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찬히 살펴 수수한 멋을 살리는 말
[국어사전 돌림풀이 벗기기 6] 소탈·솔직·수수·털털, 아픔·괴로움·고통, 세밀·자세·꼼꼼·찬찬


꾸미기하고 가꾸기는 다릅니다. ‘꾸미기(꾸미다)’는 겉을 매만져서 보기 좋게 하는 몸짓을 가리킵니다. ‘가꾸기(가꾸다)’는 속이나 겉 모두 잘 보살피는 몸짓을 가리킵니다. 논밭을 ‘가꾼다’고 합니다. 논밭을 가꾸기에 밥을 얻습니다. 논밭을 ‘꾸민다’고 하지 않아요. 그러나 꽃밭은 꾸밀 수 있겠지요. 다만 ‘꽃밭 꾸미기’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예쁘기를 바라면서 겉으로 매만지는 손길입니다. 다른 사람 눈을 쳐다보지 않으면서 꽃밭을 곱고 알차게 매만지는 손길일 적에는 ‘꽃밭 가꾸기’입니다.

꾸며서 하는 말이란 ‘거짓을 숨기면서 마치 참인 듯’ 하는 말입니다. 가꾸면서 하는 말이란 무엇일까요? 마음을 북돋우고 생각을 살찌우면서 서로 어깨동무하는 숨결로 하는 말일 적에 ‘가꾸면서 하는 말’이 됩니다.

스스로 말을 가꾸기에 생각이 자라고 마음이 넉넉해요. 스스로 말을 꾸미기에 어려운 말씨나 번역 말씨가 불거지거나 섣불리 외국말을 아무 자리에나 끼워넣으며 지식자랑이 되기 일쑤예요.

꾸미지 않는 모습을 가리키는 한자말 둘하고 한국말 둘을 살펴보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소탈하다(疏脫-) : 예절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수수하고 털털하다
솔직하다(率直-) :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
수수하다 : 사람의 성질이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까다롭지 않아 수월하고 무던하다
털털하다 : 사람의 성격이나 하는 짓 따위가 까다롭지 아니하고 소탈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소탈하다(疏脫-) : (사람이나 그 성격, 차림새 따위가) 예절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수수하고 털털하다
솔직하다(率直-) : (사람이나 그 태도가)거짓이나 꾸밈이 없고 바르다
수수하다 : 1. (생김새나 차림 따위가) 그리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어지간하다 2. (사람이나 그 성격이)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까다롭지 않아 수월하고 무던하다
털털하다 : (사람이나 그 성격, 생김새가) 까다롭지 아니하고 소탈하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소탈하다(疏脫-) : 틀을 차리거나 격식에 매임이 없이 소박하고 수수하다
솔직하다(率直-) :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
수수하다 : 1.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평범하다 2. 소박하고 수더분하다
털털하다 : 1. (성격이나 행동이) 까다롭거나 간사하거나 퉁명스럽지 않고 텁텁하고 시원스럽다 2. 사치하거나 요란스럽지 않고 수수하다

남녘 한국말사전은 ‘소탈하다’를 “수수하고 털털하다”로 풀이합니다. 북녘 한국말사전은 ‘소탈하다’를 “소박하고 수수하다”로 풀이합니다. 그런데 ‘소박하다(素朴-)’는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수수하다”를 뜻한다지요? 세 가지 한국말사전 모두 겹말풀이에 돌림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들여다보면 ‘수수하다’는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모습을 가리킨다 하지요. 이는 한자말 ‘솔직하다’하고 맞물리는 말풀이입니다. ‘털털하다’는 ‘소탈하다’로 풀이하니 엉성하고요.

