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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쳔 Question 2017.1.2 - Vol.06
인터뷰코리아 편집부 / 인터뷰코리아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292
아름다운 길을 묻는 새로운 잡지
― 월간 《QUESTION》(퀘스천)
6호. 2017년 1·2월 합본호
1만 원
묻는 잡지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선 길을 묻고, 어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물으며, 앞으로 우리가 걸어갈 길을 묻는 잡지입니다. 이 잡지는 지난 2016년 여름에 7·8월 합본호를 내며 처음으로 선보였고, 다달이 차근차근 여러 사람들 목소리를 담아내어 묻습니다. “왜?”냐고 묻고, “어떻게?” 하고 다시 물어요.
1호에는 윤호섭, 하랄드 마이어, 페터 슈나이더, 이호철, 박희석, 조벽, 김연순, 김윤식, 유두현, 김시종, 김석범, 김종길 같은 사람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냈습니다. 삶을 놓고, 숲을 놓고, 문학을 놓고, 예술을 놓고, 시를 놓고, 제주와 4·3을 놓고 이야기가 흐릅니다.
2호에는 성귀수, 백원근, 채윤일, 차장섭, 이근이, 고영재, 박이소 같은 사람들이 조곤조곤 목소리를 냅니다. 꿈을 놓고, 책을 놓고, 연극을 놓고, 농사를 놓고, 길을 놓고, 시골을 놓고 이야기가 흘러요.
3호와 4호에서도 이야기는 고이 흐릅니다. 숨을 거두고 저승으로 간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놓고, 사람답게 살아갈 터를 놓고, 이 나라를 놓고, 종이와 나무를 놓고, 문명과 문화를 놓고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목소리를 한 가지씩 털어놓습니다.
“일본어는 띄어쓰기가 없잖아요. 글자를 좍 메워 놓았는데 참 신기해요. 그게 답답하게 느껴지질 않는다는 겁니다. 그 일본어 조판 장비를 제가 공부를 좀 했습니다. 조판기를 만들려면 조판 코드라고 하는 걸 집어넣어서 짜야 하니까요. 옛날에는 조판 코드를 다 입력해서 붙이고 떨어뜨리고 했잖아요. 아, 그 섬세함이 정말 무섭더라고요. 너무너무 뛰어나요. 게다가 우리 한글은 전혀 다르니까요.” (22쪽, 김태정)
이제 막 태어난 잡지 《QUESTION》(퀘스천)에 담기는 목소리는 우리 사회에서 한복판을 가로지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바깥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목소리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 틀을 이룬 사람들이 내고, 어느 목소리는 그동안 우리 사회 바깥에서 조용히 삶을 지은 사람들이 냅니다.
《QUESTION》 6호(2017년 1·2월 합본호)는 ‘태시스템 대표’ 김태정 님 목소리로 첫머리를 엽니다. ‘태시스템’은 글꼴을 빚어서 나누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해요. 글을 담는 글씨가 우리 눈에 한결 잘 들어오도록 북돋우는 일이 ‘글꼴 빚기’라고 할까요.
말은 생각을 담습니다. 글은 말을 담아요. 글꼴이나 글씨는 글에 깃든 숨결을 살려 줍니다. 다 다른 글꼴이나 글씨는 다 다른 사람들이 짓는 생각을 다 다르게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얼마 전에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모 신문에다. 거기 문화센터가 있으니까요. 한번 같이 해 볼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 늘 하는 얘기지만 이상하게 신문은 좋은데 사람들은 거기가 별로야. 모 신문은 신문은 별론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좋은 거야. 하하하. 아주 인간적이고 대화도 잘 통하고 …… 여튼 잘 얘기를 하다가 중단이 됐어요. 그때는 정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참 좋아하는 신문인데 왜 이런 사람들밖에 안 뽑나 …… 아니면 좋은 사람들인데 신문이 이렇게 만들었나 이런 생각이 들게 하더라고요.” (35쪽, 김태정)
오랜 나날 한글 글꼴을 빚은 분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글꼴을 빚은 분은 사람을, 책을, 말을, 사회를, 문화를, 정치를, 신문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글꼴지기가 느끼는 ‘신문은 별론데 사람은 좋다’는 모습하고 ‘신문은 좋은데 사람은 별로야’라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신문도 좋고 사람도 좋은 길로 어떻게 하면 나아갈 만할까요?
