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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전사 - 책으로 만나는 풀꽃평화 1
쿤가 삼텐 데와창 지음, 홍성녕 옮김 / 그물코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티벳은 관광지가 아닌 삶터이자 싸움터
- <티벳전사>를 읽고
<1> 티벳은 관광지가 아닙니다
인도나 티벳이나 몽골에 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 가 보았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습니다. 제 둘레에도 돈을 모아 한두 달이나 한 해 가까이까지 인도나 티벳이나 몽골 여행을 다녀오는 분들이 있어요. 이렇게 다녀온 분들은 한결같이 참 좋았다고 말합니다.
좋을 만하겠죠? 티없이 맑은 하늘, 수수하고 투박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움과 멋을 간직한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그곳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얼마나 즐거웠겠습니까.
.. 티벳의 진실은 여행사 카달로그나 여성지의 명상 소개 코너
속이 아니라 차라리 내셔널지오그래픽 오지 리포트 속에 있지
않을까 .. <옮긴이 말, 306쪽>
지금 티벳은 중국과 싸우고 있습니다. 참 오랫동안 싸우고 있습니다. 중국은 문화혁명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티벳으로 쳐들어갔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올리고 넉넉히 즐기던 티벳 문화는 하루아침에 '반동'과 '봉건'이란 이름으로 내몰리며 무너지고 부서지고 사라졌습니다. 문화유산도 부서졌으나 깨끗하던 티벳 자연도 무너졌습니다. 들짐승 목숨을 사람 목숨과 마찬가지로 소중히 여기던 문화와 사회는 중국 인민군이 부순 건물과 함께 주저앉고 맙니다.
남아 있는 사원은 옛 자취를 보여주는 유물이 될 뿐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중국의 여러 성 가운데 하나가 된 티벳'의 삶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티벳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볼 수 있는 것은 '지난날 유물'일 뿐 '살아 있는 역사나 문화'가 되지 못해요.
그래도 그런 것이나마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간데없이 무너졌어요. 사람이고 짐승이고 자연이고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현실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면, 침략과 식민정책으로 삶터를 빼앗기고 자기 정체마저 잃어버린 사람들 현실을 돌아볼 수 없다면, 티벳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정부 병기 창고에서 무기를 가져오기 위해 남걀강에서 라사
로 돌아갔던 일행은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노르불링카에서
로상 예시를 잃고 말았다. 그들은 중국군이 어떻게 라사를 포
격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살상했는지 말해 주었다 .. <239쪽>
.. 1910년에 중국은 리탕의 바 지역을 침공했다. 많은 사원이
약탈당했으며 지역 책임자들은 행정권을 박탈당했다. 대사원
관을 포함한 리탕곤첸의 고위 라마 70명이 참수당했다. 중국
군은 사원을 점령했고, 승려들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을 감금시켰다 .. <54쪽>
<2> 잃어버릴 수 없는 역사
<티벳전사>는 중국에게 침략을 받아 게릴라 부대로 맞선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쓴 책(회고록)입니다. 잘 조직되었으며 최신예 무기를 갖춘 중국 인민군에게 맞서기에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장비와 조직도 안 된 게릴라들이었기에 밀리고 밀렸답니다. 끝내 인도로 망명할 수밖에 없던 이들은, 지금도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자유 티벳'을 되찾을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 물새가 알을 낳기 시작할 때도 기본적 지시 사항이 발령
된다. 이 기간 동안 그 사항들이 준수되었는지 확인하기 위
해 강과 호수로 사람이 보내진다. 사람의 방해로 새들이
알을 두고 떠나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4월에는 새로 태어난 티벳 영양을 다른 동물들과 인간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비슷한 지시 사항이 공포되었다. 물고
기도 산란기에는 같은 방식을 적용해 보호했다 .. <55쪽>
우리도 이와 비슷한 역사가 있어서 돌아볼 수 있는데, 자유로운 나라를 잃은 뒤에 오랜 세월 이어온 전통과 문화와 사회를 간직하거나 지키기 참 어렵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 삶과 문화를 지키기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말과 글도 잃고 얼과 넋마저 빼앗겼습니다. 식민지 찌꺼기는 지금도 많이 남았습니다. 더구나 식민지 일본에게 아첨하고 아양 떨던 사람들은 큰 권력을 얻어 아직도 떵떵거리고 있어요.