‘소탈·솔직’이나 ‘소박’ 같은 한자말을 쓰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말풀이는 제대로 건사해야지 싶습니다. 뜻풀이를 짧게 가다듬고서 한국말로 어떻게 쓰는가를 밝히는 얼거리로 손질해 봅니다. 이러면서 ‘수수하다·털털하다’가 돌림풀이가 안 되도록 차근차근 손봅니다.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소탈하다(疏脫-) : 틀에 안 매이다. → 수수하다. 털털하다
솔직하다(率直-) : 꾸밈이 없다. → 꾸밈없다. 수수하다
수수하다 : 1. 도드라지지도 않고 뒤떨어지지도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조용히 어울리다 2. 꾸밈이나 거짓이 없어 조용하고 부드럽다 3. 어느 것이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면서 쓸 만하다
털털하다 : 1. (마음결이) 까다롭거나 무뚝뚝하거나 약지 않고 시원스럽다 2. (모습이) 꾸미거나 어지럽지 않아 조용하다

‘수수하다’는 뜻풀이를 잘게 나눌 수 있습니다. ‘수수하다’에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할 만하지만 “조용히 어울리다”나 “쓸 만하다” 같은 뜻을 보탤 수 있습니다. “수수한 멋”이나 “수수한 맛”을 헤아려 보면 ‘수수하다’가 우리 삶에 어떻게 깃드는 낱말인지 헤아릴 만해요.

‘털털하다’는 마음결이나 모습을 놓고 말풀이를 가를 수 있어요. 시원스러운 몸짓이나 마음결이기에 누구하고나 잘 어울리고 받아들입니다. “수수한 옷차림”은 있는 그대로 차린 조용한 모습이라면, “털털한 옷차림”은 다른 사람 눈치를 따질 까닭이 없기에 꾸미거나 일부러 드러낼 일이 없이 차린 조용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아픔 :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괴로운 느낌
괴로움 :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상태
고통(苦痛) :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아픔 :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괴로운 느낌이나 상태
괴로움 : 몸이나 마음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불편하거나 고통스러운 상태
고통(苦痛) : 몸이나 마음의 아픔이나 괴로움

(북녘 조선말대사전)
아픔 : 아픈 느낌이나 상태
아프다 : 1. 몸의 일정한 부위에 자극을 받거나 이상이 생겨 괴로운 느낌이 있다 2. 몸에 병적증상이 생겨 참기 어려운 느낌이 있다 3. (정신적으로) 쓰리고 괴롭다
괴로움 : 괴로운 상태나 그러한 느낌
괴롭다 : (몸이나 마음이) 참아내거나 견디여내기 어려울만큼 불편하고 언짢다
고통(苦痛) :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

북녘 사전은 ‘아픔·괴로움’을 찬찬히 풀이합니다. 그러나 북녘 사전은 ‘아프다’를 ‘괴롭다’로 풀이하고 말지요. 남녘 사전은 ‘아픔’을 ‘괴로움’으로 풀이하고, ‘괴로움’은 ‘고통’으로 풀이하는데, ‘고통’은 ‘괴로움·아픔’으로 풀이해요. 이 대목은 북녘 사전도 같습니다.

‘고통’은 ‘괴로움 + 아픔’일까요? ‘괴로움(괴롭다)’하고 ‘아픔(아프다)’을 뒤죽박죽으로 풀이하고서 한자말 ‘고통’에 뭉뚱그려도 될까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아픔 : 1. 다치거나 맞거나 찔리거나 부딪혀서 이를 참거나 견디기 어려움 2. 어찌해야 할는지 모르도록 마음이 슬프거나 무거움. 이러면서 힘이 많이 드는 모습
괴로움 : 1. 느긋하거나 홀가분하지 못하면서 무엇을 하지 못하겠다고 느낌 2. 힘이 많이 들거나 하기에 어려움 3. 어떤 일을 못 하게 해서 마음이 자꾸 쓰임
고통(苦痛) : → 괴로움. 아픔

참거나 견디기 어려운 마음이나 몸이 된다고 느끼기에 ‘아픔(아프다)’이라고 봅니다. 마음이나 몸이 눌리거나 힘이 들어서 하기 어렵다고 느끼기에 ‘괴로움(괴롭다)’이라고 봅니다. 하지 못하기에 힘이 들어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자말 ‘고통’은 어느 때에는 ‘괴로움’을 나타내고 어느 때에는 ‘아픔’을 나타내겠지요. ‘고통’으로 뭉뚱그리기보다는 한국말로 알맞게 쓰도록 이끌어 주어야지 싶어요.

