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숟가락 11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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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63



평화로운 살림을 바라보는 두 눈길

― 은빛 숟가락 11

 오자와 마리 글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6.10.28. 5000원



  오자와 마리 님은 이녁 만화에서 늘 ‘평화로운 살림’으로 하루를 짓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립니다. 어쩜 이렇게 착학거나 참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만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끌어요. 다툼도 미움도 시샘도 마음에 안 담는 ‘평화로운 주인공’한테는 마치 그늘이나 그림자가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늘이나 그림자처럼 어두운 구석이 없기 때문에 평화로울까요? 평화롭기 때문에 그늘이나 그림자처럼 어두운 구석이 없다고 여길 만할까요? 아니면 다른 모습이나 까닭이 있을까요?



“앗, 아이스크림을 집에서 만들 수 있어?” “응, 디저트로 만들어 볼까?” “응.” (5쪽)


“넌 정말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구나.” “응. 엄마도 아이스크림 좋아하니까 분명 엄마를 닮은 거야.” (8쪽)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6) 열한째 권 첫머리는 ‘집에서 빚는 아이스크림’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이스크림이라면 으레 바깥에서 사다가 먹는 줄로만 아는 ‘아버지가 다른 어린 동생’한테 주인공 리츠는 ‘집에서 한결 재미나며 맛나게 아이스크림을 빚을’ 수 있다고 찬찬히 알려줍니다. 몸소 부엌일을 하고, 이때에 어린 동생이 곁에서 거들도록 이끌어요. ‘입양아’였던 주인공 리츠는 어릴 적부터 ‘낳은 어머니·아버지’ 없이 자랐고, 뒤늦게 ‘낳은 어머니’를 알았어요. 그렇지만 주인공 리츠는 이 대목에서 딱히 흔들리지 않아요. ‘두 어머니’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으며, ‘기른 어머니’를 ‘어머니’로 여기면서 ‘기른 두 어버이가 그동안 베푼 사랑’을 즐거우면서도 고맙게 헤아려요.


  이러다가 뒤늦게 안 ‘아버지 다른 어린 동생’이 ‘낳은 어머니’하고 지내는 집에서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고작 아이스크림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보면서 이 어린 동생한테 도시락을 싸서 꼬박꼬박 챙겨 주었고, ‘집에서 밥을 지어 여럿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누리는 기쁨’을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그렇다 해도 별로 상관없어. 두근거림 없는 연애도 재미있게 그리면 그만이야. 어떤 소재라도 재미있게 그린다면 말이지. 그게 안 되면 경험치를 올리는 수밖에 없어. 만화는 궁극적 엔터테인먼트거든. 그야말로 압도적 불운이나 불행을 경험하면 강해지지. 그런 환경히 제작 의욕으로도 연결되고 말야. 캐릭터도 좀더 깊이가 있었으면 싶네.” ‘살아온 방식도 인격도 전부 부정당한 느낌. 게다가 내용에 대한 언급은 전혀 안 했어. 난 재능이 없는 걸까?’ (18∼19쪽)



  겉으로만 본다면 주인공 리츠는 아주 눈부실 만해요. 키가 크고 잘생긴데다가 똑똑하다고 해요. 그러나 리츠는 이런 겉모습을 따지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리츠로서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곁에 두면서 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숨결을 한결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돌보고 싶은 꿈을 생각합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기른 어머니’가 몸져누우니 학교가 아닌 집을 고르던 리츠예요. 대학교란 대수롭지 않으며, 정 가야 한다면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 다른 두 동생’을 보살피고 집살림을 꾸리다가 나중에 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여겨요. 남들은 리츠한테서 겉모습을 보려 하지만, 리츠는 스스로 속마음을 생각할 뿐입니다.


  그래서 리츠는 ‘남들이 수수하게 보는 아가씨’가 리츠한테는 ‘수수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느껴요. 리츠는 겉모습이 아닌 마음을 바라보면서 읽으려는 사람이기에, ‘눈을 감고 마음으로 따스하게 다가오는’ 사람들 숨결을 즐거우면서 반갑게 맞이하지요.