‘유니버설 발레단’ 단장 문훈숙 님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들어 봅니다. 발레를 오래 하면서 프랑스 무대에도 올라 보았다는 문훈숙 님은 발레는 누구나 쉽게 즐길 만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대부분 발레에 대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대사가 있어요. 발레리나가 대사를 하지는 않지요. 그러나 손 동작을 보시면 됩니다. 손 동작으로 대사를 하거든요. 그걸 ‘발레 팬터마임’이라고 해요.” (39쪽, 문훈숙)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보실 때는 자막이 필요하잖아요. 예를 들어 이탈리아어나 영어로 뮤지컬이 나오면 번역을 해야 하는데, 발레는 그 어떤 자막도 필요가 없죠. 그냥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즉흥적으로 보이는 감정, 보이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끼면서 특별한 해석 없이 그거를 즐기시면 되거든요.” (41쪽, 문훈숙)
사진이나 그림을 놓고도 ‘말이 없이 즐길 수 있다’고 해요. 나라마다 쓰는 말이 달라도 사진 한 장이나 그림 한 점은 ‘말로는 나타낼 길이 없는 너른 이야기’를 담아낸다고도 합니다. 발레는 어떤 춤사위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 줄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바라보는 아름다움에서 우리 삶을 즐겁게 짓는 이야기를 어떻게 찾을 만한가 하고도 헤아려 봅니다.
가만히 보니 잡지 《QUESTION》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물을’ 뿐 ‘정답’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다른 꿈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자리를 살피면서 조곤조곤 묻습니다. 어느 한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이분들이 여태 키운 꿈과 사랑이 무엇인가를 다시 조곤조곤 들려주어요. 이것이 맞거나 저것이 틀리다는 이야기가 아닌, 이렇게 살며 이러한 살림을 배우고 저렇게 넘어지며 저러한 사랑을 익혔노라는 이야기가 이 잡지에 흐릅니다.
“나이 드신 분들도 있지만 젊은 예술가들도 순응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인재라는 건 아니지만, 인재가 없어요. 요즘은 공무원들도 젊은 청년들, 시민단체들, 예술가들과 같이 기획하고 축제를 만들고 싶어 해요. 기존에 행사들을 더 업그레이드 시키려고 하고, 그러나 쉽지는 않지요. 그걸 깨야죠. 그걸 제가 깨 나가야죠.” (64쪽, 강혁)
‘더미 산수화’를 그린다는 강혁 님은 ‘더미더미’ 쌓는 그림에 우리 이야기와 이녁 이야기를 싣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늘 살아내지만 미처 느끼지 못하는 대목을 그린대요. 그림지기 스스로 살아가면서 더 깊이 되새기고픈 대목을 함께 그리고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스스로 아프거나 기쁜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직 이루지 못했으나 앞으로 이루려고 하는 꿈을 그립니다.
붓을 잘 놀리기에 그림지기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붓놀림이 어수룩하거나 느리더라도 스스로 담아내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적에 그림을 그리지 싶어요. 예술이나 문화를 하려는 그림이 아니라, 꿈으로 나아가는 삶을 지으려는 발판인 그림 그리기라고 생각해요.
“병풍은 말 그대로 바람 막는 물건 아닙니까! 바람막이면서 거기에 좋은 시가 있고 산수가 있고 꽃이 있고, 그 앞에 보루 방석 딱 펴놓고서 세배도 받고 그러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제사 지낼 때 쓰는 걸로 착각들을 해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목기 장사하는 분들이 목기 팔면서 병풍을 추가로 팔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 어떤 식으로 제작했냐면, 그림을 전부 인쇄를 해서 그냥 한 장 딱 붙이면 끝이야. 그렇게 해서 그걸 10만 원, 20만 원에 파니까 사람들이 사는 거지.” (105쪽, 송산)
표구를 하는 일을 오래도록 해 온 ‘송산방’ 윤종건 님은 병풍하고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날 흔하게 퍼진 병풍은 처음 병풍을 마련해서 세울 적하고 너무 달라졌다고 합니다. 지난날에는 병풍 하나를 아무렇게나 세우지 않았대요. 그저 빨리 많이 찍어대는 병풍이란 없이, 언제나 이 하나에 모든 숨결을 담아서 빚으려고 했답니다.
가만히 따지면 병풍만 하나하나 알뜰히 빚던 지난 살림이지는 않아요. 지난날에는 옷 한 벌도 이 옷을 입을 사람을 헤아려서 지었어요. 공장에서 기계로 뚝딱 찍어내는 똑같은 옷이 아니었지요. 뜨개질을 하는 뜨개옷도 도안에 따라 똑같이 뜨는 옷이 아니에요. 도안을 보며 뜨개를 하되, 뜨개옷을 입을 사람 몸크기를 살펴서 코를 살짝 보태거나 빼면서 알맞게 맞추어요.
