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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동물은 왜 사라졌을까? - 우리나라 멸종 동물 22종 이야기 ㅣ 철수와영희 어린이 교양 2
이주희 지음, 강병호 그림 / 철수와영희 / 2017년 3월
평점 :
숲책 읽기 118
‘세계에 딱 하나만 살아남’은 고흥 좀수수치
― 야생 동물은 왜 사라졌을까?
이주희 글
강병호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7.3.3. 13000원
한국에서 범은 처음부터 깊은 숲이나 멧골에서 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조선 무렵부터 나라에서 범사냥에 앞장서고 논밭을 늘리려 하면서 범은 사람한테 쫓겨 깊은 숲이나 멧골로 숨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읽고서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겠지요. 깊은 숲이나 멧골에서는 제아무리 범이라 하더라도 수풀을 헤치며 다른 짐승을 사냥하기에 수월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냇가처럼 제법 넓게 트인 자리가 있어야 범처럼 커다란 짐승이 펄쩍 뛰어오르면서 다른 짐승을 사냥하기에 수월하겠지요.
한국에서 범은 일제강점기에 씨가 말랐어요. 그러나 조선 끝무렵에 범은 어느새 100마리 즈음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경주에서 마지막 범이 잡혔다고 합니다만, 이에 앞서 한국사람 스스로 범을 수도 없이 잡아대었다고 해요. 고려가 저물고 조선이 새로 서면서 경국대전이라는 법에서까지 해마다 범을 1000마리는 잡아야 한다고 밝혔고, 범을 잡는 공공기관까지 세웠다는군요.
삼국 시대나 고려까지만 해도 불교가 나라의 종교라서 살생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 동물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어. 그래서 호환이 생겨도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호랑이를 잡으려 하지 않았어. 불교에서는 사람의 영혼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잖아. 동물들이 죽은 뒤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다른 동물로도 태어날 수 있다는 거지 … 조선의 지도자들은 호랑이와 표범 같은 맹수를 해로운 동물이라고 생각했어. 조선을 건국하자마자 나라에서 앞장서서 대대적으로 범을 잡기 시작했어 … 범은 점차 물가에서 쫓겨나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야 했어. 호랑이가 깊은 산에 산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 건 이 때문이야. (16∼17쪽)
이주희 님이 쓴 《야생 동물은 왜 사라졌을까?》(철수와영희,2017)는 한국에서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만한 스물두 가지 목숨붙이 이야기를 다룹니다. ‘호랑이와 표범’, ‘곰과 여우’, ‘수달과 담비’, ‘꽃사슴과 산양’, ‘물범과 물개’, ‘수리부엉이와 독수리’, ‘따오기와 뜸부기’, ‘구렁이와 남생이’, ‘맹꽁이와 금개구리’, ‘꾸구리와 좀수수치’, ‘소똥구리와 장수하늘소’ 이렇게 두 가지씩 묶어서 왜 사라졌거나 사라지려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스물두 가지 목숨붙이를 다루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제 눈에 도드라지게 보입니다. 전남 고흥에서 사는 ‘세계에 딱 하나만 있다’고 하는 좀수수치입니다. 제가 바로 이 전남 고흥에서 살거든요.
좀수수치는 미꾸리를 닮은 나룻이 있는 작은 민물고기로, 1995년에 학계를 거쳐 처음 알려졌다고 해요. 1995년이면 전남 고흥은 아직 ‘나로 우주센터’를 짓기 앞서예요. 벌교에서 고흥으로 들어오는 네찻길이 안 뚫리던 무렵입니다. 그러나 그 뒤 고흥은 나로 우주센터를 짓기로 했고, 벌교에서 고흥읍을 거쳐 녹동과 나로로 이어지는 넓은 찻길을 새로 닦습니다. 2000년대를 지나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온 나라에 ‘4대강 막삽질’이 이루어졌는데, 이때 고흥이라고 하는 작은 고장에서는 ‘하천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냇물이나 골짜기를 삽차로 파헤쳐서 시멘트를 들이붓는 일이 벌어졌어요. 이 시멘트 막삽질은 2017년 요즈음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우리나라에는 여우가 한 종류만 살아서 반달가슴곰을 그냥 ‘곰’으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붉은여우를 그냥 ‘여우’라고 불러 왔어. (28쪽)
곰을 복원하고 있는 지리산에서는 곰 때문에 농작물 피해를 입거나 양봉하는 벌통이 훼손되는 일로 농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지. 그렇다면 곰을 아예 없애버리는 게 나을까? 너희라면 어떻게 하겠니? (32쪽)
범이 사라지고 늑대가 사라지며 여우가 사라진 이 나라 들이나 숲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범이나 늑대나 여우한테 잡아먹히던 작은 짐승이 들끓습니다. 숲에는 먹이사슬이 있기에, 이 먹이사슬에 맞추어 서로 알맞게 어우러져요. 이 먹이사슬 얼거리와 숲 얼거리를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깨고 말았습니다. 기껏해야 백 해쯤 되는 짧은 나날에 이 얼거리를 조각조각 깨었어요. 게다가 이처럼 먹이사슬과 숲 얼거리를 깨는 흐름은 아직도 이어집니다.
