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모하는 서울 - 1960~1980년대 한치규 사진집 2
한치규 지음 / 눈빛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책 읽기 349



신호등 없던 이쁜 서울을 그린다

― 변모하는 서울

 한치규 사진

 눈빛 펴냄, 2016.2.25. 3만 원



  직업군인이던 한치규 님은 군부대에 머물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한치규 님은 직업군인이면서 사진을 무척 좋아했어요. 사병이 아닌 장교였던 터라 군부대에서도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며 군부대 언저리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습니다. 군부대에서 휴가를 받아 서울에 있는 집으로 돌아올 적에는 서울 시내를 사진으로 담고, 이녁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았다고 해요. 이리하여 1960년대부터 한치규 님이 찍은 사진은 《한씨네 삼남매》라는 이름으로, 또 《분단 이후》라는 이름을 붙여 사진책으로 태어납니다. 《변모하는 서울》(눈빛,2016)은 군부대와 집 사이를 오가는 길에 틈틈이 바라본 서울 시내를 아스라이 보여줍니다.


  사진책 《변모하는 서울》은 1960년대를 지나고 1970년대를 가로질러 1980년대에 닿는 서울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울 시내에 꾸준히 있으면서 지켜본 서울은 아닙니다. 군부대와 서울 사이를 가끔 오가는 길에 살펴본 서울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늘 서울에 머물거나 있던 사람은 ‘서울이 달라지는구나’ 하고 미처 못 느낄 수 있어요. 때로는 ‘이렇게 바뀌는구나’ 하고 느끼더라도 미처 사진으로 못 담을 수 있습니다.


  한치규 님은 군인이라는 몸으로 군부대하고 서울을 오가는 길이었기에 ‘서울이 달라지는구나’를 여느 서울사람보다 살갗으로 알아챕니다. 그리고 짧은 휴가 동안 사진으로 찍어야 하니 ‘이렇게 바뀌는 흐름을 바지런히 찍어야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고작 1960∼70년대인데, 이무렵 서울 시내를 보면 신호등이 잘 안 보입니다. 꽤 넓은 길인데 자동차하고 사람이 알맞게 섞입니다. 아직 전차가 다니는 모습도 사진으로 엿볼 만합니다.


  사진책 《변모하는 서울》을 보다가 문득 이 대목을 눈여겨보아야겠다고 느낍니다. 한국도 1960년대가 저물 무렵까지, 때로는 1970년대로 접어든 뒤에도, 서울 시내에 ‘신호등·건널목’이 없던 곳이 많았구나 싶어요. 오늘날 2010년대에는 서울 시내 어디에나 신호등하고 건널목이 많습니다만, 신호등하고 건널목이 많아도 교통사고가 잦아요. 지난날이라고 해서 교통사고가 드물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만, 길이 ‘오직 찻길’이 아니라 ‘사람하고 차가 섞일 수 있는 길’이라면 사뭇 다르리라 느껴요.


  사람하고 차가 길에 함께 있다면 차는 아무래도 빠르기를 줄여야 해요. 함부로 빨리 달려서는 안 되지요. 사람하고 차가 함께 있기에 차는 한결 느긋할 만합니다. 너른 길을 사람들이 홀가분하게 건널 수 있기에 시내는 아주 많이 시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차 많은 길하고 차 없는 길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자동차가 다니지 않을 뿐이라 하지만, 차 없는 길은 대단히 조용합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여름이나 가을에는 서울 시내에서도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이와 달리 차 많은 길에서는 풀벌레 노랫소리는커녕 사람 말소리도 알아듣기 어렵지요. 자동차가 한 대만 지나가더라도 ‘걷는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가 끊어지기 일쑤예요.


  서울 광화문 앞에 모이고, 경복궁 앞에 모이며, 시청 앞에 모인 사람들이 우렁차게 내는 소리가 서울을 오랫동안 뒤덮었습니다. 작은 사람들이 드넓은 찻길을 차지하면서 손에 쥔 촛불 한 자루로 어둠을 환하게 밝히기도 했습니다.


  길이란 자동차만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길에는 사람이 지나갑니다. 우리가 걷고, 우리가 가게를 내고, 우리가 보금자리를 이루고, 우리가 마을을 가꾸고, 우리가 삶을 짓는 길 한켠입니다.


  사진책 《변모하는 서울》에서는 대단히 꿈틀거리거나 용솟음치는 그런 서울을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책에 깃든 조용하며 아늑하고 따사로운 서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높은 건물과 자동차와 드넓은 찻길을 뽐내는 서울이 아니라, 작고 수수한 사람들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거이 짓는 살림으로 이쁘장한 서울을 돌아볼 수 있어요.


  이 나라 서울이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이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골골샅샅 모든 고장과 마을이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이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우지끈 뚝딱 허물거나 세우는 도시나 시골이 아닌, 따뜻한 사람들이 따뜻한 손길로 차근차근 일구어 빛내는 어여쁜 마을이 된다면 참으로 좋겠어요. 보퉁이를 인, 아기를 업은, 가벼운 고무신 차림으로 걷는 아지매 손이 이 나라를 튼튼히 살찌웠습니다. 2017.3.1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출판사에서 보내 주셔서 고맙게 올립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