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어사전으로 말을 배울 수 있을까?
[국어사전 돌림풀이 벗기기 5] 괴롭다·고통스럽다, 꼭·반드시·필요, 더럽다·지저분하다·오염


  사전은 새로운 말을 싣는 구실도 하지만, 무엇보다 말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익히도록 돕는 구실을 합니다. 사전을 가장 자주 들출 사람이라면 글을 쓰거나 손질하는 사람이 될 텐데, 어른 못지않게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사전을 자주 들춥니다. 어른은 사회에서 지내며 여러모로 새로운 말을 듣고 몸으로 부대끼면서 익힐 수 있지만, 어린이랑 푸름이는 아직 이모저모 많이 배우는 때인 터라, 몸으로 부대껴서 익히지 못하는 말을 사전을 옆에 놓고서 배우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늘 옆에 놓으면서 늘 들출 책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이런 책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사전입니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한국말사전을 옆에 놓고서 ‘내가 쓰는 이 말이 참말 한국말다운 한국말인가?’를 돌아볼 노릇이에요. 말뜻이나 말결이나 말느낌을 제대로 살펴서 알맞게 써야 할 테니까요.

  ‘학대하다’라는 한자말을 한국말사전에서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학대하다’라는 낱말을 거의 ‘괴롭히다’로 풀이하기에, ‘괴롭히다’라는 한국말을 살피니, 남녘 사전은 ‘고통·고통스럽다’로 풀이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학대하다(虐待-) : 몹시 괴롭히거나 가혹하게 대우하다
괴롭히다 :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럽게 하다
고통스럽다(苦痛-) : 몸이나 마음이 괴롭고 아픈 느낌이 있다
괴롭다 :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럽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학대하다(虐待-) :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히고 가혹하게 대하다
괴롭히다 : 1.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아 견뎌 내기 힘들게 하다
고통스럽다(苦痛-) : 1. 괴롭고 아프다 2. 힘들고 어렵다 3. 괴롭고 아프다
괴롭다 : 1. 몸이나 마음의 고통을 받아 견뎌 내기가 힘든 상태에 있다 2. 고통을 가져와 견디기 힘들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학대하다(虐待-) : 남에게 모질게 굴다
괴롭히다 : 괴롭게 하다
고통스럽다(苦痛-) :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괴로와서 견디기 어렵다
괴롭다 : 참아내거나 견디여내기 어려울만큼 불편하고 언짢다


  ‘학대하다 → 괴롭히다 → 고통스럽다’ 얼거리이니, 다시 ‘고통스럽다’를 찾아봅니다. 남북녘 한국말사전은 ‘고통스럽다’를 ‘괴롭다’로 풀이합니다. 그러면 ‘학대하다’는 ‘괴롭히다’인 셈이고, ‘고통스럽다’는 ‘괴롭다’인 셈일 테지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학대하다(虐待-) : → 괴롭히다
괴롭히다 : 괴롭게 하다
고통스럽다(苦痛-) : → 괴롭다
괴롭다 : 1. 느긋하거나 홀가분하지 못하면서 무엇을 하지 못하겠다고 느끼다 2. 힘이 많이 들거나, 하기에 어렵다 3. 어떤 일을 못 하게 해서 마음이 자꾸 쓰이다


  사전에는 되도록 많은 낱말을 올려야 할 수 있습니다. 한자말이기에 일부러 빼거나 한국말(토박이말)이기에 일부러 더 올려야 하지 않습니다. 다만 뜻풀이를 다루는 자리에서는 좀 슬기로워야지 싶어요. ‘학대하다’는 “→ 괴롭히다”로 다루면 돼요. 또는 “→ 괴롭히다. 들볶다”로 다루면서 ‘괴롭히다’하고 ‘들볶다’가 어떻게 다른가를 찬찬히 살피면서 다룰 수 있습니다. ‘고통스럽다’는 “→ 괴롭다”로 다룰 수 있고, “→ 괴롭다. 힘들다. 어렵다. 고단하다”로 다루면서 이 여러 가지 한국말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가를 잘 가누어서 알맞게 다루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에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슬기롭게 살피며 제대로 배울 길을 여는 사전 얼거리가 되어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필요·필요하다’라는 한자말이 꽤 나옵니다. 어린이한테는 쉽지 않을 한자말일 수 있습니다. 어른한테는 너무 쉬운 한자말이라 할 테지만 말이지요.