한국말사전은 ‘아프다·괴롭다’를 제대로 갈라서 다루어야 합니다. 이밖에 ‘앓다·아리다·쓰리다·쓰라리다’ 같은 여러 비슷한말을 한데 묶어서 느낌이나 결이나 뜻이 어떻게 다른가를 짚어 주는 구실을 해야 할 테고요.

(표준국어대사전)
세밀하다(細密-) : 자세하고 꼼꼼함
자세하다(仔細/子細-) : 1. 사소한 부분까지 아주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2. 성질 따위가 꼼꼼하고 세심하다
꼼꼼하다 : 빈틈이 없이 차분하고 조심스럽다
찬찬하다 : 1. 성질이나 솜씨, 행동 따위가 꼼꼼하고 자상하다 2. 동작이나 태도가 급하지 않고 느릿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세밀하다(細密-) : 자세하고 빈틈없이 꼼꼼하다
자세하다(仔細/子細-) : 1. (내용이나 설명이) 사소한 부분까지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2. (태도나 성질이) 꼼꼼하고 찬찬하다
꼼꼼하다 : (사람이나 그 성격, 일처리가) 매우 차근차근하고 자세하여 빈틈이 없다
찬찬하다 : 1. (성질이나 태도가) 꼼꼼하고 차분하다 2. (동작이) 들뜨지 않아 가만가만하고 차분하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세밀하다(細密-) : 자세하고 꼼꼼하다
자세하다(仔細/子細-) : 1. 사소한 부분까지 아주 구체적이다 2. (성질이) 꼼꼼하고 찬찬하다
꼼꼼하다 : (성격이나 하는 행동이) 빈틈이 없게 자세하고 찬찬하다
찬찬하다 : 1. (거칠거나 경솔하지 않고) 자세하고 차근차근하다 2. (동작이 급하지 않고) 침착하며 느리다

말을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말이 아닙니다. 생각을 찬찬히 가다듬어서 쓸 말입니다. 알맞은 자리에 알맞게 쓸 말입니다. 말뜻이나 말결이나 말씨를 꼼꼼하게 가누면서 쓸 말입니다.

한국말로는 ‘찬찬하다·꼼꼼하다’일 텐데, 이를 한자말로는 ‘세밀하다·자세하다’로 나타내기도 해요. 남북녘 사전을 살펴봅니다. 어느 사전이든 뒤죽박죽 돌림풀이에 겹말풀이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한국말을 슬기롭게 가다듬거나 가누지 못한 채 한자말을 너무 엉성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한자말을 받아들여 쓰더라도 슬기롭고 알맞게 받아들여서 써야 할 텐데, 뒤죽박죽으로 쓰고 말았어요. 이러다 보니 겹말이 생기고 군더더기 같은 말씨마저 늘어납니다.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세밀하다(細密-) : 작은 데까지 살피면서 또렷하다. → 꼼꼼하다. 찬찬하다
자세하다(仔細/子細-) : 작은 데까지 또렷하다. → 꼼꼼하다. 찬찬하다
꼼꼼하다 : 1. 빈틈이 없이 작은 데까지 또렷하다 2. 작은 데까지 잘 살피면서 차분하고 따스하다
찬찬하다 : 1. 마음씨·솜씨·몸짓이 작은 데까지 빈틈이 없고 따스하다(거칠거나 가볍지 않고 차례에 따라 알맞게 하는 모습) 2.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면서 살짝 느리다


‘세밀하다·자세하다’ 같은 낱말을 쓰려 한다면 알맞게 제대로 바르게 똑바로 쓸 노릇입니다. 곰곰이 생각을 기울일 수 있다면 ‘세밀·자세’가 쓰이는 자리를 한국말로 한결 쉬우며 부드러이 풀어낼 만합니다. 이러면서 ‘꼼꼼하다·찬찬하다’가 돌림풀이로 맞물리지 않도록 가다듬어 줍니다.

그야말로 찬찬히 살펴서 쓸 말입니다. 참으로 꼼꼼하게 가누어서 쓸 말이에요. 작은 곳까지 알뜰히 살필 적에 말을 비롯해서 생각을 살립니다. 작은 자리에도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일 적에 말뿐 아니라 삶도 곱게 살릴 만합니다.
 2017.2.1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