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의 산막일지
지율 지음 / 사계절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1



이제 막삽질 대통령은 그만!

― 지율 스님의 산막일지

 지율 글·사진

 사계절 펴냄, 2017.1.16. 15800원



  작은 스님 한 사람이 있습니다. 키도 몸도 작은 스님은 작게 살림을 지으며 작은 길을 걸었습니다. 작게 길을 걷다 보니 작은 이웃을 봅니다. 작게 짓는 살림길에서 만난 작은 이웃은 무척 사랑스러웠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작은 스님은 작은 이웃한테 마음을 주었고, 작은 이웃은 작은 스님 마음을 받아서 제 삶자리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꿈을 키웠습니다.


  어느덧 열 몇 해가 지난 어느 때 이야기입니다. 작은 스님은 우람하고 빠르며 비싼 것이 가로지르려고 하는 작은 산 하나를 보았습니다. 이 작은 산에서 사는 작은 도롱뇽을 보았습니다. 한국에는 모두 네 가지 도롱뇽이 사는데(도롱뇽·제주도롱뇽·고리도롱뇽·꼬리치레도롱뇽), 이 가운데 하나인 꼬리치레도롱뇽입니다.


  그무렵 한국 정치나 경제나 사회에서는 서울하고 부산을 아주 빠르게 한 줄로 곧게 이어 달릴 수 있도록 하려는 데에 힘을 쏟았습니다. 천성산쯤이야, 도롱뇽쯤이야, 작은 스님 한 사람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자 할배는 “어이 좋다”고 한잣말을 하시더니 산능선까지 올라가서야 지게를 내리신다. 할배가 멈춘 ㄱ곳은 커다란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져 있다. 할배는 낫으로 잔가지들을 쳐내고 나무를 톱으로 지게에 싣기 좋게 자르신다. (23쪽)


바람은 몇 가지로 다른 소리를 낸다. 하나는 산언덕을 치고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로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 철썩이며 방문 앞에서 포말로 부서지는 소리이다. (28쪽)



  《지율 스님의 산막일지》(사계절,2017)는 지율 스님이 천성산 도롱뇽하고 벗이 되어 이 삶자락을 앞으로도 정갈하게 지켜 주고 싶은 마음으로 일하다가 몸이며 마음에 너무 깊이 생채기를 입고 깃든 두멧마을에서 적은 일기를 갈무리한 책입니다.


  천성산을 지켜 주지 못했고, 도롱뇽도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2004년 즈음 대통령 자리에 있던 분이나, 대통령 뜻을 받아서 지율 스님을 만났던 비서실장이나, 모두 지율 스님한테 거짓말을 했습니다. 말바꾸기도 했어요.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겠노라며 밥굶기싸움을 그쳐 달라고 했을 적에, 지율 스님은 곧이곧대로 믿고 밥굶기싸움을 그쳤지만, 막상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슬그머니 건너뛰었어요.


  정부로서는 작은 산이나 꼬리치레도롱뇽은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하루 빨리 서울하고 부산 사이에 고속철도를 놓아서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경제가치를 드날리는 데에만 마음을 썼어요.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길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어떤 숲이 있는지, 어떤 멧골이 있는지, 어떤 이웃이 있는지, 어떤 숨결이 사는지 거의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마당가에 있는 오래된 우물을 청소하려고 덮어두었던 뚜껑을 열다가 깜짝 놀랐다. 도롱뇽 서너 마리가 물밑으로 숨어드는 것을 본 것이다. (37쪽)


불을 피우고 나무를 아끼는 것도 지혜이다. 큰 솥에 물을 끓이고 작은 솥에 밥을 하고 부지깽이를 놓아 국을 끓인다. (45쪽)


식물도감을 펴 들어 보지만 도감에는 오늘 본 풀들의 반도 없다. 오히려 밭을 매고 계신 할매에게 물으니 척척 대답하신다. 벌구다대, 보리강갱이, 꼬지기, 피당가리, 물에독새가시, 산나락냉이, 소엉겅퀴, 피다이, 밥부재나물, 미치광이 배추, 울릉도 나물 ……. (88쪽)



  도롱뇽 바라보기가 슬프고 두려워지고 만 작은 스님은 천성산에서 밀려난 뒤 찾아든 멧골마을 허름한 양철지붕 집 마당에서 뜻밖에 도롱뇽을 다시 만납니다. 그저 포근히 작은 스님을 받아 준 깊은 멧골마을인데, 오래 묵은 낡은 우물 한켠에 도롱뇽이 알을 낳았대요.


  비록 도롱뇽은 고속철도 등살에 삶터를 빼앗겼어도, 도롱뇽을 비롯한 수많은 짐승과 벌레와 푸나무가 밀려나거나 죽음길로 가야 했어도, 작은 멧골마을 작은 마당 작은 우물에 도룡뇽 몇 마리가 헤엄치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 옥이 할배는 늘 달고 다니시던 참전 용사 배지를 옷에서 떼시면서 “이제 생각해 보니 동포끼리 싸우고 받은 부끄러운 훈장이었다”고 하셨다. 오십 년 만에 찾아온 회한이다. (120쪽)


지난달 소 장사가 찾아와 3년 정도 기르던 암소를 팔 때, 할아버지가 소 등을 쓸어 주며 무슨 말인가 한참을 주고받고 나오시기에 내가 여쭈었다. “뭐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이렇게 인연 지어졌으니 이해하여 달라고.” (140쪽)



  도롱뇽은 한국에서 없어져도 될까요? 도롱뇽 보금자리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될까요? 도롱뇽도 작은 산도 작은 마을도, 그러니까 조용하고 정갈한 시골마을을 조용하고 정갈하게 건사하면서 아끼려는 마음이 없는 정책은 어떤 길로 나아갔을까요?