(표준국어대사전)
꼭 : 1. 어떤 일이 있어도 틀림없이 2. 조금도 어김없이 3. 아주 잘 4. 매우 흡족하게 5. 아주 비슷하게
필요하다(必要-) :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다
반드시 : 틀림없이 꼭

(고려대한국어대사전)
꼭 : 1.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2.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3. 예외 없이 늘
필요하다(必要-) : 꼭 요구되는 바가 있다
반드시 : 1. 틀림없이 꼭 2. 또는 어김없이 꼭

(북녘 조선말대사전)
꼭 : 1. 조금도 어김없이 2.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필요하다(必要-) : 반드시 꼭 요구되거나 있어야 하다
반드시 : 어떤 행동이나 실현이 틀림없이 꼭


  《표준국어대사전》은 한자말 ‘필요’를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음”으로 풀이하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꼭 요구되는 바가 있음”으로 풀이하며, 《조선말대사전》은 “반드시 꼭 요구되거나 있어야 함”으로 풀이해요. 세 사전이 모두 ‘꼭’이나 ‘반드시’로 ‘필요’를 풀이합니다. 그런데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꼭’을 ‘반드시’로 풀이하고, 세 사전은 ‘반드시’를 모두 ‘꼭’으로 풀이해요.

  자, 이렇게 되면 초등학교 어린이는 사전을 들추다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린이한테 한국말을 가르칠 어른은 이 말풀이를 읽고서 어찌해야 좋을까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꼭 : 1. 때나 숫자가 안 맞거나 벗어나지 않도록(잘 맞도록, 잘 맞추어서) 2. 어떤 일이 끊이지 않고 이어서(늘) 3. 어떤 일이 있어도
필요(必要) : → 꼭. 반드시 (필요하다 : 꼭 있어야 하다)
반드시 : 1. 안 하는 일이나 안 이루어지는 때가 없이 2. 어느 틀이나 때에서 벗어나지 않고(언제나) 3. 어떤 때·자리·흐름·모습이라면 달리 될 수 없이 그렇게 4. 어떤 일과는 그 하나만 얽히거나 이어지는 모습을 나타날 때


  ‘꼭’이나 ‘반드시’뿐 아니라 ‘틀림없이’하고 ‘어김없이’도 제대로 풀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돌림풀이나 겹말풀이가 안 되도록 잘 살펴야지요. 한자말 ‘필요’는 ‘꼭’이나 ‘반드시’를 찾아보도록 이끈 뒤에, ‘꼭’하고 ‘반드시’를 제대로 알맞게 풀어내 주어야지 싶습니다.

