질을 그만두고 섬에 가서 농사꾼이 되게나’ 하고 말이지요.
해적질을 그치고 흙살림으로 바꾸다 보면 저절로 흙한테서 배우고, 풀이랑 나무랑 바람한테서 배울 것이 있다고 넌지시 알려주는 셈이에요. 스스로 다스리고 스스로 갈고닦으며 스스로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누어 주지요.
제비가 돕고 상어가 돕습니다. 제비를 부르고 상어를 부릅니다. 제비하고 동무요 상어하고도 벗이에요. 마음을 열 수 있다면 누구하고라도 동무가 되어요. 마음을 활짝 열기에 참말 누구하고도 벗님으로 지내요.
우리가 삼월에서 사월로 접어들거나 사월에서 오월로 접어들어도 날씨나 철이 바뀌는 흐름을 제대로 못 느낀다면, 아직 마음을 제대로 열지 못한 탓이지 싶어요. 바람결을 느끼고 구름하고 풀을 살피며 벌나비 날갯짓을 가만히 살필 수 있다면, 이 같은 숲바람에 마음을 활짝 열어 몸을 맡길 수 있다면, 우리는 둘리틀 박사마냥 ‘사람 사이 말’을 넘어서 ‘한결 깊고 너른 숲말’을 누구라도 배울 만하지 싶습니다. 평화롭고 자유로우면서 사랑스럽게. 2017.4.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