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자전거 11
미야오 가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95



자전거를 달리면 누구나 ‘바람이 되’어요

― 내 마음속의 자전거 11

 미야오 가쿠 글·그림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4.9.25.



  한국에서 나온 자전거 만화는 퍽 드뭅니다. 자전거를 다룬 만화 가운데 ‘더 빨리 달리는 자전거’ 이야기는 더러 있습니다만, ‘누구나 마을에서 즐겁게 타는 자전거’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조차 없어요. 이 가운데 《내 마음속의 자전거》는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그런데 2006년에 13권이 한국말로 나온 뒤 이제껏 뒤엣권은 더 나오지 않습니다. 설마 ‘일본 만화책’이 13권에서 끊어졌을까요?



“아저씨, 제 자전거 돌려주세요!” “아아, 지금 바퀴살 갈고 있으니까, 좀만 더 기다리렴.” “그런 거 한두 개쯤 나가도 상관없어요! 전 지금 가야 돼요!” “안 돼. 지금 널 이 자전거에 태울 순 없다.” (14∼15쪽)


“그 32개의 살이 서로 엇갈려, 좌우로 당기면서 바퀴의 밸런스를 유지해 주고 있는 거야. 하나라도 부러지면 잡아당기는 밸런스가 무너져, 처음엔 미비하지만 나중엔 크게 요동치다가, 완전히 망가지게 돼. 단 한 개도 쓸데없는 바퀴살이란 없단다.” (21쪽)



  2006년 언저리에는 이 만화책이 일본에서 더 나왔는지, 아니면 더는 안 나오는지 찾아볼 생각을 못 했습니다. 요즈음 들어 문득 매우 궁금해서 일본 아마존을 살펴보았어요. 그랬더니 《내 마음속의 자전거》라는 이름으로 옮긴 ‘竝木橋通りアオバ轉車店(미나키바시 마을 아오바 자전거집’은 20권으로 마무리를 짓고, 그 뒤에 ‘アオバ轉車店’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20권이 더 나왔다고 해요. 그러니까 모두 40권에 이르는 자전거 이야기가 만화책으로 나온 셈입니다.


  한국말로 나오지 못한 서른일곱 권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한국에서는 ‘생활 자전거’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은 아직 팔리거나 읽히기 힘들기에, 그동안 열세 권이 한국말로 나왔으니 이 대목에서 고맙게 여겨야 할 노릇일까요.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꽤 많고, 자전거 동아리에 들어가서 자전거를 즐기는 분이 무척 많은데, 자전거를 이야기하는 만화책에서는 느끼거나 배우거나 돌아볼 만한 대목이 없을까요.



“저번부터 보자 보자 하니까, 딴청 부리고 대충 운전하다 쾅쾅 부딪치면 자전거가 너무 불쌍하잖아.” (33쪽)


“휴대폰 없는 난, 날개 꺾인 새나 마찬가지인걸. 아무 데도 날아갈 수 없어.” “날개라면, 아직 남아 있잖아. 여기! 26인치짜리 커다란 날개가!” (34∼35쪽)



  아이들하고 《내 마음속의 자전거》를 함께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이 만화책에서는 모든 일을 자전거를 한복판에 놓고 생각합니다. 자전거집(아오바 자전거집) 딸아이는 열한째 권에서 초등학교에 갓 들어가는 나이입니다. 열한째 권 마지막 이야기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이에 앞서는 일곱 살이에요. 일곱 살 아이는 여느 어른 못지않게 자전거를 만질 줄 알아요.


  길을 가며 만나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함부로 다루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일곱 살 아이는 “자전거가 너무 불쌍하잖아” 하고 얘기해요. 그리고 “자전거라는 커다란 날개”를 알려주면서, 이 자전거를 믿고 씩씩하게 달려 보라고 북돋우기도 합니다.



“로드레이서는 굉장히 빨리 달리는 물건이에요. 빨리 달릴 수 있단 말은 곧 빠른 물건에 ‘목숨을 맡긴다’는 뜻이죠. 빨리 달리고 빨리 꺾고 빨리 멈춘다. 그러려면 견고한 프레임, 바퀴, 브레이크를 꼭 갖춰야 합니다.” (61쪽)


“서부고에는 오오바뿐만 아니라 ‘바람이 되고 싶다’고 여기는 애들이 또 있을 거예요. 하지만 시대착오적이라 해도 교칙은 교칙. 그러니 교칙을 지키면서 ‘바람이 될 수 있는 자전거’를 우리 집에서 만들어 봅시다.” (67쪽)