  흔하거나 쉽구나 싶은 낱말을 제대로 안 다루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한국말을 잘못 배우거나 엉터리로 물들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말이 매우 어지러워지거나 뒤틀릴 수 있어요. 물드는 일을 가리키는 ‘오염’이라는 한자말을 살펴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오염되다(汚染-) : 더럽게 물들다
더럽다 : 1. 때나 찌꺼기 따위가 있어 지저분하다 2. 언행이 순수하지 못하거나 인색하다 3. 못마땅하거나 불쾌하다 4. 순조롭지 않거나 고약하다 5. 어떤 정도가 심하거나 지나치다
지저분하다 : 1. 정돈이 되어 있지 아니하고 어수선하다 2. 보기 싫게 더럽다 3. 말이나 행동이 추잡하고 더럽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오염되다(汚染-) : 1. 나쁜 물질 따위로 더러워지거나 해로운 이물질이 번지게 되다
더럽다 : 1. 때나 찌꺼기 따위가 묻어 지저분하다 2. 추잡하고 천하다 3. 지저분한 것들이 널려 있다
지저분하다 : 1. 추잡하고 더럽다 2. 거칠고 어지러워 깨끗하지 못하다 3. 어지럽혀져 깨끗하지 못한 상태가 되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오염되다(汚染-) : 1. 더러운 물이 들거나 더럽게 물들다 2. 해로운 물질이 퍼져있거나 묻다 3. 불완전한 사상에 물들다
더럽다 : 1. 때, 찌끼 같은것이 많아서 보기 흉하다 2. 구린내나 냄새가 역하다 3. 못되고 비루하거나 린색하다 4. 낡은 사회에서 사회가 썩을대로 썩어 어지럽다 5.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시시하고 고약하다
지저분하다 : 1. 깨끗하지 못하게 어지럽고 거칠다 2. 행동이 너절하거나 질서가 없다 3. 보기 싫게 밉고 더럽다


  세 가지 사전은 ‘오염되다’를 ‘더럽다’라는 낱말을 써서 다룹니다. 남녘 두 사전은 ‘더럽다’를 ‘지저분하다’라는 낱말을 써서 풀이해요. 그리고 세 사전은 모두 ‘지저분하다’를 ‘더럽다’라는 낱말을 써서 풀이하지요. 뒤죽박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뜻풀이가 엉망인 셈입니다. 이 같은 말풀이로는 한국말 ‘더럽다·지저분하다’가 어떻게 다른가를 알 수 없고, 어떻게 가누어서 써야 알맞은가를 알 길이 없어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오염되다(汚染-) : → 더러워지다. 물들다
더럽다 : 1. 때, 먼지, 찌꺼기가 묻거나 붙다 2. 물에 찌꺼기나 다른 것이 섞여서 맑지 않다 3. 거칠거나 어수선하게 여기저기 널려서 보기에 나쁘다 4. 말이나 몸짓이 그릇되거나 막되거나 좁다 5. 어떤 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마음이 나쁘다
지저분하다 : 1. 거칠거나 어수선하게 여기저기 널려서 보기에 나쁘다 2. 때, 먼지, 찌꺼기가 덕지덕지 붙거나 묻다 3. 말이나 몸짓이 그릇됙거나 막되거나 좁다


  한자말 ‘오염되다’는 “→ 더러워지다(더럽게 되다). 물들다”처럼 다루면 됩니다. 이러면서 ‘더럽다’하고 ‘물들다’를 알맞게 풀이하면 됩니다. 무엇보다도 ‘더럽다·지저분하다’를 찬찬히 살피고 가누어서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알맞게 쓰도록 도와야지요. 이러면서 ‘추레하다’나 ‘꾀죄죄하다’ 같은 비슷한말을 ‘더럽다·지저분하다’ 뜻풀이에서 함께 밝혀 볼 수 있어요.

  한국말사전은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배우도록 이끄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리송하거나 뒤죽박죽인 말풀이는 이제 걷어내고, 낱말을 하나하나 제대로 다루는 데에 마음을 쏟아야지 싶어요. 이제 종이사전은 목숨을 다했다는 생각을 얼른 떨치고, 아직 한국에서는 참다운 종이사전이 제대로 나온 적이 아직 없다는 대목을 깨달아야지 싶어요. 참다운 한국말사전이 없으니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참답게 못 배워요. 제대로 된 한국말사전이 없기에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엉터리로 쓰지만 이를 가다듬거나 보듬을 길이 없어요. 2016.12.21.물.ㅅㄴㄹ


* 글쓴이 *
|최종규|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과 자료조사부장을 지냈다. 전남 고흥에서 ‘새로운 한국말사전 배움모임, 숲노래’를 꾸린다.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책 읽는 즑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 같은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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