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을 주는 일 모악시인선 3
문신 지음 / 모악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시를 노래하는 말 284



‘곁주기’하고 ‘겉주기’ 사이

― 곁을 주는 일

 문신 글

 모악 펴냄, 2016.9.23. 8000원



  시인 문신 님은 《곁을 주는 일》(모악,2016)이라는 시집을 내놓으면서 “곁을 주는 일”이란 “살 부비고 싶어지는 일”이라고 읊습니다. 가늘면서 단단하게 읊는 “곁을 주는 일”을 곱씹어 봅니다. 누구한테는 ‘곁주기’가 ‘살부빔’일 수 있을 테지요. 누구한테는 곁주기가 ‘한마음’일 수 있어요. 누구한테는 곁주기가 ‘한눈’이나 ‘한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들아, // 속옷 바람으로 널 내쫓아놓고 애비는 처마처럼 두 귀가 얼어 네 울음을 듣는다. (동지)


잠이 가비얍다 낙엽이 진다 하늘은 어지럽고 아내는 살이 붇는다 달은 치마가 짧아지고 아들 녀석은 종아리 살이 단단하다 잠이 길어도 (입추)



  사내하고 가시내 사이에서 살을 부벼야만 서로 곁을 주는 일이 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살부빔은 수많은 곁주기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한 가지이지 싶어요. 살만 부비면서 머문다면, 살을 부비는 생각에서 멎는다면, 살을 부비고 끝낸다면, 이는 곁주기라기보다는 ‘겉주기’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친구의 이혼 서류에 보증인 진술서를 써 주고 온 날은 종일 맑았다 / 바람도 훈훈하였다 / 달력을 넘겨보니 어느덧 2월이었다 // 뒷담 그늘에 / 여중생 두 명이 쭈그리고 앉아서는 / 두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있었다 / 빨갛게 언 종아리를 와들와들 떨어대고 있었다 (지지난해)



  살아가는 하루를 시로 읊습니다. 살아가는 나날을 시로 그립니다. 살아가고픈 꿈을 시로 노래합니다. 살아가려는 몸짓을 시로 짓습니다. 시집 《곁을 주는 일》에는 문신 님 나름대로 용을 쓰고 악을 쓰며 이를 깨무는 살림이 흐릅니다. 감출 일이 없고 숨길 일도 없이 고스란히 드러낼 살림이 흐릅니다.



곁을 주는 일이 이렇다 할 것이다 // 애초에 한 몸이었다가 홀연 등 떠밀린 것들 / 이만큼 / 살 부비고 싶어지는 일이라 할 것이다 // 그러니 애인이여 / 우리 헤어져 / 둘이 되어도 좋을 일이다 (곁을 주는 일)



  밥물 안치는 곁님을 끌어다 앉혀서 눈을 함께 구경할 수 있어요. 그리고 밥물 안치는 곁님은 눈을 구경하도록 해 놓고서 아저씨 시인이 밥물을 마저 안쳐서 밥을 짓고 밥상을 차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저씨 시인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비질을 하고 집살림을 건사해 놓고서 곁님더러 ‘살부빔’을 해 보자고 속삭였다면 어떤 이야기가 시로 드러날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눈 내린 아침, 밥물 안치는 아내를 끌어다 베란다에 앉혀 놓고, 저 눈의 무늬를 가늠해보라고, 눈 구경시킨다 (연애의 무늬)


아내와 다투고 침묵으로 하루를 보낸다 입을 닫으니 귀만 예민해진다 아내가 부엌에서 혼잣말하는 소리 심장 뛰는 소리 발가락 끝에서 핏줄 튀는 소리 그리고 고요 소리 고요도 이렇게 소란한 것을 (아내와 다툴 일이 아니다)



  사내가 쓰는 시에서 굳이 밥내음이나 물내음이 흘러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내가 쓰는 시에서 밥내음이나 물내음이 흐르지 않을 적에, 이른바 살가운 살내음이 살림살이에 젖어드는 이야기가 흐르지 않을 적에는, 어쩐지 겉주기로 그치는 ‘겉시’가 되지 싶어요.


  곁을 주는 일을 노래하려는 시라면 ‘겉시’보다는 ‘곁시’가 될 적에, ‘곁노래’를 부르는 ‘곁님’하고 하나가 되는 ‘곁마음’이 될 적에, 수많은 이야기가 곱게 살랑살랑 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2017.2.1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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