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가 이쁜 문학의전당 시인선 221
전해선 지음 / 문학의전당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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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66



뒤가 이쁜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 한 자락

― 뒤가 이쁜

 전해선 글

 문학의전당 펴냄, 2016.1.27. 9000원



  부산에서 살며 시를 짓는 전해선 님은 《뒤가 이쁜》(문학의전당,2016)이라는 첫 시집을 선보입니다. 시집 이름이기도 한 ‘뒤가 이쁜’이라는 시는 자작나무 뒷모습을 보면서, 또 자작잎을 바라보면서, 이러다가 우리네 삶과 살림을 들여다보면서 느끼는 상냥한 마음이라고 봅니다. 얼핏 보면 수수하지만, 가만히 살피면 뒤도 이쁘고 앞도 이쁘며 옆도 이쁜 이웃이며 동무이고 숲이고 풀 한 포기랑 나무 한 그루예요.



쏙닥쏙닥 / 세 여자가 숭덩숭덩 쑥을 캔다 / 대바구니 대신 비닐봉지 속에 / 차곡차곡 쌓이는 아득한 이야기 속에 / 설핏설핏 나타나는 옛사람 / 몽당치마 저고리 앞섶 검댕도 따라 나오고 (쑥떡)


밥 짓는 여자의 웃음이 환합니다 /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자는 / 자기 여자를 웃게 하는 남자입니다 (좋은 남자)



  쑥을 캐는 이야기가 시 한 줄로 태어납니다. 오늘 이곳에서 쑥을 캐다가 아스라이 먼 옛날에도 쑥을 캤을 숱한 사람들을 그립니다. 옛사람 손길이 오늘까지 이르며 똑같이 쑥을 캐고 쑥내음으로 젖어드는 숨결이 시로 태어납니다.


  그저 수수하게 늘 하는 집안일 가운데 하나인 밥짓기를 놓고도 시 한 줄이 태어납니다. 밥짓기를 지겨워 할 수 있지만, 밥짓기를 웃음으로 할 수 있어요. 밥짓기를 가시내가 도맡을 수 있으나 사내한테 이 일을 넘길 수 있고, 아이들이 찬찬히 배우도록 이끌 수 있어요. 아무튼 밥짓기를 누가 하더라도 우리는 밥짓기를 알아야 해요. 내가 밥짓기를 모른다면 다른 사람한테 밥짓기를 못 가르치거나 못 물려주거든요.



날선 칼은 무섭습니다 / 동작이 어정뜬 사람은 날선 것들 앞에 서면 / 주눅이 듭니다 언젠가 / 새 칼을 차마 쓰지 못하곡 / 헌 칼만 힘들게 썼드랬습니다 (무딘 칼날)


누군가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 자작자작 자작자작 자작자작 / 신명에 겨워 웃다가 자지러지고 / 뒤집어져야만 은빛으로 떠는 너는 (뒤가 이쁜)



  ‘무딘 칼날’ 이야기를 읽다가 우리 집 부엌칼을 문득 떠올립니다. 참말로 무딘 칼날을 무덤덤하게 오래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뒤가 이쁜》이라는 시집을 빚은 분도 무딘 칼날을 힘겹게 썼다고 하는데, 이 시를 읽는 저도 한동안 무딘 칼날을 힘겹게 쓰곤 했습니다.


  날선 칼은 어느 모로 무섭다고 할 수 있어요. 날선 칼이니 손이 베이기 쉽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날선 칼이어야 배추도 무도 잘 썰어요. 날선 칼이어야 도마질이 수월해요. 숫돌로 날을 잘 세워서 부엌칼을 손에 쥐어야 억지스레 힘을 주지 않아도 도마질이 수월해요.



고동을 삶아 먹을 때 하시던 엄마의 말씀 / 가서 울타리 가시 좀 잘라 오너라 / 손가락에 박힌 가시 빼낼 적에 엄마는 / 그 나무가시로 살 속 가시를 빼내곤 하셨지 / 나무가시는 독이 없어 괜찮다며 / 밥상을 물리고 나면 다시금 / 가시 좀 잘라오라 하시던 (탱자나무)



  자작나무 잎사귀를 바라보다가 시 한 줄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고동 하나 삶아서 먹다가 어릴 적에 이녁 어머니가 탱자나무 가시를 잘라 오라고 이르던 말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탱자나무는 울타리도 되고, 하야말간 꽃을 베풀기도 하고, 향긋한 열매 냄새를 퍼뜨리기도 하는데, 이쑤시개 구실도 하면서 우리 곁에 있다는군요.


  모르는 노릇이지만, 시를 쓴 전해선 님은 어릴 적에 ‘알맞게 작고 야무지게 단단한 노랗게 잘 익은 탱자알’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면서 흔히 놀았지 싶어요. 탱자알은 멋진 구슬이고, 재미난 놀잇감이며, 부드러우면서 살가운 숨결이거든요.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 언니 / 으응 /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는 말에 / 기다린 만큼의 실망 / 누가 똑같은 마음이라 말한 적 없어 / 괜찮다며 손사래 치는 순간 / 보고 싶었어, 라는 말이 / 유월의 햇빛에 바래다가 / 시간의 발길에 차여 너덜거린다 (어느 하루)



  뒤가 이쁜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 한 자락을 《뒤가 이쁜》에서 읽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뒤도 앞도 옆도, 위도 아래도 한복판도, 그러니까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속도 모두 이쁜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가 시집 하나로 새로 태어납니다.


  어릴 적에는 늘 함께 붙어다니며 놀던 언니 동생이지만, 나이가 들어 서로 제금을 나면서 어쩌다 한 번 얼굴을 보기도 어려운 먼 사이가 됩니다. 얼굴을 본대서 따로 대단한 일을 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저 그 얼굴 한 번 마주하면서 수수한 수다를 떨고 수수한 밥을 차려서 먹고 수수한 차 한 잔을 끓여서 마시기에 ‘어느 하루’는 따사로우면서 넉넉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시를 쓰는 마음이란 바로 ‘우리들 수수한 살림’을 그저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그예 사랑스레 녹여내어 이야기꽃 한 송이로 피우려는 뜻이로구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내 이야기도 네 이야기도 저마다 수수하면서 곱습니다. 우리 이야기는 언제나 모두 시라고 느낍니다. 2016.12.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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