날마다 먹는 밥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배만 채우려고 밥을 지어서 먹지 않아요. 아이한테 밥을 지어서 먹이는 어버이는 오직 제 아이를 바라보면서 밥을 지어요. 수저를 쥐어 기쁘게 밥그릇을 비울 아이가 웃는 얼굴을 마음으로 그리면서 밥을 짓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오늘날 ‘하나를 바라보는 마음’을 잊거나 놓치면서 너무 빠르게 내달리지 싶어요. ‘한 사람을 마주하는 넋’을 잃거나 빼앗기면서 자꾸 첫마음하고 멀어지지 싶어요.
“지난 1월 3일, 국내 서적 도매상 업계 2위인 송인서적이 최종 부도처리 되었다 … 문체부는 잇따라 관련 출판업계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지만, 피해 당사자 입장에서 서류를 자세히 살펴보면 역시 생색내기용에 불과한 것을 깨닫고는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재고서적 회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마저도 매우 절망적이다 … 묻고 싶었다. 우리 잡지를 전국 서점에 일일이 배포해 주었던 이 착한 회사는 왜 문을 닫게 됐을까? 아직 한 번도 반품받지 못했던 우리 잡지의 지난 호들은 어떤 물류창고에서 떨고 있는 것일까?” (8쪽)
잡지 《QUESTION》 6호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QUESTION》 6호 첫머리를 보면 올 2017년 1월에 송인서적이 부도가 나면서 이 잡지사가 얼마나 힘든가 하는 대목이 몇 줄로 나옵니다. 이 몇 줄로는 궁금함을 풀 수 없어서 편집주간 민병모 님한테 ‘여쭈어’ 보았습니다. 《QUESTION》 편집주간 민병모 님은 ‘부도난 송인서적’에서 아직 ‘책 팔린 돈을 결재를 안 해’ 주었다고 합니다. 1호부터 5호까지 내는 동안 전국 책방에 이 잡지를 배본은 해 주었되, ‘몇 부가 팔렸고, 팔린 돈이 얼마인가’를 알 길이 없다고 해요. 더구나 그동안 낸 잡지도 송인서적 창고에 꽁꽁 묶인 채 돌려받지 못해서 갑갑한 노릇이라고 합니다.
도매상 부도 때문에 큰일을 치른 출판사가 이 잡지사 한 곳뿐이 아니라 1000군데에 이른다니 참으로 아득합니다. 책이 잘 팔리기만 하면 도매상이나 서점 부도란 없을까요? 책이 잘 팔리기만 하면 도매상이나 서점은 결재를 잘 해 줄까요? 한국에서는 그저 많이 잘 팔기만 해야 살아남을 값어치가 있을까요?
삶을 묻고, 살림을 물으며, 사랑을 묻는 책 하나가 한국에 오롯이 서기란 어려운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삶을 삶답게 가꾸어 온 사람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묻고, 살림을 살림답게 일구려 땀을 흘린 사람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물으며, 사랑을 그야말로 사랑스럽게 지으려는 사람을 찾아가서 물은 살뜰한 이야기를 알뜰히 엮으려고 하는 잡지 한 가지가 한국에 씩씩히 서기란 힘든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이 잡지의 이름은 ‘QUESTION’이다. 우리는 매달 10개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평소에 잊고 있는 질문, 빠트린 질문, 우리가 생각하기엔 중요한 질문들이다. 우리는 정통파 투수를 자처하며, 직구 위주로, 정직하게 던져 볼 생각이다. 우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 중엔 정답도 오답도 없을지 모른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도 있을 테니까.” (1호 머리말/편집주간 민병모)
묻고 또 물으니 스스로 실마리를 찾으리라 봅니다. 묻고 다시 묻기에 우리는 저마다 수수께끼를 풀 만하리라 봅니다. 묻고 거듭 묻는 사이 사람들은 누구나 제 길을 제 손으로 지을 적에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줄 깨달으리라 봅니다.
잡지쟁이도 독자도 한마음이 되겠지요. 물으면서 배워요. 물으면서 나아가요. 묻고 또 묻는 사이에 어느덧 의젓하고 다부지게 노래할 수 있어요.
잡지 《QUESTION》이 꾸준히 묻고 되물으면서 우리 삶자리에 촛불 하나로, 등불 하나로, 별빛 하나로, 햇볕 한 줌으로 깃들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7.2.8.물.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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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