티벳은 어떨까요? 티벳도 한 세대가 넘는 세월을 중국 식민지로 살고 있습니다. 갓 태어나는 아이들과 한참 자라는 젊은이들은 티벳 문화와 삶을 얼마나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며 헤아리고 있을까요? "물새가 알을 낳는 때"를 알고 있을까요? "물고기가 알을 낳을 때"는 조심스럽게 지켜줘야 하는 것을 알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들(일꾼)의 품을 결코 돈으로 보상하지 않았다.(57쪽)"고 합니다. 우리에게 품앗이와 울력이 있었듯 티벳사람도 돈으로 품을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일을 돕고 함께 어울려 놀았습니다.
.. 이렇게 소똥과 나무를 태우다가 몇 년이 지나면 부엌의 벽
과 천정은 그을음으로 새까맣게 변했다. 우리는 이 그을음으로
잉크를 만들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횃불이 켜졌다 .. <59쪽>
.. 티벳에서 여관은 '멀리 있는 집'과 같다. 손님들은 가족의
일원처럼 대접받는다. 손님은 부엌에 들어가도 되며 하고 싶
은 일은 무엇이든지 알아서 할 수 있다. 음식과 음료는 항상
바로 곁에 있다. 혼자 쓰는 방은 없지만 소지품 걱정은 할 필
요가 없었다. 모든 일에 관해 대접받는 것이다 .. <113쪽>
쓰레기가 없는 삶, 쓰레기라는 것을 모르는 삶, 도둑이 없는 삶, 도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삶이 티벳사람들이 누려온 오랜 문화이자 전통입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웃나라가 마구잡이로 쳐들어와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폭압 위정자가 독재로 온 나라 사람들을 괴롭히고 짓밟으며 등처먹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티벳에서 강과 시내에 놓은 다리는 희귀한 사치품이었다. 겨울에는 물이 단단히 얼어붙어서 두껍게 언 얼음은 짐을 가득 진 야크의 무게도 견뎌 낼 정도였다. 문제가 발생하기로 유명한 계절은 역시 얼음이 녹는 따뜻한 철이다.(132쪽)"라는 말을 곱씹어 봅니다. 따로 다리를 놓지 않아도 늘 건널 수 있는 곳에서는 다리를 놓는 일은 그야말로 '사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나라에서는 이와 다르겠죠? 이런 것이 나라나 겨레마다 '다른 문화이자 전통'입니다.
이처럼 다른 문화와 전통을 '반동'이라느니 '봉건'이라느니 무어라는 이름으로 짓밟거나 부수어도 좋을까요? 실제로는 석유를 노리고 전후 재건 사업을 노리는 한편 새무기를 시험하려는 목적이었지만 겉으로는 '이라크 민주와 평화'를 지키겠다며 쳐들어간 미국입니다. 일본은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미개한 나라가 발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민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티벳으로 쳐들어온 중국입니다.
