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소중하대요
일베 포르티스 데 이에로니미스 글.그림, 이승수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02
‘가시 돋친’ 고슴도치라서 슬프니?
― 내가 소중하대요
엘베 포르티스 데 이에로니미스 글·그림
이승수 옮김
크레용하우스 펴냄, 2008.6.15. 12000원
가시가 돋친 몸으로 태어났기에 슬프다고 하는 고슴도치가 있어요. 고슴도치는 동무를 사귀고 싶지만 숲에서 모두 고슴도치 가시 때문에 무섭다면서 꽁무니를 뺀대요. 더구나 고슴도치는 저랑 같은 고슴도치를 만나지도 못하면서 외롭답니다. 그래도 이 고슴도치한테는 작은 쥐가 곁에 있어요. 엉엉 울 적에 쥐가 살며시 다가와서 왜 그러느냐고 묻고, 고슴도치가 끝내 동무를 사귀지 못했다면서 슬퍼할 적에도 고슴도치를 달래 주어요.
어쩌면 이 작은 쥐야말로 고슴도치한테는 둘도 없이 멋진 동무라 할 만해요. 고슴도치는 다른 동무들, 이를테면 토끼나 다람쥐나 새나 거북이나 고양이한테만 동무가 되기를 바라는지 모르는데, 늘 말벗이 되면서 도움말을 들려주는 ‘쥐’가 있는 줄 미처 못 느끼지 싶기도 합니다.
고슴도치가 숲 속에서 엉엉 울고 있었어요. “고슴도치야, 왜 우니?” 쥐가 고슴도치에게 물었어요. “내 몸에 난 삐죽삐죽한 가시 때문에 슬퍼서 울고 있어.” (3∼4쪽)
그림책 《내가 소중하대요》(크레용하우스,2008)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을 빚은 엘베 포르티스 데 이에로니미스 님은 이탈리아에서 1920년에 태어나서 1995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해요. 한국에는 《내가 소중하대요》 한 권만 소개되었다는데, 무척 살가우면서 포근한 그림과 이야기를 베푸는구나 싶습니다.
고슴도치를 달래며 북돋우는 쥐가 동무를 아끼는 마음을 그리는 《내가 소중하대요》를 보면, 고슴도치한테 ‘내 몸’을 미워하거나 싫어하기보다 ‘내 삶’을 새롭게 그리라고 하는 대목이 무척 돋보이기도 해요. 이 그림책을 가만히 살피면, 고슴도치는 숲짐승이 모두 저를 무서워하면서 내뺀다지만 쥐만큼은 내빼지 않아요. 게다가 쥐는 고슴도치가 털어놓는 푸념하고 슬픔을 가만히 귀여겨들어요. 이 푸념하고 슬픔을 모두 귀여겨들은 뒤 고슴도치한테 가장 애타고 도움이 될 말을 부드러이 들려주어요.
쥐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어요. “고슴도치야, 네가 가시를 없애면 무섭고 힘센 동물들이 금세 너를 잡아먹을 거야. 너의 가시는 너를 지켜 주는 걱란다.” 고슴도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래도 난 고슴도치로 태어나서 너무 슬퍼.” (18쪽)
고슴도치는 쥐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서 차분해집니다. 그렇지만 이내 슬픔에 잠겨요. 그래서 쥐는 다시 고슴도치를 달랠 말을 생각해요. 고슴도치더러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몸’에는 다 뜻이 있다면서, 그러나 그 테두리에서만 머물지 말고 ‘스스로 새롭게 누릴 수 있는 꿈’을 지어 보자고 하지요.
이런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읽다가 문득 생각해 보았어요. 참말로 나한테도 이렇게 슬기롭고 살가이 도움말을 베푸는 동무가 있으면 좋겠구나 하고요. 그리고 나부터 내 곁에 있는 사람들한테 이처럼 슬기롭고 살가이 도움말을 들려줄 수 있는 동무로 지내자는 생각이 들어요.
“고슴도치야, 슬퍼하지 마. 우리 즐거운 상상을 해 보자. 눈을 감고 내 얘기를 잘 들어 봐. 밤하늘의 달님이 모습을 감춰서 숲 속이 온통 캄캄해. 그런데 네 가시에 수많은 반딧불이 달라붙는 거야. 너는 달님처럼 빛을 내면서 숲 속을 환하게 비춰 줄거야.” 쥐가 말했어요. 고슴도치는 자기가 밝은 보름달처럼 숲 속을 환히 비추는 상상을 했답니다. (20쪽)
그림책 《내가 소중하대요》에 나오는 고슴도치는 쥐가 들려준 말을 듣고 이제 눈물을 그칠 수 있을까요? 언제나 고슴도치 곁에 있으면서 고슴도치를 살살 달래고 북돋아 주는 쥐야말로 둘도 없이 사랑스러운 동무인 줄 깨달을 수 있을까요?
“괴로운 슬픔”은 이제 털어내고 “즐거운 생각”을 해 보자고 하는 말을 가슴으로 받아들여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까요? 비록 몸에 가시가 돋쳤기에 동무들이 이 가시를 ‘겉모습으로만 보고’ 말아 무섭다고 하지만, 이 가시로 고슴도치가 할 수 있는 즐겁고 기쁘며 멋지고 신나는 일이 많은 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키가 작은 몸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더듬이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힘이 여린 몸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어딘가 모자라는 몸’으로 태어날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즐겁고 씩씩하게 꿈을 이룰 수 있는 몸’으로 다 다르게 태어났다고 할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키나 힘이나 몸짓으로 살아야 하지 않아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얼굴이나 몸매로 살아야 하지 않지요.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숨결로 아름답게 어우러질 만해요.
고슴도치는 고슴도치대로 함함하고, 쥐는 쥐대로 똑똑하며, 새는 새대로 곱지요. 너는 너대로 상냥하고, 나는 나대로 참하며, 우리는 우리대로 멋스러워요. ‘가시 돋친 고슴도치’라서 슬플 수 있지만, ‘가시 돋친 고슴도치’이기 때문에 무서운 짐승한테서 숲짐승 동무를 지켜 줄 수 있어요. ‘가시 돋친 고슴도치’이기 때문에 이 가시로 동무를 괴롭힐 수 있을 테지만, 바로 이 가시에 꽃잎이나 열매를 잔뜩 매달면서 매우 신나는 놀이나 잔치를 지을 수 있어요.
우리가 서로 동무라 한다면,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을 바라보면서 동무가 되어요. 참말로 동무라면, 마음을 달래고 다독이면서 어루만질 줄 아는 사랑스러운 숨결이라고 생각해요. 2016.12.18.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