‘가정환경은 평화롭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 남친은 미남에 다정하다. 난 별로 특별한 것 없는 수수한 여자지만, 만화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미카리든 누구에게든 지지 않아.’ (29쪽)


“정말이네. 리츠가 입상했어. 너, 영화감독이 목표야?” “아니, 카오루 부장님이 멋대로 응모했어. 그냥 남매싸움을 찍었을 뿐인데, 카나데가 들떴지 뭐야.” (45쪽)



  그런데 말이에요, 주인공 리츠는 이런 마음이나 몸짓이어도, 리츠를 둘러싼 사람들은 아무래도 겉모습에 휘둘립니다. 리츠를 남자친구로 둔 아가씨는 ‘너무 수수하고 너무 평화로우며 너무 따스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이녁이 그리는 만화가 너무 밋밋하면서 재미가 없구나 하고 생각해 버립니다. 마치 ‘타고난 불행을 잔뜩 짊어져야’ 재미나면서 톡톡 튀거나 새롭거나 멋진 만화를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말아요.



‘행복한 얼굴을 보고 나도 행복해진다. ‘뭔가 괴로운 일이 있어도 맛있는 밥 먹으면 우선은 기운이 나잖아.’ 그런 말을 해 준 그 애를 정말 좋아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내일부터는 다시, 제대로 앞을 보고 걷자.’ (98쪽)



  만화책 《은빛 숟가락》에 나오는 사람들은 우리 곁에서 어렵잖이 마주칠 수 있을 만하다고 느낍니다. 대단하거나 남다른 이들이 《은빛 숟가락》에 나오지 않아요. 아주 수수하거나 투박한 사람들이 이 만화책에 나옵니다. 이들은 때때로 즐겁게 제 길을 걷지만, 때때로 스스로 슬픔에 사로잡혀서 엉거주춤하거나 맴돌거나 수렁에 빠지곤 합니다.


  주인공 리츠는 ‘주인공답다’기보다 ‘리츠다운’ 마음으로 아픔을 툭툭 털어냅니다. 먼저, 제 앞에 놓인 모든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받아들입니다. 이러고 나서, 이 길이 가시밭길이든 수렁길이든 진흙길이든 대수로이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이녁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제대로 보고서 나아가자고 생각해요. 아프다고 아픔에 젖지 않고 슬프다고 슬픔에 사로잡히지 않아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늘 새롭게 맛난 밥을 차려 주는 마음처럼, 기쁠 적에는 기쁨을 나누도록 밥을 짓고 슬플 적에는 슬픔을 달래도록 밥을 짓는 마음마냥, 스스로 차분하면서 고요하게 마음속을 바라보면서 숟가락을 손에 쥡니다.


  평화로운 살림은 평화에서 태어나요. 평화로운 살림에서는 평화로운 이야기가 흘러요. 평화로운 살림이기에 평화로운 사랑을 그릴 만해요. 리츠를 좋아하는 아가씨가 이 대목을 곧 깨달으면서 제대로 볼 수 있기를 빕니다. 모든 만화는 팽팽한 다툼이나 오르락내리락 고빗사위가 흘러야 하지 않습니다. 밀고 당기거나 악을 쓰거나 눈물을 쥐어짜거나 웃음이 마구 터져야만 하지도 않습니다. 겨울에 동백꽃이 피고 유채꽃이 피듯이, 새봄에 꽃샘바람을 맞으며 맑은 꽃이 피듯이, 가을에 나락이 익듯이, 드센 바람이 불어도 구름은 파란 하늘을 흐르듯이, 한겨울에도 해님이 눈부시듯이, 평화로운 살림에서는 오직 평화로운 살림이기에 그려서 보일 수 있는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있어요. 이 아름다움하고 사랑스러움을 가슴으로 넉넉히 안아 보셔요. 2016.12.2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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