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핑계



  수많은 핑계를 떠올린다. 내가 지난날 잘못을 저지른 뒤에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핑계를 대면서 내가 나를 감싸려고 했던 바보스러운 짓을. 내 둘레에서 어떤 이웃이 참으로 부끄럽구나 싶은 일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구나 싶도록 핑계를 대면서 이녁 밥그릇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짓을. 나는 나를 감싸야 할 까닭이 없다. 나는 다른 이웃을 깎아내려야 할 까닭도 없다. 그저 지켜보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사는가를 지켜본다. 내 이웃 모습이 보이면, 그 이웃이 내 앞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나한테 어떤 뜻으로 스며드는가를 지켜본다. 똑같은 굴레에 스스로 갇혀 쳇바퀴를 도는 사람은 남이 아닌 바로 나일 뿐이다. 굴레가 아닌 삶이 되도록, 똑같은 쳇바퀴가 아닌 새로운 살림이 되도록, 이제는 “수많은 핑계”를 촛불 한 자루에 녹여야지 싶다. 횃불도 우등불도 아닌 아주 작은 촛불을 켜서 “수많은 핑계”를 녹인 뒤, 나비로 깨어나는 애벌레처럼 새로운 넋으로 하루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성폭력은 시인만 저지르지 않았고, 몇몇 기득권 정당 사람들이나 권력자만 저지르지 않았다. 말폭력은 미술평론가나 문학평론가만 일삼지 않았고, 이름난 작가나 예술가만 일삼지 않았다. 잘잘못이나 핑계를 넘어, 다 내려놓고, 몽땅 불살라 녹인 뒤, 맨몸으로 처음부터 새로운 길을 날아오르는 나비가 될 수 있기를 빈다. 도시에서 이런 권력 저런 명예를 끝까지 붙들려 하지 말고, 조용한 시골에 깃들어 손수 흙을 만지면서 풀과 나무를 읽으면서 착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 2016.12.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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