  만화책 《내 마음속의 자전거》에도 ‘빨리 달리는 자전거’라든지 ‘산을 타는 자전거’가 나옵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자전거는 모두 ‘여느 사람들이 여느 마을에서 복닥거리는 삶자리’로 녹아듭니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자전거 만화책입니다. 더 멋지게 달려야 한다고도 이야기하지 않는 자전거 만화책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달려야 할까요? 바람처럼 즐겁게 달리자고 이야기를 건네는 만화책입니다. 때로는 바람처럼 싱싱 달릴 수 있으나, 바람은 여느 때에는 가볍고 싱그러우면서 맑게 불어요. 바람이 날마다 싱싱 분다면 사람들은 못 견딜 테지요. 바람은 가끔 싱싱 불 뿐, 여느 때에는 온누리 골골샅샅 부드러이 감싸 줍니다.


  곧 우리가 즐기는 자전거도 이러한 바람과 같아서, 여느 때에는 여느 마을에서 여느 자전거로 즐겁게 달리면서 서로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삶을 북돋우고 살림을 살찌우는 자전거라고 할 만해요.



“쿠로이, 네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는 키쿠의 죽은 남동생 거란다. 어릴 때부터 심장병 때문에 병원을 들락거리던 그 애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키쿠가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사 준 거야. 하지만 그 동생은 한 번도 타 보지 못한 채 10살 때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지. 쿠로이, 키쿠도 부모가 없는 이 고아원 애였단다.” (109쪽)



  자전거 하나를 둘러싸고 온갖 사람이 수많은 이야기를 지핍니다. 자전거에 깃든 애틋한 슬픔을 오늘 새롭게 만나는 이웃 아이들하고 다독이면서 기쁨으로 끌어올립니다. 사랑 한 줄기를 자전거에 싣고, 이 사랑 한 줄기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마음에 곱게 스밉니다.


  자전거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두루 아낄 줄 아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자전거뿐 아니라 우리 둘레를 널리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자전거이며 모든 살림이며 저마다 아름다운 숨결이라는 대목을 건드립니다.



“괴, 굉장하군요. 이렇게 작은 부품인데, 그런 것까지 생각해 만들어졌다니.” “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은 아닙니다. 20년 동안 착실하게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결과예요.” (160쪽)


“코사카 선생님같이 훌륭한 도예가 분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더없는 영광이네요. 하지만 아마 애 아빠에게도 할아버님께도 ‘작품’을 만들고 있단 생각은 없을 거예요.” (183∼184쪽)



  만화책 《내 마음속의 자전거》에는 전문용어가 흐르지 않습니다. 아오바 자전거집 아저씨는 어느 모로 본다면 전문가일 수 있지만, 자전거집 아저씨나 아주머니는 스스로 전문가처럼 굴지 않습니다. 자전거집 딸도 전문가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자전거집 할아버지도 이와 같아요. 네 사람은 ‘즐거운 자전거’를 그립니다.


  이리하여 이 만화책 한국판에 붙은 이름 그대로 “내 마음속”으로 스며는 자전거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새로 태어나는 자전거입니다. 내 마음속에 사랑을 들려주는 자전거예요. 내 마음속에 기쁨을 베푸는 자전거이지요. 내 마음속에 따사로운 꿈을 일깨우는 자전거예요.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들이 만드는 물건은 작품이 아닌가요?” “작품? 천만에요. 저희가 만드는 건 타기 편한, 도구랍니다.” (204쪽)



  열셋째 권에서 한국말 번역이 멈춘 지 열 몇 해가 흐릅니다. 열넷째 권도, 스무째 권도, 그리고 스무째 권 뒤로 이어지는 새로운 스무 권도 한국말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전거를 ‘전문 영역’이 아닌 ‘여느 살림자리에서 누리는 살림살이’로 바라보도록 이끄는 이쁘장한 만화책을 한국에서 널리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어른뿐 아니라, 자전거를 이제 막 배우면서 달리려는 아이들한테 《내 마음속의 자전거》라는 만화책은 둘도 없이 뜻있고 재미난 이야깃거리요 스승이요 길동무가 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혼자 자전거를 달릴 적에도, 짐받이에 앉을 자리를 마련해서 한 사람을 앉히고 달릴 적에도 우리는 바람이 됩니다. 자전거에 수레를 붙이거나 샛자전거를 달아서 아이들하고 함께 달릴 적에도 우리는 바람이 되어요. 저마다 다르면서 고운 바람이 됩니다. 가슴을 활짝 펴고 노래하는 시원한 바람이 될 수 있습니다. 2017.3.2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만화비평/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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