새로운 고속도로나 골프장이나 큰 발전소는 아직도 더 늘어나려 합니다. 새로운 군부대나 군사기지에 미사일기지까지 더 늘어나려 합니다. 도시는 자꾸 커지기만 합니다. 줄어드는 시골에는 도시에 들이지 않는 위험·위해시설이나 큰 화력발전소를 세우려고 합니다. 이 나라 어느 곳이든 깨끗하거나 조용하거나 정갈하거나 아름답게 지키려는 몸짓이 자꾸 수그러들어요. 그나마 설악산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놓이는 일은 막았다지만, 국립공원에조차 케이블카를 놓으려는 ‘개발 이익 본능’은 잠들지 않아요. 지난 2016년에 태백산도 국립공원으로 되었는데, 앞으로는 국립공원이 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지켜지기 어려울는지 몰라요.
최근에 연구자들이 조사해 보니까 우리나라에 사는 담비들이 1년 동안 멧돼지 1만 마리, 고라니 1만 마리 정도를 잡아먹는다는 거야. 이쯤이면 생태계 조절 능력이 호랑이나 표범에 버금간다고 볼 수 있지. (42쪽)
수달은 물가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굴이나 수풀에다 보금자리를 만들어 새끼를 기르는데, 하천 환경이 변하면서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없어져 버린 거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생태 하천을 만든다고 하면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깔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온갖 시설들을 설치하는데, 그런 곳은 이름만 생태일 뿐 생태와 거리가 멀어. (45쪽)
수많은 목숨붙이가 죽거나 사라지는 까닭을 살피면 막개발을 첫손으로 꼽을 만한데, 이에 못지않게 ‘농약’이 큰 말썽거리입니다. 여기에 ‘비닐’하고 ‘플라스틱’을 손꼽을 만해요. 크고 작은 짐승과 새와 물뭍짐승이 농약에 시달리다가 죽거나 사라집니다. 숱한 짐승과 새와 물뭍짐승에다가 물고기가 비닐하고 플라스틱 때문에 목숨을 잃습니다. 태평양 어느 곳에 끔찍한 ‘비닐·플라스틱 섬’이 있다지요?
여기에서 찬찬히 짚어야 하는데, 농약이나 비닐이나 플라스틱은 짐승이나 새나 물뭍짐승이나 물고기만 죽이지 않아요. 사람도 죽여요. 뒤늦게 친환경이나 유기농이나 무농약이나 자연농이라는 말이 불거지면서 농사법이 달라지려는 까닭도 ‘농약에 찌든 먹을거리’는 사람한테까지 매우 나쁘기 때문입니다.
우리 밥상에 비닐이나 플라스틱이 올라오면 어찌 될까요? 우리는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못 먹습니다. 잘못해서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삼켰다가는 큰일이 나요. 그렇지만 고추밭이나 마늘밭을 비닐로 드넓게 씌우고 말아요. 한겨울에 비닐집을 크게 지어 딸기를 석유를 때며 키워요. 우리 스스로 제철을 잃고 ‘돈 될 농업’에 기울어지면서 그만 ‘들짐승이 한국에서 사라지도록 내모는 짓’뿐 아니라 ‘사람 스스로 앓거나 다치거나 아프는 길’로 가고 말아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만 흔하고 세계적으로 보면 고라니는 매우 귀한 동물이야. (56쪽)
생각해 봐! 국립공원이고 천연기념물이며 생태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높다고 세계가 인정한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버젓이 설치할 수 있다면, 그렇지 않은 다른 곳에 케이블카나 이와 비슷한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니! (63쪽)
고라니는 한국에서만 흔해 보일 뿐, 다른 나라에서는 매우 드문 짐승이라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져서 ‘아끼며 지키는 짐승’인 고라니라지만, 한국에서는 총으로 쏘아죽이거나 그물로 사로잡아 죽이려 해요.
