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녜 - 김흥구 사진집
김흥구 지음 / 아카이브류가헌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사진책 읽기 348



제주에서 좀녜를 마주한 열네 해

― 좀녜

 김흥구 사진

 아카이브류가헌 펴냄, 2016.11.30. 4만 원



  사진책 《좀녜》(아카이브류가헌,2016)를 보면, 사진가 김흥구 님이 풋풋한 젊은이였던 무렵(2003년) 문득 사진으로 담은 좀녜 이야기를 그 뒤 열 몇 해가 흐른 오늘에도 꾸준히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담은 자국이 고이 흐릅니다.


  한때 눈여겨보고 사진으로 신나게 아로새긴 좀녜 이야기가 아닙니다. 좀녜를 보고, 어머니를 보고, 가시내를 보고, 아버지를 봅니다. 이러면서 어느덧 김홍구 님 스스로를 본다고 합니다.


  어느 날에는 이윽고 섬을 볼 수 있었다고 해요. 섬과 섬 사이에서 물질을 하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서, 김홍구 님 스스로 섬과 섬 사이에서 사진질을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진책 《좀녜》에는 이 사진책에 붙은 이름처럼 ‘좀녜’만 나옵니다. 그런데 좀녜인 분들은 바다에서 물질만 하지 않아요. 물질을 하러 바닷가로 걸어가요. 물질을 해서 딴 바닷것을 짊어지고 나와요. 불을 피워 몸을 말려요. 함께 물질을 하는 이웃 좀녜하고 이야기꽃을 피워요. 물질 말고도 밭일을 하지요. 집안일을 해요. 아이를 낳아 돌보아요. 살림을 꾸리며 아이를 가르쳐요. 학교라는 곳이 서기 앞서까지 좀녜인 분들 누구나 ‘일꾼’이면서 어머니요 아버지이자 살림꾼이자 ‘교사(아이를 가르치는 이)’로서 이 땅에 튼튼히 선 숨결이에요.


  바다에서 물옷 ‘소중이’를 입을 적에는 좀녜입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볼 적에는 어머니예요. 살림을 꾸리며 집안을 이끌 적에는 아버지요,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고 씨앗 심어 밭을 일구는 손길을 물려줄 적에는 교사입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얻지 않더라도, 좀녜는 좀녜로서 살갑고 사랑스러우며 씩씩한 숨결로 늘 제주섬 한켠에서 마을을 가꾸고 보금자리를 지은 분들 삶에 붙은 이름이라고 느낍니다. 김흥구 님이 빚은 사진책은 좀녜를 만나고 어머니를 만나며 여자와 아버지와 김흥구 님 스스로를 만나는 동안 한 올 두 올 피어난 이야기일 테고요.



해녀가 있다. 

매일 볼 때도 있고, 한 달에 한두 번 혹은 일 년에 한두 번 볼 때도 있다.

있다, 있는 것은 온통 해녀뿐인데

어떤 날은 어머니였다가, 여자였다가, 때로는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늘 섬과 섬 사이에 있었다. (17쪽)



  마을에서 할매가 호미를 손에 쥐고 나물을 캡니다. 할매는 먼먼 옛날부터 호미질을 했고, 나물을 캤습니다. 이 나물은 온식구한테 밥이 됩니다. 때로는 저잣거리로 들고 나가서 팔아요.

  마을에서 할배가 지게를 짊어지고 나무를 합니다. 할배는 먼먼 옛날부터 나무를 했어요. 땔감을 마련해서 집에 쟁였고, 우람하게 잘 자란 나무는 살뜰히 건사하면서 먼 뒷날 아이들이 집을 새로 지을 적에 쓰도록 남겼습니다.


  마을에서 할매가 물질을 하며 바닷것을 땁니다. 할매는 먼먼 옛날부터 물질을 했고, 바닷것을 땄습니다. 처음에는 식구들이 먹을 바닷것이었고, 마을에서 나눌 바닷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나라에서 바닷것을 바치라고 했어요.


  마을에서 할배가 먼먼 옛날부터 하는 일을 헤아려 보면, 땅을 일구고 집을 지으며 새끼를 꼬았습니다. 바구니를 삼고 그릇을 엮었어요. 이러다가 나라가 생기고 임금이 서면서, 할배 같은 사내는 젊을 적에 군역을 진다든지 성벽을 쌓는다든지 하는 자리에 끌려가야 했습니다.


  할매가 걸어온 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할배가 살아온 날에는 무엇이 흐를까요. 예부터 할매랑 할배는 온몸으로 온살림을 짓는 데에 온힘을 기울였어요. 이러면서 온마음으로 이야기를 지어 아이들한테 들려주었어요. 할매나 할배는 먼 옛날부터 ‘슬기로운 사람’ 자리에 있었어요. 젊은이나 어린이는 할매나 할배한테서 슬기를 물려받고 사랑을 이어받으면서 이녁을 고이 섬기는 삶이었어요.


  사진책 《좀녜》를 읽으면서 할매랑 할배가 이 땅에 남긴 자국을 헤아립니다. 제주에서 ‘좀녜(해녀)’로 일을 한 할매들 자국은 역사책에 몇 줄 안 나옵니다. 이른바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책에는 임금님 이야기만 잔뜩 있어요. 따로 좀녜 이야기를 갈무리한 역사책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인문지리학에서도 좀녜를 찬찬히 살피거나 파고든 책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지요. 요즈음 들어서야 조금 있다고 할 만합니다.


  사진을 찍은 김흥구 님은 앞으로도 낮은 걸음으로 제주 좀녜를 사진으로 담을 생각이라고 합니다. 스물을 갓 넘긴 때에 바라본 좀녜하고, 서른을 지나며 바라보는 좀녜는 다를 테고, 마흔을 지나고 쉰을 지나며 바라볼 좀녜는 또 다르면서 새로운 결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윽고 김흥구 님이 머리 하얀 할아버지가 되어 좀녜를 꾸준히 찍는 사진길이 된다면, 그때에는 사진으로 빚고 이루는 남다르면서 새로운 실마리를 살며시 밝힐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함께 늙고 함께 삽니다. 함께 나이가 들고 함께 슬기를 얻습니다. 함께 무르익고 함께 자랍니다. 바닷바람이 불고 바닷물이 일렁이는 곳에서 고요히 물속에 잠겼다가 가쁜 숨을 내뱉으며 물밖으로 나와서 살림을 이루는 손길을 사진마다 따사로이 마주합니다. 2017.3.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


* 글에 붙인 사진은 류가헌갤러리에서 고맙게 보내 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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