  그예 고속철도 공사를 처음 계획대로 밀어붙인 정부는 고속철도를 얻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잃습니다. 숲도 잃고 마을도 잃으며 도롱뇽도 잃습니다. 고속철도를 얻으려고 막개발을 밀어붙인 정부에 이어 들어선 새로운 정부는 온나라를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도록 시멘트 공사로 갈아엎습니다. 이른바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벌인 ‘4대강 죽이기’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자리에 서려고 하는 분들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일꾼한테 한 표를 주어서 뽑는 우리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시멘트를 들이부어 공사판을 벌이는 경제성장 정책으로 일자리를 새로 마련하겠다고 밝히는 정책은 우리한테 어떤 보람이나 기쁨이나 열매를 주었을까요?


  고속철도 공사를 하면서, 4대강 시멘트 공사를 하면서, 또 수많은 공사를 하면서 ‘삽질’ 일자리는 늘어날 테지요. 그러나 한 가지 공사가 끝나면 ‘삽질’ 일자리는 모두 사라집니다. 더욱이 삽질을 하는 동안 땅을 파헤쳤으니 땅이 제힘을 되찾기까지 오래 걸립니다.


  우리는 어떤 정치 지도자를 바라야 좋을까요. 우리한테는 어떤 정치 지도자가 있어야 할까요. 우리는 정치 지도자에 앞서 우리 삶을 어떻게 가꿀 때에 아름답거나 즐거울까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농사짓는 것을 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살아 보니 농사는 배워서 짓는 것이 아니라 지으면서 배우는 것이다. (149쪽)


어르신들은 ‘애기 며느리 밥풀꽃’을 ‘송이를 부르는 풀’이라고 부르신다. 산중턱 이상 되는 큰 소나무 그늘 아래서 많이 피기 때문이다. 또한 송이는 밤나무에 밤이 터질 때, 쑥부쟁이꽃이 피기 시작할 때, 감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나기 시작한다고 하신다. (217쪽)



  지율 스님은 멧골마을에 깃들어 ‘산막일지’를 쓰면서 할매하고 할배를 마주합니다. 처음에는 흙살림을 배워 보려는 생각이었지만, 이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이내 깨달았다고 합니다. 배워서 지을 수 없는 흙살림이요, 그예 몸으로 마음으로 흙을 부대낄 적에 저절로 배우는 살림인 줄 깨달았다고 해요.


  나무하는 할배를 따라 숲으로 들어갑니다. 나물하는 할매를 따라 숲으로 들어갑니다. 언제나 숲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마을에서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를 듣습니다. 양철지붕을 달싹이는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손수 밥을 지어서 먹고, 손수 반찬을 차려서 먹습니다. 흙을 밟고 흙을 만지면서 사람과 삶과 살림과 사랑이 마을에서 어떻게 피어나는가를 처음부터 다시 헤아리면서 배웁니다. 《지율 스님의 산막일지》는 이 나라가 막개발이나 막공사로 치닫는 자리에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나서 바라본 작은 이웃들이 일깨운 슬기를 하나하나 갈무리한 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들이 날아와 양철 지붕을 밟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었습니다. 하늘과 바다와 숲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는 시간입니다. 이 눈 뜨임은 자연의 시간이며 우주의 시간이라는 것을 저는 느낍니다. (280쪽)



  지율 스님은 천성산 도롱뇽하고 벗이 되려고 하면서 우리한테 물었어요. 무엇을 보고 어느 길로 달리려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지율 스님은 멧골마을에서 살다가 낙동강 곁으로 옮겼습니다. 2004년 언저리에는 고속철도를 비롯한 막개발 막공사를 일삼은 정치권력이 있었다면, 그 뒤를 이은 정치권력은 낙동강·한강·금강·영산강뿐 아니라 온 나라 냇바닥을 들어내어 시멘트를 퍼붓는 막개발 막공사를 끔찍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입니다.


  내성천을 지켜 보려고, 내성천에서 물고기가 마음껏 헤엄치도록 해 주고 싶어서, 부디 ‘대통령 잘못 뽑은 사람들’이 대통령은 잘못 뽑았어도 우리 보금자리를 스스로 잃어버리지 말자고,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되찾자고 하면서 냇바람 부는 곳에 섰어요. 다시 길에 서고, 다시 삽질에 맞서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낙동강을 비롯한 모든 물줄기에는 시멘트가 가득 쌓였지요. 전남 고흥 같은 작은 시골도 골짜기마다 시멘트차가 올라가서 골짜기를 갈아엎고 시멘트를 부었답니다.


  2017년에 우리는 대통령 한 사람을 탄핵해서 새로 뽑을 수 있을까요? 대통령 한 사람을 새로 뽑는다면 어떤 정책을 펼치는 사람을 뽑을 수 있을까요? 예전 대통령처럼 막개발 막삽질을 그예 밀어붙인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록 할는지요? 공사판 일자리만 마련하려는 대통령을 다시 뽑을는지요? 이 나라에 평화와 민주가 뿌리내리도록 하면서 참다운 살림을 슬기롭게 가꿀 일꾼을 비로소 뽑을는지요? 작은 스님이 멧골에서 띄운 글월을 마음으로 새기며 읽을 줄 아는 심부름꾼이 대통령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군수도 되고 공무원도 될 수 있기를 빕니다. 2017.2.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글에 붙인 사진은 사계절 출판사에 연락해서 고맙게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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