사람들은 도시에서 비둘기를 닭둘기라는 이름으로 놀리지만, 비둘기는 사람 때문에 보금자리와 숲을 빼앗겼어요. 아스라히 먼 옛날까지 아니어도 고작 백 해 앞서만 헤아리더라도, 서울 한복판에도 나무가 우거지고 숲정이가 있었기에 비둘기는 이런 데에서 느긋하게 살았어요. 사람들은 도시를 개발하면서 새한테 한 번도 안 물어보았어요. 소똥구리한테도, 하늘소한테도, 풍뎅이한테도, 도롱뇽한테도 참말 한 번도 안 물어보았습니다. ‘너희 보금자리를 밀어내어 사람 보금자리를 늘리려 하는데 괜찮니?’ 하고 물어보지 않았어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따오기와 뜸부기의 먹이가 되는 물속 생물들이 줄어들었어. 또 수달이나 맹금류가 줄어든 이유와 마찬가지로 농약으로 널리 쓰인 DDT 같은 독성이 강한 화학 물질이 먹이를 통해서 따오기와 뜸부기의 몸에 쌓여 갔어. (95∼96쪽)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변은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던 꾸구리의 대구모 서식지였는데, 4대강 사업으로 이포보와 여주보가 들어서면서 물 흐름이 멈추고 여울이 사라지면서 꾸구리도 자취를 감췄어. (133쪽)
《야생 동물은 왜 사라졌을까?》에서도 밝힙니다만 경기 여주는 4대강 막삽질이 닿으면서 꾸구리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이런 4대강 막삽질은 여주시에 도움이 될까요? 여주시가 4대강 막삽질을 안 받아들이면서 ‘꾸구리 보금자리’를 지키면, 오히려 사람들은 ‘꾸구리를 보려’고 ‘생태관광’으로 여주시를 찾아가지 않을까요?
전남 고흥도 이와 매한가지라 할 수 있어요. 건설업자 배를 불리는 하천정비사업은 이제 그칠 노릇이에요. 세계에 오직 한 곳 한국에, 게다가 한국에서도 고흥에만 살아남은 좀수수치라고 한다면, 고흥군 행정은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지 싶어요. 세계에 오직 고흥에만 있는 좀수수치를 보러 고흥으로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숲살림 마실 정책’을 펼 만합니다. 사진기조차 내려놓고 두 손에 연필하고 종이만 쥔 채, 가벼운 차림새로 숲으로 천천히 들어가서 작은 냇물에 사는 좀수수치를 만나도록 해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좀수수치가 살아갈 만한 아름다운 숲을 고흥 같은 지자체에서 지키거나 건사할 수 있다면, 좀수수치가 아니어도 아름드리 숲하고 바다를 누리려고 ‘생태관광’이나 ‘도보관광’을 하려는 발길이 늘어나리라 생각해요.
새들이 사라지는 건 그만큼 우리 주변의 환경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걸 나타내. 새들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곧 사람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걸 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분명해지겠지. (89쪽)
좀수수치는 1995년에야 세상에 알려졌어. 우리나라에서도 전남 고흥 반도와 여수, 그리고 그 주변의 섬에서만 드물게 발견되다 보니, 학자들이 잘 몰랐던 거지. 좀수수치는 우리나라에 사는 민물고기 중에서 서식 범위가 가장 좁은 물고기야. 아마 세계적으로 봐도 좀수수치처럼 서식 범위가 좁은 물고기는 드문데, 그만큼 아주 희귀하다고 할 수 있지. (136쪽)
새가 살아갈 만한 곳은 사람도 아름답게 살아갈 만한 곳입니다. 개구리나 좀수수치가 살아갈 만한 곳은 사람도 즐겁게 살림을 지을 만한 터입니다. 담비와 수달이 노니는 곳은 사람도 사랑스레 삶을 이룰 만한 자리입니다.
이 땅에서 크고작은 목숨붙이가 사라진 까닭은 ‘사람만 잘 살려’는 생각 때문이었을 텐데, 이제 지난 백 해를 곰곰이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사람만 잘 살려 하는 정책으로 참말 사람이 잘 살 수 있었는가 하고 말이에요. 사람도 숲도 뭇목숨도 다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곳일 때라야 비로소 사람도 즐겁게 잘 살 만한 곳이 아닌가 하고 되새겨 보아야지 싶습니다. 2017.3.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저작권자 분들한테 허락을 받아서 보내 주었기에 실을 수 있습니다 *
노루 - 최태영
산양 - 이용욱
뜸부기 - 권경숙
구렁이 - 김현태
호랑이 - 강병호
좀수수치 - 전형배
좀수수치 분포지도 - 전형배/위키트리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82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