<3> 우리가 다 함께 찾아야 할 것
지금 우리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자유로운 나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소말리아로, 이라크로 군사를 보내라고 하면 보내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힘없는 이를 괴롭히는 침략전쟁을 치르는 돈마저 보내야 합니다. 이 나라 농민들이 죄다 죽어갈 판인데도 쌀을 비롯한 농산물 시장을 열어야 합니다. 있는 사람 재산은 더욱 늘어나고 없는 사람은 팔 재산도 없으나, 빈부 차이는 자꾸만 더욱 벌어집니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일은 문제가 안 되지만, 영어를 못하면 사람 대접을 못 받고 일자리 얻기도 어렵습니다. 온통 서양 문물과 문화가 우리 얼과 넋을 다스립니다. 이런 형편을 생각했을 때, 우리가 누린다는 '자유'란 도대체 어떤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처음에 중국 측은 이제까지 사원이 담당해 왔던 기능을
계속 수행하도록 허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약속은 지켜지
지 않았다. 사원들은 남김없이 모두 파괴당했고, 그 안에
보관되어 왔던 성스러운 경전, 불상들은 약탈되고 망가져
버렸다. 승려들은 치욕을 당했고 고문에 시달렸다. 종교적
수행은 금지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법의를 걸친 자는 인
민의 적이며, 인민의 형제와 같은 중국 해방군의 적이라고
선포했다 .. <211쪽>
밥 굶는 사람이 요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날처럼 굶는 사람이 넘쳐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 사람이 굶어죽는 굶주림은 아닙니다. 1950~60년대 신문기사를 보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고, 아기를 부잣집 문간에 버리는 일이 아주 흔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사는데, '먹고살기 힘들다'기보다 '더 많은 돈을 못 번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알맞게 쓰고 누리고 즐기면서 버리는 것이 거의 없던 소중한 문화와 얼과 것을 잃었기에 경제 형편이 참으로 많이 나아졌음에도 이런 것을 제대로 못 느끼고 있습니다. 평화롭게 지내는 때는 평화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민주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나아가야 좋을지를 앞에 두고 망설이거나 갈팡질팡하고 있지 싶습니다.
.. 나의 바람과 소망은 자유를 누리는 행운을 가진 사람 모두
가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그들보다 적은 자유만을 누리는 사
람들-그 중에서도 티벳사람들도 포함될 것이다-을 돕는 데 자
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 <304쪽>
'자유 티벳'이 아닌 '중국의 여러 성 가운데 하나인 티벳'으로 바뀐 역사는 그대로 이어져 세월이 자꾸자꾸 흘러갑니다. 우리가 참답게 알아야 할 티벳 모습은 보지 못한 채 명상이니 불교 유적지니 깨끗한 자연이니 뭐니 하는 겉모습만으로 티벳을 생각하거나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잃고 놓치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거나 찾거나 생각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티벳이든 중국이든 북녘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이런 다른 나라 삶과 모습과 문화도 엉뚱하거나 잘못된 모습으로 생각하거나 느끼고 있지 않을까요?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비틀고 일본이 한국 옛 역사를 비틀어도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거나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고구려 역사가 어떠한지, 우리 옛 역사가 어떠한지를 제대로 안 배우는 한편, 배우거나 알려고 애쓰지도 않거든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돌아보면서 우리를 둘러싼 뭇사람과 자연과 목숨붙이를 헤아리지 않거든요.
<티벳전사>는 티벳사람들이 겪어야 한 슬픈 역사를 말하는 한편, '자유 티벳'일 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덤덤하게 들려줍니다. 게릴라 전사가 되어 중국 인민군과 싸운 이야기도 들려주지만, "티벳사람은 이렇게 살아왔다" 하는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들려줍니다.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받아 적은 '도르지 왕디 데와창'은 "티벳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우리 세대(침공당한 뒤 태어나서 자란 세대)에게 그렇게 생생하게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다.(25쪽)"고 말합니다. <티벳전사>는 티벳사람들이 자기 역사와 삶과 문화와 사회를 잊지 않고 간직하고자 남긴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티벳 젊은이에게 참으로 소중하겠다 싶어요.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우리 나라로 온다고 했을 때 한국 정부에게 압력을 넣어 들어오지 못하게 한 중국이고, 티벳 역사와 사회를 감춘 중국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기록을 읽으며 참된 티벳 모습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한편, 우리 삶과 사회와 역사에서 잃어버린 모습, 놓치거나 지나쳐 버린 소중한 모습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4338.1.28.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