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다, 보다 - 김지연 사진집
김지연 지음 / 아카이브류가헌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사진책 읽기 347



나뭇가지에 걸린 빨간 넥타이가 일깨운 사진

― 놓다, 보다

 김지연 글·사진

 아카이브류가헌 펴냄, 2016.10.31. 22000원



  사진을 찍는 김지연 님은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를 꾸리기도 했고, 전주에서 ‘서학동사진관’을 꾸리기도 합니다. 짧지 않은 나날을 ‘사진 + 마을’로 이야기를 엮으면서 살림을 노래한다고 할 만합니다. 사진으로 마을을 담고, 마을 이야기를 사진으로 빚으며, 이 마을 이야기를 차근차근 사진전시나 사진책으로 일구는 길을 걷는데,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을 ‘빈 방’에서 보았다고 해요.


  사람들한테서 잊혀진, 그러니까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은 ‘빈 방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던 어느 날이었다는데, ‘빈 방에서 아주 조용히 목숨을 끊었’으나 둘레에서 누구도 알지 못하던, 그런 죽음을 마주한 적이 있다지요. 그런데 이에 앞서 숲길에서 ‘빨간 넥타이’를 보았대요. 나뭇가지에 덩그러니 걸린 빨간 넥타이는 무엇을 말했을까요? 어떤 분이 넥타이를 숲길 나뭇가지에 걸었을까요? 넥타이를 숲길 나뭇가지에 묶으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빨강 넥타이] 이른 아침 숲길 나뭇가지에 걸린 빨강 넥타이 하나가 이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얼마 전에 빈 집 촬영하다가 목을 매고 자살한 시신을 목격한 적이 있다. 아니 실제로는 이 넥타이 풍경이 먼저였다. (12쪽)



  사진책 《놓다, 보다》(아카이브류가헌,2016)는 죽음하고 삶이 맞물린 자리를 곰곰이 돌아보는 손길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누군가 스치며 지나간 자리를 되새깁니다. 오늘 그 자리에 서는 사진가 모습을 돌아봅니다. 앞으로 그 자리로 스치고 지나가거나 가만히 찾아들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여주어요.



[새장] 나는 자유가 생명이라고 말한다. 그래 놓고 적당히 안주하기를 바란다. 한 쪽 다리가 장애인 새 한 쌍. 새장 안에 갇혀 있는 새를 나무에 걸어 놓는다. (14쪽)



  새장이란 어디일까요. 새장 안이 갇힌 곳일는지요, 아니면 새장 밖이 갇힌 곳일는지요. 우리는 새장 밖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텐데, 참말 이 나라나 사회는 자유로울는지 물을 만합니다.


  이 사회에는 우리 눈에만 안 보일 뿐인 쇠그물이 촘촘하게 선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쳐진 ‘블랙리스트’에 매일 수 있어요. 나도 모르게 내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걸릴 수 있어요. 거꾸로 이웃이나 동무를 내 마음속에서 금을 긋거나 고개를 돌리면서 넌지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몸짓이 될 수 있습니다.



[모시 적삼] 어머니는 내게 작은 모시 적삼을 만들어 주었다. 왜 이렇게 작게 만들었냐고 하니 네가 작기 때문이라고 했다. (18쪽)



  사진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참으로 작을는지 몰라요. 그저 찍고 그저 남기고 그저 보여줄 뿐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사진 한 장으로 찍은 모습에 깃드는 이야기가 두고두고 흐를 수 있어요. 어느 날 일어난 일을 놓고서 다시금 새기고 거듭 되뇌면서 마음을 다스리거나 달랠 수 있습니다.


  모시 적삼 한 벌에서 이야기가 번집니다. 찔레꽃 한 송이에서 이야기가 자랍니다. 걸상 하나에서 이야기가 솟습니다. 흔해서 지나치던 것이지만 사진으로 다시 바라보면서 예전에 지나친 모습을 깨닫습니다. 수수해서 안 들여다보던 것이지만 사진으로 새롭게 마주하면서 오늘 문득 한 가지를 배우기도 합니다.



[찔레꽃] 5월에 찔레꽃을 보면 장암 할머니 생각이 난다. 제남마을에 얼마 전 92세로 돌아가신 장암 할머니. ‘낡은 방’을 찍은 계기로 그 집에 자주 들어 다녔다. 산에서 찔레꽃을 꺾어 가시를 떼고 한 다발 손에 안겨 드리며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멋지게 포즈를 지었다. (46쪽)



  연필을 보면 그림을 그리고 싶을 수 있습니다. 연필이 있기에 글을 쓰고 싶을 수 있습니다. 몽당연필인지 새 연필인지 살피면서 몽당연필일 적에는 이 연필을 쥐고 적바림한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떠올릴 수 있어요. 새 연필을 보면서 앞으로 새롭게 그릴 이야기를 헤아릴 수 있어요. 아이가 쥔 연필하고 할아버지가 쥔 연필 사이에 다르게 흐르는 숨결을 살필 수 있어요. 시험을 치르는 곳에서 사각이는 연필 소리랑, 그리운 이한테 편지를 쓰는 자리에서 서걱이는 연필 소리를 나란히 생각해 볼 수 있어요.


  닳은 호미 한 자루에서 살림새를 읽을 수 있어요. 닳은 호미 한 자루 옆에 놓은 새 호미 한 자루에서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어요. 임자를 잃고 먼지를 먹는 호미 한 자루를 바라보면서 지난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어요.


  놓인 곳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놓다’하고 ‘보다’가 맞물리면서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사진책 《놓다, 보다》는 두 몸짓이 어우러지는 곳을 사진으로 잇는 마음을 드러냅니다.



[두 개의 의자] 왜 의자를 보면 앉고 싶을까? 몸을 내려놓고 싶다.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 (64쪽)



  나뭇가지에 걸린 빨간 넥타이가 일깨운 사진입니다. 나뭇가지에 빨간 넥타이를 건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새로 배우는 사진입니다. 나뭇가지에 앞으로 다른 넥타이가 걸릴는지, 이제 나뭇가지에 넥타이가 걸릴 일은 없을는지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되새기는 사진입니다.


  우리 삶은 앞으로도 나뭇가지에 넥타이를 걸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길을 걸을까요? 아니면 이제 나뭇가지를 보면 그네를 걸어 아이들을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길을 걸을까요?


  나뭇가지에 걸린 넥타이는 슬픔하고 아픔을 애틋하게 보여준다면, 나뭇가지에 거는 그네는 기쁨하고 웃음을 살뜰하게 보여줄 수 있겠지요. 사진 한 장에 앞서 우리 몸짓이 늘 즐거움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7.1.2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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