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 도시와 건축을 성찰하다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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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76



겉살보다 속살이 아름다운 도시

―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승효상 글

 돌베개 펴냄, 2016.10.10. 14000원



  건축 일을 하는, 그러니까 집을 짓는 일을 하는 승효상 님은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돌베개,2016)라는 책을 내놓으면서 ‘건축가는 인문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밝힙니다. 내가 사는 집이 아닌 남이 사는 집을 짓는 일을 하니, 내가 아닌 남이 살 그 집이 어떠한 살림이 되도록 북돋우거나 이끌 수 있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얘기해요.



남의 집을 짓는 일이 고유 직능인 건축가라면 기본적으로 문학이나 영화, 여행을 통해 그들의 삶을 알아야 하고,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 역사적이어야 하며, 왜 사는지를 알기 위해 철학을 해야 한다. (30쪽)


분당은 성공하였다. 도시가 성공했을까? 아니다. 도시가 아니라 부동산이 성공한 것이다. (38쪽)



  오늘날에는 ‘집짓기’ 일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지난날에도 집짓기 일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도 했지만, 지난날에는 누구나 ‘내가 살 집은 내가 짓는다’였어요. 으리으리하게 올리는 커다란 집이라면 일꾼을 사서 짓겠지만, 수수한 사람들이 수수하게 가꾸는 살림집은 누구나 손수 지었어요.


  더 살피면 지난날에는 집뿐 아니라 옷도 누구나 손수 지었어요. 스스로 입는 옷은 늘 손수 지었지요. 그리고 손수 먹는 밥도 손수 지었어요. 지난날 사람들은 따로 건축가나 재단사나 요리사라는 이름은 없었어도 스스로 모든 살림을 지을 줄 알았어요.


  옛날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지난날 사람들 살림을 돌아보려는 뜻이 아닙니다. 집도 옷도 밥도 손수 짓는 지난날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누릴 살림’을 생각하면서 집과 옷과 밥을 지었다는 뜻이에요. 집짓는 일꾼 승효상 님이 들려주는 말마따나 지난날 사람들은 누구나 ‘인문학자’로서 집을 손수 짓고, 옷이랑 밥도 손수 지었다는 뜻이에요.



도시가 지속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여러 시설이나 장소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신성하고 경건한 침묵의 장소라고 했다.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이 어쩔 수 없는 도시의 일상이라고 해도 동시에 우리의 영혼을 맑게 빚는 고요함이 없으면 도시는 이내 피로하여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105쪽)


지금의 청와대는 전두환을 이은 노태우 대통령 때 지었는데, 정통성에 콤플렉스를 갖는 통치자일수록 권위적 건물을 짓고 싶어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일이다. 조선왕조의 궁을 탐했을까, 봉건 시대 건축의 형식을 빌려 지었으니 이 건물은 시작부터 또한 시대착오적이었다. (125쪽)



  승효상 님은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라는 책으로 ‘안타까운 집짓기(건축)’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부동산으로는 성공했을는지 모르나, 건축이라는 틀에서는 도무지 성공하고는 동떨어진 분당 새도시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권위주의를 앞세운 권력자가 겉만 꾸미려고 때려지은 국회의사당이나 청와대를 한껏 나무라기도 해요. 파주 책도시를 놓고도 처음 설계할 적에 ‘사람이 걷는 흐름’을 미처 살피지 못한 대목을 찬찬히 짚습니다.



사실 서울의 속살은 대단히 아름답다. 대로변을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서 보시라. 로마네스크 성당이 없다 해도, 한옥이 많아 보전지구로 지정된 곳이 아니라도, 그저 흔해 빠지고 남루하며 보잘것없는 동네의 길이라 해도, 그곳을 걸으면서 가슴속에 스미는 행복과 평화가 있다. (185쪽)



  집짓는 승효상 님이 바라보기에 ‘아름다운 도시’는 겉살이 아닌 속살이라고 합니다. 겉으로 으리으리하거나 높직한 건물이 있대서 아름다운 도시가 되지는 않는다고 밝힙니다. 나즈막하면서 수수한 작은 집들이 바로 도시를 아름답게 해 주는 바탕이라고 이야기해요. 큰길에서 벗어나 골목길에 깃든 앙증맞은 집들이 바로 도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고 밝혀요.


  ‘서울을 비롯한 도시’를 이루는 속살을 새삼스레 헤아려 봅니다. 큰길은 자동차가 끝없이 지나다니면서 몹시 시끄럽습니다. 골목길은 자동차가 뜸하거나 못 다니면서 매우 조용합니다. 우리는 큰길을 거닐며 얘기를 나누기 어렵고, 큰길에서는 자동차에 치이기 마련이요, 마음 놓고 쉬기 어렵습니다. 이와 달리 골목길에서는 나긋나긋 속삭이기에도 좋고, 자동차에 치이지 않기 마련이요, 마음 놓고 쉴 만합니다.


  도시에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집을 높직하게 지어야 한다고 여기는데, 어쩌면 도시에서도 굳이 높직한 집을 짓지 않아도 될는지 몰라요. 재개발이라고 하면 골목집을 온통 허물고 아파트와 쇼핑센터를 높직하고 커다랗게 세워야 한다고만 여기지만, 거꾸로 아파트와 쇼핑센터를 허물고 나즈막한 골목집으로 바꾸는 ‘새로운 집살림 계획’을 세울 만할 수 있어요.


  오래가는 도시를 바란다면, 아름다운 도시를 꿈꾼다면, 사랑스러운 도시를 생각한다면, 이제는 ‘높지 않’고 ‘크지 않’으며 ‘넓지 않’은 살림집을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즐거운’ 집을 보고, ‘어깨동무하는’ 집을 보며, ‘사랑스러운’ 집을 보아야지 싶어요. 2016.11.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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